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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1. 2017

미리 써보는 수료식 회고사

사람은 공부하는 존재

  오는 24일 지지 학교 어린이 10명은 학습발표회를 하는데 그 자리가 5명 아이의 수료식장이기도 합니다. 지지학교의 원래 취지대로 공교육 학교로 복귀하는 것이라서 ‘졸업’이 아닌 ‘수료’를 사용합니다. 수료식은 따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세리머니 형식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어쨌든 다섯 명의 아이들은 24일 공연 이후 지지학교를 떠납니다.

  학교의 대표교사로서 무언가 마지막 인사와 당부를 해야겠지만 수료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정색을 하고 인사말을 하는 것도 어색하기에 글로 남깁니다. 

지지학교를 떠나서 공립학교로 복귀하는 아이들에게 

  가족과 떨어져서 주중엔 기숙을 하며 선생님 잔소리 견뎌내고 잘 지내줘서 고맙다. 4학년과 6학년으로 복귀하 는 너희들에게 선생님으로서 마지막 잔소리를 하고 싶어서 여기에 편지를 남긴다. 이 편지는 카페에 올라있어 긴 시간이 흘러도 너희가 찾아볼 수 있을 테니 조금 더 큰 청소년이라고 생각하고 얘기를 전할게.

  사람은 동물보다 발달한 뇌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생각과 생각을 합치고, 서로 다른 생각 사이에 연결통로를 만들며 스스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도 하지. 동물들은 할 수 없는 일이야. 이번에 지지학교를 수료하고 공립학교에 복귀하는 너희들의 머리도 사람답게 충분히 발달한 뇌를 가지고 있단다.

  그런데 뇌는 컴퓨터와 비슷해. 컴퓨터가 아무리 최신형이라도 아무것도 깔지 않고 게임을 할 수 없잖아. 맵핑을 하려면 선생님이 USB 메모리를 가져다가 씽크와이즈 프로그램을 각자 노트북에 심어주잖니. 사람의 뇌도 똑같아. 자기 스스로나 때로는 자기가 아닌 남이 프로그램을 심어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어. 뇌에 프로그램을 심는 것을 공부라고 한다. 사람에게 공부는 평생 동안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 사람답게, 사람으로서 당당하려면 공부해야 한다.

  공부 안 하면 사람 구실 못한다고 생각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사람 머리가 얼마나 훌륭하게 발달했냐 하면 밥 잘 먹고 건강하면 대부분 저절로 공부가 된다. 자동 공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

  물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사람과 잘 어울리고 대화를 많이 해야 돼.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은 함께 잘 노는 것을 말하고, 대화란 말하기와 듣기를 함께 일컫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혼자만 논다거나 TV, 컴퓨터 하고만 논다거나 하면 자동 공부 시스템이 망가져 버린다. 또 듣지는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늘어놓으면 마찬가지로 자동 공부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생님이 욕을 아주 싫어하고, 욕 하는 사람에게 심하게 잔소리하는 거야. 욕이란 가장 일방적으로 내 말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다행스러운 것은 너희들이 혼자 놀지 않고 지지학교에서 서로 잘 어울려 놀았고, 대화도 곧잘 하면서 지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에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아쉬운 한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너희들이 지지학교를 떠나게 돼서 무척 안타깝다.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려고 이번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너희들은 지지학교에 오기 전에 이미 자동 공부한 내용이 있어. 모두 소중한 공부들인데 한 가지 잘못 공부한 내용이 있단다. 내가 필요한 것을 가지려면 먼저 남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른 공부인데, 남의 것을 기술과 능력을 발휘해서 빼앗아오는 것이 내게 필요한 것을 얻는 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잘못 공부한 것이다. ‘주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잘못 알고 성실하게 내 것을 모으면 행복해진다고 믿는 것이 선생님이 말한 유일한 아쉬움이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각자 자기 것을 확보하는 것이 맞다. 그때는 자기 것을 갖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너희들이 계속해서 남에게 자기 것을 줘야 한단다. 자기 돈과 과자와 장난감을 주라는 것이 아니다. 돈, 과자, 장난감은 주든지 안 주든지 상관없다.

  진짜로 주는 것은 친절이다. 남에게 네 친절을 줘야 한다. 친절을 주어야 한다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 있을 것이다. 친절을 준다는 것은 바로 남의 불편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의 불편을 해결하려면 남의 불편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겠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과 생명이 있는 존재들에게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살펴보고, 불편함을 발견하면 그 불편함을 없애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창가의 화분에 있는 작은 꽃나무가 목말라하는지 잘 살피고, 목말라한다면 물을 떠다가 친절하게 주어야 한다. 흥부가 부러진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듯이 네 주변의 동물들의 불편을 없애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사람은 오죽하겠니. 또래 친구든 아빠든 엄마든 할아버지 할머니든 주변 사람들을 잘 살피고 불편함이 있다면 줄이거나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써야 한다.

  너희들이 어떤 이유로든지 잘못 공부하여 남의 불편을 놀리면서 속 시원하게 여기고 자기 불편만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면 정작 자기가 필요한 서비스와 물건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언제나 네 주변에는 너희들과 똑같은 모습과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네가 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너에게 주지 않는다. 네가 주려고 마음을 쓰면 네 주변의 사람들은 네 불편을 살피고 불편을 줄여주려고 애쓸 것이다. 이런 이치는 사람이 살아온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다. 이런 전통이 아니었다면 자연계에서 가장 힘이 약한 사람은 벌써 멸종됐을 것이야.

  인류가 이어온 이치에 따라 선생님은 너희들의 불편을 살피고 그 불편을 없애주려고 지지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다만 선생님의 판단과 노력이 부족해서 종종 너희들에게 오해를 사고 실제로 불편을 없애주기는커녕 불편을 늘리기까지 한 일이 많았다. 이번에 너희들을 지지 학교에서 떠나보내며 선생님의 부족함을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 더욱 반성하는 모습으로 너희들의 지지 학교 후배들에게는 선생님의 본래 뜻이 잘 이루어지도록 노력할게.

  공립학교로 복귀해서 많은 친구들과 다시 공부하게 된 너희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밥 잘 먹고 건강해서 원래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자동 공부 시스템이 잘 작동되도록 신나게 놀고, 듣고, 말하는 날마다가 이어지길 바란다. 안녕~ (20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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