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번째날

2019.4.26

by 박달나무

#드디어입주

아이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지난 번과 같은 캡슐호텔(pod inn)에 묶었다. 아침에 나와서 가까운 곳에 있는 woolworths 마켓에 갔다. 이제 끼니를 직접 조리해서 해결해야 하니 식재료를 이것저것 샀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경험으로 볼 때 호주 사람들은 코팅된 후라이팬을 사용하지 않더라. 바닥이 두껍고 스테인레스 강으로 만든 후라이팬을 쓴다. 한국 홈쇼핑 채널에서는 코팅 후라이팬의 코팅제가 몸에 아주 해롭다고 선전한다. 그렇다해도 주물이나 스테인레스 강 후라이팬은 조리음식이 눌어붙어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코팅 후라이팬은 가장 큰 사이즈가 30cm다. 일단 제일 큰 것으로 샀다. 아이들하고 살아보니 후라이팬이 다용도로 쓰이더라.

점심을 먹으려고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빈 자리가 안 보인다. 구석에 자리가 하나 있길래 차를 댔다. 차에서 내리니까 피자집 전용주차장이라고 써 있다. 서브웨이에서 금방 먹고 나올 것이라 신경 쓰지 않고 갔다왔는데..... 15분만에 돌아왔건만 그새 피자집 직원이 내 차가 못 나가게 막아놓고 주차를 해놓았다.

10분을 승강이를 했다. 피자집 매니저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이 앞으로 3시간 후에 차를 빼주겠다는 것이다. 지금 혼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가게를 비울 수 없어서 차를 옮길 수 없단다. 어이가 없지만 싸움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읍소로 나갔다. 미안하다, 호주 태즈매니아에 처음 여행을 와서 사정을 잘 몰랐다, 내 여권과 아이폰을 맡길 테니 내가 차를 움직일 수 있게 해줄 수 없냐 등.....

어제 저녁에 이 집에서 피자 사먹었다고 말할 걸 당황하니까 말할 생각을 못했다. 고약한 매니저가 골탕을 먹이려고 작정을 했다. 자기는 지금 차를 못 빼니 그리 알라며 주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월세집을 제공한 주인과 2시에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당장 출발해야 한다. 어떻게 얻은 집이냐 말이다. 혹시 약속 시간을 어기면 밉보여 행여 "없던 말로 합시다"라도 되면 어쩐단 말인가.

이럴 때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가 있긴 하다. 바로 나는 아이들과 동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직접 보여주면 효과는 확실하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서양 사람들은 어린이를 보호하고 가장 우선시 해야한다는 정서가 확실하다.

"차에 내 아이 둘이 타고 있어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는 처지입니다."

큰소리로 외쳤다. 1분 쯤 있다가 투덜대며 매니저가 나온다. 가게 문을 잠그고 가타부타 말 없이 주차장에 가서 차를 뺀다. 미안하다, 고맙다를 여러 번 말하고 나도 차를 뺐다. 기분은 나빴지만 여기 사람들에게 공공의 규칙에 관한한 융통성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정서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차선을 밟고 주차한다든지, 주차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는 구역에 주차한다든지, 주차 최대 시간은 1시간을 넘을 수 없다는 규칙(큰 도시 다운타운은 최대 주차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한다. 1시간 5분 만에 차에 돌아갔더니 10배의 벌금 딱지가 떡 하니 붙어있었다)을 어기는 걸 상상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아씨 삶에 유도리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30분 늦는다고 집주인에게 문자를 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2시간은 달려야 하는 거리다. 막상 도착하니 2시가 채 되지 않았다. 주인은 집을 잘 치워놓았다. 우선 땔나무가 급하다. 갑자기 겨울이 온 느낌이다. 해발이 높은 곳은 영하로 떨어지고, 내가 살기로 한 동네도 새벽에는 4~5도에 불과하다. 당장 집이 추웠다. 현재 비바람도 몰아친다. 나무가 필요하다고 하니 전화로 주문해야 한단다. 주문을 대신 해달라 부탁했다. 주인은 급한대로 장작 한 수레를 가져왔다.

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이니 훈기가 돌았다. 포트에 물을 받아 끓이고 아이 엄마가 바라바리 싸 준 각종 티백 차를 처음으로 꺼냈다. 커피를 타서 한숨 돌리고, 저녁을 해먹는 것이 우선 과제다.

"세 가지가 있다. 카레, 스파게티, 밥과 스테이크. 선택해라."

예상대로 아이들은 스테이크를 먹겠단다. 스테이크가 가장 간단하지. OK. 고기 굽는 게 문제가 아니고, 밥 하는 게 문제다. 하지만 4구 전기렌지(전통적인 코일 방식)는 불 조절이 완벽하기 때문에 밥도 완벽하게 됐다.

저녁도 잘 먹었지만 추운 게 문제다. 아이들은 춥지 않다고 하는데 나는 관절 속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건 늙었다는 명백한 징조다. 안타깝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장작 난로로는 이 넓은 집을 따뜻하게 할 수 없다. (거실만 훈훈) 나는 추워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예 난로에 장작을 더 넣고 소파에 기대서 잠을 잤을 정도다.

사람이 매우 단순해지는 걸 깨달았다. 추운 걸 해결해야 한다. 장작을 확보해야 한다. 밥을 잘 지어 먹어야 한다. 이것만 생각하게 되고 그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얻어서 행복하다. 아이들도 "우와~ 대박"소리를 한다. 여기서 1년을 지낸다고 하니까 더 좋아한다. 20살까지 살자고 해도 좋다고 할 기세다.

*나는 벌써 내년 3,4월을 혼자서 지낼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프로그램은 2월로 마친다. 집은 내년 4월25일까지 계약이다. 아이들 없이 혼자서 두 달 정도 이 집에서 살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