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8
일요일 오전엔 도노반파크(목장)에 가서 2시간 놀고 오는 프로그램이다. 서둘지 않으면 약속 시간에 맞추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집에서 도노반파크까지 1시간은 꼬박 가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집을 구하니 안심도 되면서 긴장이 풀린다. 비로소 앞으로 할 일과 과제, 이곳에 온 이유를 사후적으로 정의할 여유가 생겼다.
아침밥을 먹고 가려면 나부터 서둘러야 한다. 시하는 거의 아침을 거른다. 평소에도 그랬다고 한다. 태수는 그때그때 다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확실히 아침을 거르면 아이들 의욕이 떨어진다. 그래서 뭐라도 먹고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토스트에 잼 바르고, 계란후라이에 치킨고로케 튀겨서 접시에 세팅했다. 한 녀석은 잼이 부족하다, 한 녀석은 잼이 너무 많아서 싫다, 트집이다. 그래도 두 녀석은 아주 잘 지낸다. 작년에 제주와 봉화에서 중학생 두 명과 반 년을 살았는데, 그때 두 녀석은 헤어질 때까지 사이가 나빴다. 당시 두 녀석은 특수한 사정이 있기는 했다. 암튼 호주에 온 두 녀석은 상대가 자기를 배제할까봐 서로 조심스럽다.
그러고보면 태수의 경우 지금까지 내가 겪은 어린이청소년 중에서 크게 속썩이는 일이 없는 아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내일자 일기에 언급하겠다.(사실은 쓴 글이 지워졌다)
도노반파크에서 아직도 아이들은 어색하다. 초원에 강아지와 염소와 말들이 있다. 나는 모른 척하고 말똥을 치울 뿐이다. 아이들은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여기에서 우리보고 뭘 하라는 겁니까?"
"힘들어 죽겠다. 말똥 좀 같이 치워줘."
"내가 왜 합니까. 싫어요."
"염소하고도 놀고 강아지 좋아하잖아. 같이 놀아. 캐치볼도 던지고....."
"다 재미없어요. 빨리 나갑시다."
몇 번 목장에 왔다고 적응하고 정을 붙이는 건 아니다. 천천히 지켜볼 수밖에. 그래도 오늘은 Jo 선생님이 건초더미를 옮기는 트럭 적재함에 태워줬다. 건초더미를 싣고는 그 위에 올라섰기 때문에 빈 적재함에 탔을 때와 또다른 느낌이다.
입이 댓발 나온 태수가 하도 심심했는지 말똥도 치우는 일을 10분 정도했고, Jo 선생과 헤어질 때는 손을 흔들며 "씨유"를 작은 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시하는 속을 알기 어려운 아이다. 아마도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나무랄데 없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았나보더라. 차라리 태수처럼 징징거리면 응대를 하는데, 시하가 아무 말 없이 30분 이상을 앉아있으면 걱정이 더 된다. 내가 4학년 때 저렇게 우두커니 앉아있어도 온갖 재밌는 상상을 계속 했던 기억 때문에 '저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간다.
데본포트에 아이들을 데려갔다. 어제 산 겨울용 잠옷이 너무 작았다. 아이들 체격을 잘못 생각했다. 옷가게에 전화를 거니 일요일은 4시까지 문을 연다고 해서 데본포트로 차를 몰았다.
데본포트는 호주 본토와 여객선이 왕래하는 항구도시다. 태즈매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도시라기 보다는 고풍스러운 타운이라 생각하면 된다. 멜번까지 왕복하는 여객선이 정박해 있길래 사진도 찍었다. 크기가 딱 세월호 만하다. 구조도 비슷하다. 저녁에 출항하면 밤새 바다를 가로질러 아침에 도착하는 것도 세월호가 인천-제주를 왕복했던 것과 비슷하다. (세월호하면 할 말이 느무느무 많지만.....)
3년 전에 지지학교에서 생활하던 아이들과 팽목항을 찾았을 때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었을 때 슬픔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어서, 똑같은 얘기를두 녀석에게 꺼냈다.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어떤 느낌이 들까?"
반응은 3년 전 아이들과 지금 두 녀석이 똑같다. 슬픔도 학습이 필요한 건가..... 아이들은 대부분 분노가 슬픈 것이라 생각한다. 내 가족을 죽도록 사고를 낸 놈을 죽여버리겠다는 반응이다. 난 이런 현상이 매체와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5년 전까지는 TV 콘텐츠의 영향이고, 5년 전부터는 유투브 콘텐츠 영향이다. 온통 분노만 들끓는다. 슬픔은 시간의 흐름이 필요한 감정이다. 잠시 멈추어 생각했을 때 밀려나오듯 솟아나는 설움의 감정인데, 잠시 멈출 일이 없으니 그 다음은 존재하지 않는 거다.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고 예전엔 10리 20리를 걸었으나 지금은 모두 차량을 이용하는 변화와 같다고 본다. 그래도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쉽기 짝이 없다. 아이들에게 기쁨과 분노만 존재하는 듯..... 인사이드아웃의 경우를 들어 말하면 기쁨, 버럭, 슬픔, 까칠, 소심 중 슬픔, 까칠, 소심이는 사라진 것이다. 세 녀석이 끼어들 기회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남은 장작을 옮겨 쌓으라고 시켰다. 예상과 달리 너무나 룰루랄라하면서 작업을 한다. 일머리가 없으니 코메디 장면처럼 일하기도 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이들은 새로 얻은 집이 아주 좋단다. 여기서 살게 돼 다행이라고 말한다.
"정말 다행이다. 나도”
저녁은 스파게티로 해결했다. 지금까지 먹은 스파게티 중 최고란다. 풋..... 그것도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