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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1. 2017

매일 뉴스브리핑 진행하기

표현이 곧 배움이다

  초등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한 자릿수 아이들과 생활하는데, 고백하자면 대부분 활동이 실험적입니다. 6년 전 중등 대안학교 문을 열고나서 입학 상담 온 엄마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를 데리고 실험하는 곳은 보내고 싶지 않아요. 실험이 끝나고 검증된 학교에 보내렵니다."
  뭐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에서 수많은 실험은 모두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열로 줄 세우면서 모두 1등이 되는 방법을 실험하는데 어찌 성공한 모델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진행하는 실험은 20년 공교육 교사로서 수없이 실패한 내용을 밑거름으로 삼고 있기에 맨 땅에 헤딩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정말 다인수 학급에서는 해보지 않은 실험에 대해 가슴 뛰는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좀 더 진행하면 더 선명한 결과물이 나올 것입니다. 더 선명한 결과물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9월 4일부터 일주일에 4일 꼴로 아이들이 뉴스브리핑을 진행했습니다. 매일 인터넷에서 뉴스 한 꼭지를 골라 내용을 정리하고 자신이 앵커가 돼서 내용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행이나 방학을 빼고 지난 13개월 동안 150회 이상을 진행했고, 현재 함께 생활하는 5학년 중 대원, 준우, 승용이가 모든 회차에 참여했습니다. 
  아이들이 브리핑을 하거나 브리핑 도중에 교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은 추가로 검색하거나 조사해서 질문에 대답합니다. 한 명의 브리핑에 15분~30분을 사용합니다. 아이들은 내용을 디지털 마인드맵으로 정리하고, 발표 모습은 동영상 촬영하여 유투브에 올리고 카페에 공유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여력이 없지만 그동안 발표한 내용에서 사용한 낱말을 갈무리해서 빅데이터로 만들면 매우 재밌는 연구가 될 것입니다.

  하루 300 단어 미만으로 일상을 진행하는 아이들이 '기소' '구속' '집행유예' '입찰' '주가조작' '정당' '공천' '체증(滯症)' '채증(採證)' '집시법' '읍소' '융기/침강' '푄현상' '항성/행성/위성/소행성' '블랙홀/화이트홀' '단통법' '증강현실' '삼투압'등의 단어를 사용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하나의 명사를 알고 자신의 말에 포함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여러 개념의 네트워크가 스키마(schema)로 작용할 때만 가능합니다. (*스키마-구조화된 배경지식)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난 1년 여 아이들은 구사하는 어휘의 증가만큼 성장했습니다. 인지능력의 성장뿐만 아니라 감성과 태도, 심지어 감정을 컨트롤하는 모습도 어휘력 증가와 비례해서 성장했습니다. 같이 먹고 자는 교사로서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전 중등대안학교 학생에게 적용하려고 했었지만 학생들의 거부로 쉽지 않았습니다. 뉴스브리핑으로 스키마를 조밀하게 하려는 시도였지만 반대로 엉성한 스키마 상태 때문에 중고등학생은 브리핑을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허접한 자기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초등의 어린아이들은 부끄러운 감정이 옅고 교사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경향으로 계속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텍스트로 일기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데일리 저널을 멀티미디어를 이용해서 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단지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이상의 의미를 갖는 시도입니다. 

브리핑하기 전에 기사내용을 맵핑으로 정리한다

  이렇게 학생 개인적 브리핑이 가능하고 아이들 활동이 디지털 보관이 되려면 기존 공교육 교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공교육 교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학교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를 끊임없이 주입하고, 90년 대 이후(인터넷 사용 세대) 어린이 청소년은 자기표현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두 자릿수 학생을 만나야 하고, 정해진 수업 아이템이 있으며, 제한된 시간 속에서 수업이 이루어지는 공교육 학교 구조가 깨지지 않고 어린이 청소년이 병들어 신음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자주적인 자기표현에 있습니다. 즉 표현이 배움의 핵심입니다.

(201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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