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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1. 2017

리빙라이브러리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어제(토요일) 지지학교 한 학생의 부모와 오전에 상담했습니다. 1시간 50분 동안 압축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지요. 
  말하다 보면 미리 준비하지 않은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리빙라이브러리(Living Library)....
  약 15년 전에 덴마크 청년 로니 아버겔의 아이디어가 전 세계로 퍼져 매우 유행했던 이벤트입니다. 아마도 토크콘서트도 리빙라이브러리에서 파생했을 것입니다. 휴먼라이브러리라고 변형된 이름을 갖고 있기도....
  김수정이 쓴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를 우연히 보고 넉 달을 준비해서 신촌로터리에 있는 한겨레신문문화센터에서 2010년 2월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리빙라이브러리를 열었습니다. 서고에 종이책이 아닌 사람책(휴먼북)이 준비돼있고, 사람책 대여를 신청한 사람은 일정한 시간(30분 내외) 동안 휴먼북을 읽는다는 개념입니다. 
  사람책이 대여자에게 읽힌다는 것은 자기 살아온 라이프스토리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번 대출되어 대여자를 만나서 얘기해야 하니까 4~5라운드로 제한하고요. 대여자는 1인이 원칙이고 불가피할 경우 극소수로 제한해야 합니다. 사람책이 주인공이고 대여자는 수동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책의 말속에서 궁금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책이 거론하지 않은 이야기를 질문을 통해 들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추궁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로니 아버겔이 제시한 주의사항에는 “사람책은 대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각 서고로 돌아갈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사람책은 대여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등도 있습니다.
  로니 아버겔이 리빙라이브러리를 청소년 평화캠프에서 제안했습니다. 전쟁과 폭력의 반대말로 평화를 사용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는 대화로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따라서 리빙라이브러리는 “명사(名士)와 대화”와 다른 개념입니다. 초빙되는 사람책은 명사와 거리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사람들이 사람책으로 서고에 “비치”됩니다. 소외 자체가 오해에서 생기는 것이고 오해를 방치하면 폭력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에 소개된 사람책은 미혼모, 80세에 솔로로 독립한 할머니, 정신과 치료자, 인체의 신비전에 사후 시신 기증 약속을 한 사람, 트랜스젠더 아저씨, 영국의 매우 비싼 사립학교 졸업자, 여자 소방관, 매춘 노동자 등입니다. 제가 2010년 2월에 진행한 리빙라이브러리에 초빙한 사람책은 양심적 병역거부 첫 사례(천주교) 고동주 기자, 구자범 광주시향 상임지휘자, 김동수 연극배우, 김동애 대학강사 투쟁본부 본부장, 김명준 다큐 감독, 김미아 전국지역아동센터 협의회 이사,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김연숙 간디여행학교 교사, 김태오 지리산둘레길 쉼터 나마스테 운영자, 리언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우경아 패션 디자이너, 최은아 교원대 강사, 최혜원 교사(일제고사 거부 해직자) 등이었습니다. 
  

그런 리빙라이브러리를 가정에서 해볼 것을 권합니다.


  사람책으로 초등학생 이상 가족 구성원 누구나 설 수 있습니다. 나머지 가족이 대여자가 됩니다. 한 달에 한 번 해보면 좋겠습니다. 시작과 끝나는 시간을 정해 놓고 사람책이 기다리는 자리와 대화하는 자리를 일부러 꾸밉니다. 진행을 보는 가족도 한 명 정하고요. 후기 담당자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라운드를 정해서 가족이 돌아가면서 사람책을 해도 좋습니다. 철저히 사람책이 주인공입니다. 대여자 가족이 사람책에게 이야기 소재를 권유하든가 하는 어떠한 압박도 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은 20~40분 범위에서 조정하면 되겠고요. 어린 친구일 경우 10분도 가능합니다. "사람책은 말한다. 대여자는 듣는다" 평소 이런 포맷으로 가족이 함께 자리하지 않습니다.
  사람책이 행복할까 대여자가 행복할까. 제 경험으로 늘 사람책이 감격스러워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한 부모님께 권유한 것입니다. 지지학교에서 생활하는 아이가 사람책이 되는 경험을 하도록 말입니다. 처음부터 할 수 없으니 어른이 먼저 사람책이 돼서 가족 리빙라이브러리를 진행하고 두세 번째 아이가 사람책이 되도록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하나 더 제안했는데.... 가족 리빙라이브러리를 스마트폰으로 녹음해서 파일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말한 내용을 녹취록으로 만들고, 아이와 상의해서 정식 판매하는 책처럼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아직까지 학습과정에서 최종적인 목표는 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쓰기란 참으로 어려운 결과물입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쓰기를 잘할 수 없습니다. 특히 지지학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읽기와 쓰기에 약합니다. 하지만 듣기와 말하기는 결코 부족하지 않아요. 이런 아이들이 쓰기로 가려면 중간 다리를 놔줘야 하는데 그것이 자기 녹취를 책으로 편집하는 것입니다. 출판사 이름과 바코드, 책값도 인쇄된 진짜 책 형태로 만들면 자신감이 몇 배 고양됩니다. 본인이 말한 것이니 자기가 쓴 것과 같이 자부심을 갖습니다. 
  리빙라이브러리가 아닌 창작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고 녹취를 풀어서 책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림을 곁들일 수도 있습니다. 무척 신기한 작업입니다. (20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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