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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1. 2017

모성애에 대하여

모성애는 만들어진 개념

  지난주 화요일에 2학년 남자아이와 부모님이 상담 차 학교에 오셨지요. 지지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아빠는 자영업을 엄마는 직장을 다니는 부모님입니다. 늘 2시간 가까이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진행되다가 모성애에 대해서 말하게 됐습니다. 이 문제는 한국의 어린 자식을 둔 부모들과 함께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자신의 환경과 가족 구성원을 생각합니다. 가족들끼리 생각의 교집합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겹치지 않습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게 다른데 같은 생각을 한다고 합의하고 가정은 유지됩니다. 같은 “파랑”을 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어떤 파장의 빛을 보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단지 “파랑”이라는 언어만을 통일적으로 사용하는 것만 분명한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누구도 알 길이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합의하고 있다는 것뿐. 합의가 깨지면 갈등과 분란으로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 됩니다.

  모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라면 당연히 본능적으로 가지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합의한 것은 각 가정의 개별적 사정과 사회적 환경을 무시한 정치적인 서술입니다. 물론 자신의 뱃속에서 9달을 가지고 있다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가 소중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엄마로서 헌신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절반의 DNA를 제공한 아빠는 자궁이 없다는 이유로 희생적인 헌신에서 면제돼도 되나요.

  엄마는 한 인간이지만 사회적으로 다양한 관계를 맺고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직장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는 엄마라면 집에 돌아왔을 때 내 새끼가 예쁘긴 하여도 새끼를 위한 또 다른 노동을 수행하는 것은 누구나 부담입니다. 이때 누군가 모성애를 동원해서 일하는 엄마의 가사노동을 당연하게 말한다면 비겁한 것이며 꿍꿍이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꿍꿍이의 주인공은 남편도 시어머니도 아닌 사회 시스템입니다. 사람을 인적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엄마나 아빠가 가족 구성원이라는 건 무시됩니다. 노동을 하고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면서 양육과 노인부양의 공공성은 모른 척하고 모성애와 효심이 해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의 관점입니다. 모성애에 대한 환상은 아이도 수용합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모성애가 자신을 보호하고 서비스를 제공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이도 사회 권력의 입장에 섭니다.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았을 때 엄마를 비난하게 됩니다. 과거에 없던 현상입니다. 엄마의 이중고통의 한축은 자신의 아이에게 있기에 더욱 우울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힘들어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지 않습니다. 신체적으로 비만의 가능성이 높고, 정신적으로 우울감, 낮은 자존감, 피해의식이 자리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에 대한 존중은 아이 자신감 및 자부심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도 엄마를 존중해야 하지만 먼저 남편과 기타 가족 구성원의 존중은 필수입니다. 아이는 엄마의 사회적 포지션이나 명성, 연봉에 영향을 받지 않고 엄마가 제공하는 안락함의 주관적 측량에 따라 엄마를 평가하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사회생활하는 엄마들 중에 억울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고학력 전문직 엄마 중에 가족(주로 남편)의 서포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해당합니다.

  엄마라면 본능적으로 샘솟는 것이 모성애가 아닙니다. 모성애는 가족 구성원이 엄마를 존중하고 아끼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생산품과 같습니다. 가족의 존중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근력을 충분히 축적한 엄마가 생산하는 모유와 같은 개념이 모성애이며, 함께 만든 모성애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선순환이 가능합니다.

단언컨대 가정교육의 출발은 엄마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족 : 부성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있다면 엄마를 통해 발현됩니다. 그러니 아빠인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는 것만으로 판타지로서 부성애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 사정으로 엄마가 없이 아빠가 아이를 키운다면 아빠가 모성애를 발휘하는 것이지 부성애로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닙니다. (201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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