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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1. 2017

프레임 밖 프레임

진짜 세상은 프레임 밖에 있습니다

  엊그제 고3 졸업하는 정호(가명)를 만나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10여 년 전에 정호의 누나를 이태 연속 담임했었지요. 정호는 초1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이제 학생이 아니라 사회인이 된다고 축하하려고 마련한 자리입니다.
  정호는 선천적인 심장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몸집이 커지면서 심장과 혈관도 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겁니다. 너 다섯 차례 인위적으로 심장과 관상동맥을 늘이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1년 전에 아마도 마지막이길 바라는 수술을 했습니다. 전 세계에 5명만 있는 경우라고 합니다. 부산에 한 명이 있었는데 수년 째 병원 방문 데이터가 없으니 한국에서 정호만 유일한 환자라네요. 태어나서 곧 죽을 거라는 진단이 있었고, 살면서 언제 심장이 터져서 죽을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계속 받고 살았습니다. 아기 때부터 혈압강하제를 먹었고 혈액 점성을 낮추는 약을 계속 복용하기 때문에 출혈에 매우 민감해야 합니다. 치과 스케일링 정도도 입원을 해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시술하는 경우입니다.
  어쨌든 이 아이는 죽지 않았고, 온순하고 명랑한 캐릭터를 가졌습니다. 과격한 운동이나 작업은 금물이라 언제나 조심조심 살아서 근력이 약하고 세밀한 움직임이 필요한 동작은 엉망입니다. 글씨를 쓰거나 구기 스포츠에 매우 취약합니다. 타이핑은 가능하고요. 키도 162cm로 작은 편입니다. 치아 부정교합이 심해서 생김새도 손해를 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아기 때 전신마취 수술을 여러 번 받아서 그런지 학습장애가 두드러집니다. 단순한 문장을 읽고 쓸 수 있는데 숫자에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1000원 10장이 만원 한 장과 같은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1000원에서 300원을 쓰면 700원이 남는다는 계산을 할 수 없습니다. 슈퍼주니어 노래를 무척 좋아하고 노래방 가는 걸 즐기지만 음치입니다. 주변에 노래방 가자고 선동하지만 아무도 함께 가질 않습니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한없이 좋아합니다. 런닝맨을 좋아하는데 유재석과 게리, 송지효가 좋아서 ipTV에서 본 것 또 보고 또 보고 합니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해하기 어려워 안보지만 요즘 태조 왕건을 찾아서 본다고 합니다. 유아인(이방원)의 아버지가 이성계라는 건 압니다.
  부모의 걱정은 하나 더 있습니다. 누가 요구하면 거절하지 못합니다. 밖에서 모르는 사람이 달라고 하면 돈이든 옷이든 다 줘버립니다. 주변에서 바보라고 놀리고 욕을 하면 늘 웃습니다. 기분 나쁘지 않았냐고 물으니 무척 속상했다고, 화가 났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친구들의 개인정보를 물어 신용카드나 핸드폰을 개통해서 사기를 치는 나쁜 놈들이 많다고 엄마가 한 걱정입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특수반에 속해서 자랐는데 고3 때 복지관 하고 연결해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열심히 만든 카푸치노에 거품이 전혀 없어서 탈락했답니다. 다음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라고. 합격하면 카페에 취직하고, 나중에 자기 카페를 차려서 사장님 소리 듣겠다고 합니다. 나는 무어라 반응하기 어려웠는데 옆에 있던 엄마는 빙그레 웃고 맙니다.


"정호가 건강이 더 나빠지는 일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엄마의 걱정에 대해 유추하시오."

  정호를 두고 정호의 부모가 무엇을 걱정할까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걱정조차 디자인됩니다.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되는 것"입니다.
  엄마는 정호가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1시간 정도는 걸을 수 있고 서너 시간은 서 있을 수 있으니까 단순노동을 해서 자기 밥벌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부모라면 다 똑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간단한 가감승제 계산을 하길 바라고 최소한 계산기를 들고 다니며 거스름돈을 스스로 알고 500원이 12개면 6천 원이란 "답"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예상 가능한 부모의 바람입니다. 부모가 죽었을 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길 원했습니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세탁기를 돌려서 빨래를 하고 고지서가 나오면 은행에서 납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로서 당연한 바람입니다. 사기꾼을 구별할 수 없으니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마음 아프지만 현실적인 당부라고 봅니다.
  정호가 5학년 때 하루를 저와 함께 수업한 적이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계산기를 들고 평화시장에 갔습니다. 상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품 가격을 물어서 세 가지 품목을 샀을 때 합계가 얼마인지 계산기로 두르려서 알아보는 훈련을 했었습니다. 훈련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호는 반면 일기장에 종종 시인 듯 아닌 듯 시 같은 문장을 썼는데, 깜짝 놀랄만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 문장이 나오지 않습니다. 

  과연 정호를 위한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당시부터 붙들었던 화두입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만나서 밥 먹었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정호랑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정호 엄마가 바라는 바와 정호를 만나는 교사가 바라는 바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미궁에 빠진 우리 교육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정상적인' 보통의 어른들이 정호에게 주거나 바라는 것은 정호의 결핍을 전제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교사의 입장은 정호의 결핍 사항이 자신에게는 결핍이 아니라서 자신이 정상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핍의 장애인은 '어떤 교육 프로세스'를 거쳐 결핍의 양이 줄어들기 바랍니다. 교육 전에 결핍된 요소가 교육 후에 부분적이라도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주류 생각은 정호를 구할 수 없습니다. 소위 "끌어안는 배제"("잘라내는 배제"에 대비되는 표현으로서)만이 가능하고 정호는 장애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늙어갈 것입니다. 

  할 수 있는가, 알고 있는가 질문에는 고정된 전제가 있습니다. 전제까지 표현해서 다시 질문하면 개체로서, 개인으로서 네 스스로 아느냐,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느냐의 질문입니다. 고립되고 개별화된 개인을 전제로 이야기를 푼다면 끌어안는 배제와 잘라내는 배제는 결국 하나로 합쳐집니다. 배제라는 행위만이 남지요. 그리고 우리의 배제는 장애인 카테고리를 만듭니다. 배제하지 않으면 장애인 개념도 사라집니다. 캐나다 비어드 섬에 30%는 농아이지만 나머지 모두 수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어드 섬에서는 장애/비장애의 구분이 없다는 사례가 장애에 대한 진보적인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지금의 학교교육은 냉정하게 말하면 장애등급을 구분하는 과정입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네가 얼마나 결핍돼 있는지 말해주는 존재일 뿐입니다. 학교에 다님으로써 학생들이 모두 높은 등급을 바라는 장애인일 뿐이라는 시각이 진보적이거나 과격한 것이 아닙니다. 학교라는 시스템의 목적과 프로세스가 분명하기 때문에 선(善)하고 헌신적인 교사의 수많은 시도들이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호가 할 수 없는 수행을 할 수 있게 된다든가, 20살 이후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바람은 "디자인된" 프레임에 불과합니다. 프레임 밖의 세상이 훨씬 드넓고 다양하며 행복합니다. 프레임을 깨고 탈출하는 방법으로서 교육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정호는 이미 제가 해야 하는 일의 방향성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2016.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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