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번째날

2019.4.30

by 박달나무

#우리집근처의대자연

크레이들 마운틴 국립공원은 좀 멀고, 걷는 시간도 3시간은 걸려서 매일 다니기 어렵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집앞에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길로 가끔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했기 때문에 뭔가 있겠거니 하면서 걸었다. 3분 후 길이 없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나뭇가지에 가려진 작은 입구가 있었고, 우리는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엘리스 기분으로 나아갔더니..... 20분 만에 대협곡의 위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평지를 걸었는데, 협곡이 내려다 보이는 장관과 만난 것이다. 흥분된 마음으로 아이들을 불러 협곡을 내려다 보도록 했지만 아이들은 별무 반응이다.

"이제 매일 아침엔 이 길을 걷는 거야."

"그나마 평지라서 다행이네요....."

왕복 80분을 쉬지 않고 걸으니 약간 몸이 나른해진다. 아이들이야 그냥 쌩생~

태즈매니아에 와서 “자폐증의 잃어버린 역사와 신경다양성의 미래” 부제목을 가진 <뉴로트라이브(Neuro Tribes)>를 읽고 있다. 소아과 의사를 하던 강병철 선생은 캐나다로 이주하고 전업 번역가로 일하면서 자신의 출판사도 꾸리고 있다. 강병철 선생이 한국에 2년에 한 번 꼴로 귀국하는데, 지난해 12월에 번역자로서 북콘서트를 진행할 때 만난 적이 있다.

이 책은 자폐증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 스티브 실버만은 다큐 작가로서 우연한 기회에 자폐증에 대해 취재를 하다가 깊이 빠져들어 십수 년을 자료 조사하고, 5년을 칩거하면서 원고를 썼다. 우연한 기회라는 게 실리콘밸리의 연구자들에게 자폐증 자녀가 다른 직업군의 경우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700쪽에 가까운 분량이라서 한국에서 다 읽지 못하고 있다가 태즈매니아까지 가지고 왔다. 여기에서 진도가 쭉쭉 나간다. 더구나 읽으면서 내용이 선명하게 정리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고 있다. <뉴로트라이브(Neuro Tribes)> 제목은 직역하면 “뇌의 생리적 특성이 다양한 여러 족속들”이고, 의역하면 “인간은 처음부터 뇌의 생리적 특성이 다양한 존재이지 획일적으로 발달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책 내용을 언급하면 또 다른 책이 하나 나올 정도로 방대하고도 치밀한 내용이다. 자폐 가족 뿐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당사자나 가족, 또한 교사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쉽게 진도를 빼며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다.

<뉴로트라이브(Neuro Tribes)>를 언급한 것은 최근 자폐증을 자폐범주성장애(자폐스펙트럼장애;일명 ASD로 불림)로 바꿔 부르면서 ADHD 아동청소년과 구별점이 거의 없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동의하고 환영한다. 그동안 ADHD 라벨을 달고 나를 찾아온 아이들과 <뉴로트라이브(Neuro Tribes)>에서 소개하는 100년 전부터 최근까지 자폐아들의 특질이 거의 겹친다. 가장 분명한 교집합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폐증은 한때 카너증후군이라고 불렸다. 1896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독일에서 공부한 유태인 레오 카너는 미국으로 건너가 자폐증을 처음으로 학회에 보고하고 자폐증의 권위자로 군림한다. 비슷한 나이의 한스 아스퍼거가 오스트리아에서 자폐증을 연구하고 논문을 썼지만 독일어 논문이 영어로 번역되지 않고 아스퍼거는 오랜 시간 잊힌 존재가 된다. 저자 실버만은 카너가 아스퍼거를 알면서도 고의로 아스퍼거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이런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어떤 증세에 대해 권위를 가졌다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개념의 통로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해준다. 카너가 오랜 시간 주장한 ‘냉장고 엄마’로 인한 자폐 발병 원인은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다.(냉장고처럼 냉정한 엄마가 아이에게 정을 주지 않고 규칙만 강조하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육아태도가 자폐아를 만든다는 카너의 주장. ADHD에 대해서도 그대로 응용되고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지능 발달은 정상적이지만 대인관계에서 서툴거나 불가능한 사람에게 붙이는 용어가 됐지만, 이것도 아스퍼거의 연구와 관련 없이 매우 왜곡된 것이다.

과학의 탈을 쓴 어이없는 이야기가 당대에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권위를 가지기도 한다. 책에 재밌는 예가 여럿 나오지만 그중 가장 어이없는(내 입장에서) 사례를 소개한다.(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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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환자들의 행동을 엄격하게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라 해석했던 헤르미나 훅-헬무트, 아나 프로이트, 멜라니 클라인 등의 정신분석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놀이치료는 1930년 대에 크게 유행했다. 예를 들어, 클라인은 문과 문 손잡이에 유난히 집착하는 한 소년이 사실은 “음경을 어머니의 몸속에 삽입하고 싶은 것이다. 문과 자물쇠는 그녀의 몸으로 드나드는 길의 장애물이고, 반면에 문 손잡이는 아버지와 자신의 음경을 상징한다”라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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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예로는 영국의 앤드류 웨이크필드가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내용은 희대의 사기극으로 밝혀졌지만, 현재 영국에서 홍역의 유행이 다시 시작됐고, 일본의 경우 예방접종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혹시 예방주사를 맞아서 내 아이가 자폐아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다. 지금 21세기에. 아직도 미국에서 혈중 수은을 제거하는 킬레이트 치료가 성행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자폐아에게 우유와 글루텐, 식용색소, 화학조미료를 철저하게 피하면 자폐증이 낫는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그렇게 교육받는다)

이런 자폐증의 시대별 원인과 치료에 대한 개그에 가까운 저마다의 주장들은 ADHD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기가 주장하는 원인과 대책이 옳다는 책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다양한 주장 중 어떤 건 일리가 있고, 실제 ADHD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풍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주의집중시간이 짧고, 주변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교실 밖으로 마음대로 나가고, 주변 아이들과 다툼이 잦고, 교사나 어른에게 함부로 말하고, 학습능력도 부족한 것으로 보이며, 재주가 있어도 서번트 신드롬에 가까워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ADHD 아이들의 일반적 모습이다. 자폐아들 중 덜 심한 경우와 거의 겹친다.

그리고 이들은 분명히 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 특정인의 심신 특질이 아무런 조건 없이 진공상태에서(외부의 영향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서술이 가능하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가 묘사하는 모습을 내 앞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건 아이가 그때그때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모습이란 관찰자와 대상자의 관계 속에서 상호적으로 구성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냐가 내 앞에 있는 대상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ADHD 용어의 마지막 ‘D’는 장애라는 뜻이다.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을 장애인으로 분류할 일이 전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만들어내는 현대식 폭력이 바로 용어를 만들어 분류하고 낙인 찍는 일이다. 나는 ADHD에 반대한다. ADHD 용어 사용에 동의하지 않으며,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누구와도 어울려 생활할 수 있는 귀엽고 귀중한 아이들이다. 열이 오른 아이를 돌보고, 약을 먹이고, 심하면 병원에 데려가지 왜 열이 나느냐고 추궁하거나 열이 오르는 아이로 분류하고 별도의 라벨을 붙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다르게 발달한 경우고, 주류 집단과 다른 배려가 필요한 경우고, 판단 기준이 주류 집단과 다른 Tribe일 뿐이다.

한번 더 <뉴로트라이브(Neuro Tribes)>의 내용을 소개한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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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트리플렛 가족은 아들(도널드)을 집에서 15km 떨어진 한 농장으로 보냈다. 거기서 루이스 부부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재능을 꽃피웠다.

카너는 그들 부부가 너무나 현명하게 그를 돌보았다는데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아이가 측정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우물을 파서 깊이를 측정하도록 했다. 아이가 죽은 새나 벌레를 계속 가져오자 ‘묘지’를 꾸밀 자리를 마련해주고 표식을 하도록 했다. 아이는 표식마다 첫 번째는 동물의 이름, 두 번째는 동물의 종류, 마지막에는 농부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예를 들면, “존 달팽이 루이스. 출생일 미상. 사망일(동물을 발견한 날짜)” 옥수수밭에 심은 옥수수의 줄 수를 끝도 없이 반복해서 세자, 직접 쟁기로 밭을 갈면서 줄 수를 세게 했다. 아이가 말을 몰아 쟁기로 밭을 갈고 끝에 이르면 말을 돌려세우는 일을 얼마나 잘했던지 놀랄 정도였다. 루이스 부부가 아이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며,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다는 것 또한 너무나 명백했다. 도널드는 그의 특이한 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골학교에서 학문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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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된 차를 샀더니 타이어 마모가 심하다. 걱정했는데 결국 한놈이 빵꾸가 났다. 겨울에 길이 미끄럽기도 하고 코너링이 심한 길을 다니다보니 적당히 대처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새 타이어로 갈았다. 20분이면 닿는 셰필드에 공업사가 하나 있었다. 어린 청년이 어찌나 친절한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타이어 가격은 한국과 거의 같다. 갈고 나니 승차감과 주행감도 향상됐다.

점심은 스파게티, 저녁은 오무라이스로 해결했다. 2만5천원 짜리 전기밥솥이 밥을 잘 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하루 3끼를 직접 만들어 먹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