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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1. 2017

제주도 동백동산

동백 is 이노센트

  제주도에는 람사르 지정 습지가 다섯 곳이 있습니다. 그중 선흘리 곶자왈 습지, 일명 동백동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난 2월 아이들과 제주여행을 한 마지막 날에 이곳에 다녀왔습니다.

  제주도 곶자왈이라 하면 말 그대로 자왈(돌멩이)이 많은 곶(숲)을 말합니다. 제주도 돌멩이는 대부분 현무암이거나 화산탄(제주말 '송이')이라 물이 고이는 법이 없는데 선흘리 곶자왈은 일부 지역이 묽은 용암에 의해 일종의 바닥코팅이 이루어지면서 연못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선흘리 곶자왈은 곶자왈이면서 습지가 함께 있는 드문 경우로 람사르 지정 습지보존지역으로 등록됐습니다.

  이곳 선흘리 곶자왈에는 동백나무가 많아서 동백동산이란 별명도 붙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동백꽃이 흐드러질 철에 붉은 동백꽃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다 간간히 보이는 정도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동백나무는 천진데 동백꽃이 드문 경우는 그만큼 동백나무가 햇볕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백동산에 참나뭇과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동산 어디에서도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녀석들은 웬만큼 자라면 베어져 숯이 되던 놈들이었죠. 벌목이 금지되자 참나뭇과 나무들은 동백나무보다 생장이 빠르고  위로 뻗는 성질이 있어서 동백나무에게 그늘을 제공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동백꽃 개화율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동백꽃이 잘 보이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동백나무는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동백나무는 반드시 일조량을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키를 높이는 것입니다. 내륙의 오래된 동백들은 아름드리나무도 흔합니다. 그리 키가 크지도 않습니다. 동백동산의 동백나무들은 참나뭇과 나무만큼 크려고 가늘고 길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참나뭇과 나무들이 위로 자라는데 선수들입니다. 동백나무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앞으로 동백동산의 동백나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살아남는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요.

  일부 동백나무들이 덩굴식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수 십 년 후에 동백동산의 동백나무들은 참나뭇과 나무들을 칭칭 감은 덩굴로만 보일 겁니다. 하지만 덩굴 중간중간 붉은 동백꽃은 여전하겠지요. 

  붉은 꽃잎에 샛노란 수술이 선명한 한참의 꽃송이가 어느 날 뚝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모습이 젊은이의 요절을 보는 듯하다고 해서 집 마당에 절대 심지 않았다는 동백나무의 생존투쟁이 장엄하게 다가옵니다. 덩치를 포기하고 가늘고 길게 자라는 동백나무가, 결국엔 덩굴로 변한 동백동산의 동백나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나요. 동백동산의 모든 동백들은 무죄입니다.

  오동나무 없는 오동도의 동백들이 여유 부리며 해풍을 맞을 때, 선운사 오백 년 동백고목들이 젊잖은 기침으로 기품을 뽐낼 때 선흘리 동백들이 간간히 붉은 피를 쏟으며 몸부림치는 것을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름이 동백동산이라 만발한 동백꽃을 상상하며 왔는데 실망스럽다" 말하는 방문객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먼 허공에 외롭게 핀 한 송이 동백꽃이 눈물 나게 사랑스럽습니다. 여기저기 숯가마터가 남아 있는 선흘리 곶자왈에도 4.3의 흔적은 진하고 많습니다. 곶자왈 안에 다섯 개 동굴이 있는데 그곳이 모두 양민들 피난처였고 동시에 모두 그들의 무덤이 됐습니다. 당시엔 참나뭇과 녀석들이 없었기에 이름 그대로 동백동산이었겠지요. 그 후로 동백나무들의 변신은 운명처럼 시작된 것입니다.

  동백동산 트레킹을 마치고 빠져나오면서 교실 안에 앉아 있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학생들은 자기 책상 자기 걸상이 있어서 정해진 좌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동백동산의 동백나무들처럼 말입니다. 교실 속 아이들이 표준적 인간상과 다르게 자란다고 해서 배제하는 것은 도감에 그려진 동백의 모습과 다르게 변한 동백동산 동백나무에게 실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그들은 생존을 위한 최적의 변신을 추구한 것이지요.

동백동산의 동백나무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토종 동백의 단아한 기품을 간직한 동백꽃을 피웁니다.

  제주에 가시면 선흘리 곶자왈 산책을 꼭 해보시길 권합니다. (20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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