열 아홉번째날

2019.4.21

by 박달나무

#부활절

#기술들어갑니다

#아이들은부활이필요해

#부활하려면먼저죽어야한다는

부활절이다. 기독교계에서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큰 기념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서 사흘 후 부활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특정 종교에 묶이지 않은 나는 매년 부활절은 예쁜 색깔옷을 입은 달걀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칠레 소속의 남태평양에 외로이 떠 있는 모아이의 이스터 섬만 떠오른다.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부활절은 춘분 이후 처음 맞이하는 보름달이 지난 첫 일요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 태양력과 태음력이 섞이고, 유럽의 토속신앙과 유대교가 양념으로 들어간 역사·문화적 퓨전이 부활절이란 얘기다. 그 유래가 2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유럽인들에게 우리의 추석 못지않은 뿌리 깊은 명절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아, 그래서 부활절 직전 금요일을 휴일로 만들어 연휴를 만들었구만’

대부분 크리스찬인 호주에서(약간의 회교도가 있고, 이슬람교회도 있다) 부활절 예배를 구경할까 제안했더니, 태수는 손사래를 친다. 자기가 가장 싫은 곳이 교회란다. 교회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을 거듭 말한다. 태수의 엄마는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독실한 신자로 알고 있는데, 태수가 그렇게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엄마는 모를 것이라 말한다. 엄마가 참석하는 방과 자기가 참석하는 방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다만 동생이 같이 있으니 동생을 통해 엄마가 알 수도 있겠다고 덧붙인다. 교회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늘 야단맞는 게 자신이 교회에서 당하는 일이란다. 안 봐도 유툽이라고, 거의 짐작이 가면서 마음이 아팠다.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 안 하니 오히려 태수가 하나 더 추가한다.

“내가 좀 소리를 지르긴 했어요.”

그래도 더 거론하지 않았다. 그냥 부활절 예배 구경 가지 않겠노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엉뚱한 얘기로 방향을 틀었다.

“부활이란 노래하는 그룹이 있는데, 들어봤니?”

“그럼요, 국민할매가 리더잖아요.”

시하는 모르는 노래가 없다. 신기한 일이다. 웬만한 7080 노래를 다 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러니 김태원의 부활 정도는 당연히 아는 것이다. 또 물었다.

“부활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거지?”

“다시 살아난다는 거잖아요.”

이런 분위기에 태수는 예민하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맥락에서 시하가 넙죽넙죽 선생과 주거니받거니 한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다. 상황 자체를 종료하는 게 낫겠다 싶다. 이제 도노반파크로 출발하자고 채근했다. 어제 델로라인에 와서 모텔에서 잔 것이라 목장까지 가깝다. 목장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태수는 활동을 거부한다. 자기 기분이 더러운 상태라는 걸 알고 있으라는, 그러니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라는 무언의 명령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태수는 이런 패턴이 지속됐다. 이게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다. 다만 태수 자신도 무조건 고집부리지만 않고 타협을 통해 자기의 몽니를 종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고, 더 기다려주면 되겠다 싶다.

부활을 거론한 건 나름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비디오 게임에 열광하는 첫째 이유를 부활에 있다고 생각한다. 죽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둘 다 중요하다. 죽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

아이들이든 청소년이나 젊은 어른들이든 게임을 하면서 지는 경우에 모니터에는 GG(굿 게임의 약자)를 치고 빠지는 것이 매너 있는 태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상대방과 대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 욕을 하거나 심하면 책상을 내리치면서 아쉬움이나 패배의 분노를 내뱉는 게 다반사다. 그러나 곧 다시 게임에 빠져든다.

바로 부활이다. 게임 안에서 나는 죽지만 언제나 다시 부활한다. 내 아바타가 부활한다는 안정감은 현실의 불안감을 상쇄한다. 현실에서는 부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젊은 어른들이 더욱더 게임에 몰두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새로운 발견을 했다. 부활은 죽음이 전제된 개념이고 현상이다.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다. 부활의 극치를 즐기려면 당연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죽어야 한다. 아이들은 죽음에 부활을 덧붙여 하나의 세트로 만드는 것 같다.

작년에 개봉한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 이해가 쉽다. 모든 “나”는 가상 공간에서 전투 성격의 레이싱을 하면서 매일 죽는다. 그리고 다시 죽음의 레이스에 참가한다. 레이스 우승에는 엄청난 보상이 있다. 아직 아무도 우승하지 못했다. 주인공 웨이드는 어느 날 깨닫는다. 앞으로만 빨리 달린다고 레이스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는 걸. 남들은 용을 쓰며 앞으로 달려나갈 때 레이스 트랙을 벗어나 후진 기어를 넣고 뒤로 달린다. 주인공은 창의력으로 우승을 거머쥐지만, 내 눈에는 오아시스(게임업체가 운영하는 가상공간)에서는 탈락하거나 죽어도 다시 부활해서 게임에 참가할 수 있다는 구조만 크게 보인다.

이렇게 되면 유저 입장에서 게임 안에서 죽음은 루저 전락의 깔대기가 아니라 도전의 시발점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부활이 보장된다면 죽음을 쉽게 선택하는 걸 넘어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거나 활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랑의 블랙홀>로 제목을 바꿔 상영한 <그라운드호그 데이>나 웹툰 원작을 드라마로 만든 KBS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에서 타임루프에 빠져 같은 날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때로 문제해결을 위해 죽음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런 픽션의 세계에서 유행하는 상황설정은 가상세계 아이디어가 생겨난 이후에 가능했다. 그리고 가상현실은 비디오게임의 발전과 공진화해온 것이다. 나는 이런 변화를 매우 우려하고 비판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비디오게임(컴퓨터게임이나 폰게임)을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디오게임은 그냥 21세기에서 현실일 뿐이다. 자폭에 가까운 부정적 모습을 스스로 전면화하는 아이들의 행동이 부활에 대한 아전인수식 오해와 죽음을 전략화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는 발견을 소개한 것이다.

화를 내거나 난동을 부리면 어른들이 어쩔 수 없이 달래거나 비위를 맞추기 때문에 작전 성공으로 느낄 수 있다. 청소년이나 젊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원래 울면 어쩔 수 없이 떡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태수의 겨우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 건 다분히 전략적이며 학습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전략으로 구사하거나 학습된 것이 아니면 PDD(전반적 발달장애)로 봐야 한다. 열등감을 만회하려는 전략과 PDD의 행동이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PDD의 가파른 증가는 전자의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는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ADHD로 명명하며 오해를 의학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도노반파크는 언플러그드의 모범적 환경이다. 똑똑하고 친화적인 강아지가 있고, 적당한 체격과 고집을 가진 염소가 두 마리, 다양한 종류의 닭들(공작도 한 마리), 이갈라 프로그램 말이 다섯 마리, 드넓은 초원, 몇 가지 놀잇감(캐치볼, 탱탱볼, 공 투척기 등)과 오두막, 연못, 높은 하늘, 따뜻한 햇빛, 맑은 공기가 함께 한다. (목장에 소가 1000마리 있지만 걔들은 의미 없고) 필요하다면 종이와 색연필 정도는 늘 곁에 있다. 아이들이 적응하길 바라며 Jo 선생님과 나는 오늘도 말똥 치우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마에서 주르륵 땀까지 흐른다.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놀 만한 것이 없다고 투정이다. 시하는 괜스레 왔다갔다하고 태수는 빨리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떼 쓴다. 어쩔 수 없이 기술 들어간다. 함께 놀아주는 것이다. 아니 놀이 샘플을 보여준다고 하는 게 맞겠다. 드넓은 초원에서 강아지하고 어떻게 노는지, 염소하고 놀 수 있는 예시, 캐치볼은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보여준다. 혼자 쇼하는 건 아니고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논다는 말이다. 이게 말똥 치우기보다 힘들기 때문에 나도 소극적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초원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아이들이 부시워킹-호주에서는 가벼운 등산이나 트레킹을 부시워킹이라 부른다-은 불만 없이 잘한다. 1시간 정도까지는) 놀이와 넓은 운동장이 결합되지 않는다.

자세히 살피면 신기한 벌레들도 많다. 특히 말똥을 들어올리면 말똥구리 사촌 쯤 되는 딱정벌레가 많다. 이놈들이 비단벌레처럼 오묘한 빛깔을 내는 껍데기를 가졌다. 파르스름하면서 영롱한 빛을 낸다. 말똥은 원래 소똥과 달리 냄새가 없는데, 도노반파크에서는 더욱 냄새가 없다. 사료를 주지 않고 자연 풀만 먹기 때문이다. 말똥 속에 사는 예쁜 딱정벌레 하고도 하루 종일 놀 수도 있는 일이건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무리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의 잘못은 전혀 아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고, 단지 내 유치원을 다니고, 친구도 모두 아파트 안에서 나오지 않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태즈매니아에서 1년 가까이 살려고 왔다. 여기는 안전하고 쾌적하면서 완벽한 자연환경이 있는 곳이다.

기술은 오후에 한번 더 들어갔다. 오늘도 애정하는 서브웨이에 가서 점심을 먹고, 가까운 몰크릭의 부시워킹 코스에 들어갔다. 델로라인은 Great Western Tiers 방문자센터가 있고, 부시워킹의 기점 역할을 하는 마을이다. 수많은 부시워킹 코스가 있다. 현지 사람들도 평생 몇 개 코스만 이용할 것이다. Great Western Tiers가 100km는 뻗어있는 산줄기라 국립공원 다음 단계의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부지기수다.

안내서에 “Short Walking”이라 표현된 코스 중 몰크릭에 있는 1번 코스를 선택했다. 동네 노인네들이 자주 찾는 산책길이다. 나름 주차장과 안내표지판도 있다. 하지만 태즈매니아다운 울창한 숲이 기다리고 있었다. 삼나무 종류 같이 보이는데, 키는 왜케 큰지..... 나무들 빽빽한 숲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시큰둥 모드.

조금 걷다가 2미터 남짓의 가루지기처럼 생긴 바위가 생뚱맞게 서 있길래, 바위 위로 올라가면 오늘 트레킹을 마치겠다고 말했다. 거기다 용돈 10달러를 걸었다. 시하가 경매사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상금 올리기 협상을 걸어왔다. 10달러는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 그럼 20달러.... 거절한단다. 웃음을 참기 힘들다. 거절한다며 가던 길을 걸어가는 척하는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표정으로 50달러를 외쳤다. 그래도 그 정도에 움직일 사람들이 아니란다. 풋~ 그래서 100달러까지 상금은 치솟았고, 아이들은 바위에 매달려 용을 썼다.

어떤 도구를 써도 좋다고 했지만, 주변에 썩은 나뭇가지 하나도 없다. 온통 풀밭이고 돌멩이도 안 보인다. 풀이 아니면 엄청 키 큰 나무만 있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둘이 역할 분담을 하고 힘을 합치면 오를 수 있는 크기와 모양의 바윗돌이다. 중간에 발을 걸칠 만한 홈도 패어 있다. 하지만 혼자서 애쓴다고 올라갈 수 없는 높이였다. 내가 도움닫기로 오르는 시범을 보이다가 막판에 힘든 척하며 떨어졌다. 아이들은 나를 따라 시도했지만 둘이 함께 역할을 나누려고는 하지 않는다. 아이의 작은 키와 좁은 품으로는 불가능했다. 괜히 100달러까지 상금이 치솟은 게 아니다. 나는 100달러를 줘도 좋으니 둘이 꼭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실패를 바라는 이상하고도 못된 심리가 작용한다.

그렇게 바위오르기로 20분을 썼다. 아이들은 씩씩거렸지만 다시 걷기를 재촉했다. 3분을 더 가니 나무벤치가 있었고, 아이들이 털썩 앉는다. 나름 용을 쓰느라 힘들었던 것. 바로 앞에 적당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태수 키 정도 높이에 깊은 옹이 구멍이 있다. 나무는 약간 기울러져서 기어올라갈 수 있는 정도지만 껍질이 매끈해서 쉽지 않아 보인다.

“저기 구멍을 딛고 서면 오늘 산책은 여기서 마치고 돌아가겠다. 대신 상금은 없다. 아주 쉬운 과제로 보이기 때문에. 다만 성공하면 원하는 간식을 쏘겠다.”

아이들은 다시 도전정신 뿜뿜~ 각자의 방법으로 나무를 기어 올라가려고 애쓴다. 나는 격려도 하고,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기도 하고, 실패에 대해 조소를 보내며 아이들 동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도무지 둘이 힘을 합칠 생각이 없다. 그렇게 다시 20분을 끙끙거리니까 힘에 부친 아이들이 포기하려고 했다. 할 수 없이 한마디 했다.

“둘이 역할을 나누고 힘을 합쳐라.”

태수 눈치도 100단이지만 시하 눈치는 105단 정도 된다. 금방 알아듣고, 자신이 밑에서 바쳐줄 테니 몸이 가벼운 네가 구멍에 올라서라고 말한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미션에 성공했다. 인증샷을 찍고나서 돌아서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성공기념으로 투샷을 멋지게 찍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평소 태수는 시하랑 둘이 함께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둘은 시키지 않아도 어깨동무를 하더니 “Why not?”을 외친다. 그래서 아래 사진이 나왔다.

사달라는 간식은 시하가 생수, 태수는 콜라다. 다른 건 필요 없단다. 입안이 바싹 말라서 가루가 될 지경이라나.... 그리고 숙소로 오는 길에 둘의 브로맨스가 장난이 아니다. 유효기간은 매우 짧지만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