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번째날

2019.5.3

by 박달나무

#어벤저스엔드게임

#왜엄청난전쟁을게임이라고한거지

“왜 엄청난 전쟁을 게임이라고 한 걸까?”

태수가 물었다.

데본포트에 유일한 극장이 있다. ‘리딩시네마’가 극장 이름이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보러갈까?” 하고 물으니 둘 다 동시에 “네!”하고 대답한다. “자막이 없는데 괜찮을까....” “네, 눈치껏 내용을 알 수 있어요.”

부시워킹을 다녀와서 1시30분 상영분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들과 밖으로 나가자마자 비가 다시 내린다. 집으로 돌아와서 제대로 옷을 챙겨입고 데본포트로 나갔다. 키오스크에서 티켓팅을 하는데, 15세 관람가라고 써있고 ‘폭력적’이란 경고가 있다. 한국에서는 몇 살 등급인 줄 모르겠다. 보호자가 동반하는 것이니 괜찮겠지 하고 표를 사서 극장에 들어갔다. 1관부터 5관까지 있는 극장인데, 우리가 들어간 1관의 스크린은 한국의 CGV에서 가장 큰 스크린과 같은 크기다. 그런데 딱 우리 셋만 있다. 상영 직전 노인네 두 분이 들어와서 가장 뒷자리에 앉는다. 11시45분 상영분이고, 예고편 몇 번 때리고 12시부터 시작해서 정확히 3시에 끝났다.

아이들은 어벤저스 계보를 꿰고 있었다. 아이언맨이 시리즈 마지막인 이번 엔드게임에서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옛날 스타워즈 시리즈를 모두 봐야 이야기 마당에 끼어들 수 있던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벤저스 영화를 처음 본다. 마블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것이니 이야기의 황당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 반응은 내가 아마도 6학년 때 본 태권V 만화를 보고 다음 속편을 목을 빼면서 기다린 것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엔드게임은 타임머신이 등장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더빙도 아닌 것을, 자막도 없이 보면서 맥락을 놓치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봤다. 보면서 두 작품이 떠오른다. 하나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 따라 을지로 6가 계림극장에서 본 <닥터 지바고> 영화다.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러시아혁명을 몰라서가 아니라 시점이 과거로 불쑥불쑥 가기 때문에 화면 속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길기는 얼마나 긴가. 3시간이 훨씬 넘는다. 그때 기억은 고통에 가까웠다. 라라와 지바고의 러브스토리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더 이상은 알 수 없었다. 고1 때 중앙극장에서 두 번째로 보고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때는 러시아혁명이 걸림돌이었다. 더구나 러시아혁명이라니.... 공산주의 빨갱이 혁명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이 강했던 시절이었다. 대학생 때 명절 명화로 TV에서 세 번째 보고 비로소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었다. 핵심은 모르기 때문에 갖는 안타까움이다. ‘저게 뭐지’하는 마음, 다음 기회에 꼭 알아봐야겠다는 마음이 소중한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은 그림책 <끝지>다. 전래동화인 <여우누이> 이야기를 막내 오빠의 서술 형식으로 각색한 <끝지>는 연필로만 그림을 그려서 어른을 위한 그림책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끝지>가 현재-과거-현재-과거-현재의 흐름이라서 초등학생들에게 스토리를 기억하는데 애를 먹이는 작품이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과거부터 현재로 순서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잘 기억한다. 반면 시점이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갔다 하면서 뒤죽박죽이면 기억도 뒤죽박죽이라 제대로 꺼내질 못한다.

그런데 지금의 두 아이는 다른 양상이다. 자막도 없이 본 엔드게임의 뒤죽박죽 시점을 잘 이해하고 감상한다. 자세히 보니 단지 액션 장면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었다. 3시간 영화의 앞 2시간은 지루할 수도 있는 잔잔한 화면이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집중하고 이해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의논하여 내용을 파악하며 감상한다. 그동안 나를 찾아온 아이들은 극장에서 평상시 목소리로 떠들어서 심지어 영화를 보다가 밖으로 나간 적도 있었지만 태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옆자리 나 정도만 겨우 들릴락말락하게 말한다.

가설이지만 시점의 불규칙임에도 잘 이해하는 건 디지털문명의 특징인 비선형(Non Linear)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닥터 지바고>를 보는 5학년의 나와 지금 내 곁에 있는 두 아이의 지적 능력에 우열이 없다. 오히려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고 아등바등거리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시점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영화를 이해하는 능력은 지금의 아이들이 더 뛰어나다. 이 아이들은 4학년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가설은 과거 아이들은 시간의 흐름에 묶인 채 사고하는 것이 고정됐지만, 현재 아이들은 과거 현재 미래 시점에서 자유로운 경우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쉐필드 하드웨어 가게에 들러 예약한 전기담요를 샀다. 드디어 따뜻하게 잘 수 있게 됐다. 싱글 사이즈 두 개를 사서 싱글 침대에 각각 설치했다. 오늘부터 시하가 혼자 자고 싶다고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잔다. 태수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지만 가타부타 말없이 넓은 침대에서 잘 잔다. 내가 태수 옆에서 잘 생각이다. 전기값을 조금이라도 아낄려면 침대 3개를 쓸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 왜 제목을 엔드워가 아니라 엔드게임이라고 했을까. 태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차피 태수가 내게 물은 것도 아니었지만. 시하가 대답했다.

“전쟁이 곧 게임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