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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Sep 27. 2023

몸살 감기 탈출

2023.5.15(월)

마지막 환자였던 나도 몸살감기에서 탈출했다.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책임감은 무서운 놈이다. 두 아이와 처음 까미노 경험하는 여자 선생님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앓아눕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처음 가루약 형태의 종합감기약은 별 효과가 없더니, 캡슐 형태 감기약 먹고 떨쳐버렸다. 문제는 약을 먹으면 졸리다는 거….


암튼 아침엔 몸살 기운이 남았지만, 오후엔 완전 회복됐다.



감기에 시달리다가 다시 걷는 일이라, 8km 떨어진 La Virgen 마을까지 걸었다. 


두 아이 번갈아가며 속을 뒤집는 바람에(큰아이도 한때 사라지거나 뒤로 걸어서 숨박꼭질을 했다) 결국 10km를 걸었다.


더구나,


작은아이 자동차 장난감을 레온의 외곽지역에 두고 와서 숙소에서 다시 거꾸로 걸어가서(작은아이+나) 찾아오는 바람에 4km 더 걸었다.


걷기 잘 하는 작은아이도 나중에 지쳐서 길에 눌러앉더라. 

나도 힘들고, 저녁 시간도 맞춰야 해서 버스를 기다리는데(30분마다 지나가는 버스가 있다고 구글이 알려줌) 1분 후 온다는 버스가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고, 마침 지나가는 택시가 있길래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작은아이 집착이 이때 집념으로 느껴져 마음은 훈훈….



레온 숙소는 아파트 에어비앤비였다. 주변에 까르푸도 있고, 커다란 완구 체인점이 있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아 작은아이는 아쉬웠했다.


“선생님, 사지 않고 구경은 하고 싶어요”


그 말을 믿은 건 아니지만, 월요일 아침 영업개시한다는 9시30분에 정확히 맞춰서 완구점에 입장했다. 


입이 귀에 걸린 작은아이가 한 말


“와~ 스페인 좋은 나라네. 여긴 진짜 커요!”


한 5백 평은 되는 매장을 돌아다니던 아이는 스쿨버스를 선택했다. 이 아이의 장래 희망 1순위가 버스 기사다.


따라가지 않으면 뭔가 손해보는 느낌을 가진 큰아이는 매장에서 럭셔리한 노트를 선택했다. 지난 번 구입한 노트를 잃어버렸다고…


완구쇼핑은 임상적인 문제도 아니고 발달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문화적 현상이다.


다행히 작은아이는 “돈이 없다”고 말하면 더이상 조르지 않는다. 


문제는 구입한 최애 완구가 일주일 안에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꺼리를 찾아 목말라한다는 것. 이건 확실히 문제다.



큰아이 애착인형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가 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말장난으로 선생님과 대등해지려는 모습(주어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따위)에 대해 지적하자 “나 이제 까미노 더이상 걷지 않겠어” 하더니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금방 찾긴 했다. 찾을 만한 곳에 숨었고, 우리 일행이 어디로 가는지 살피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후 큰아이 왈,


“나는 박샘이 작은아이만 사랑하고 나는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어”


다시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후 큰아이 왈,


“박샘~ 작은아이에 대해 어떤 입장이야?”


“선생님은 무한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그럼 나는?”


순간 아까 했던 사랑 운운이 생각나서 (지금은 둘만의 대화) ”으응…. 너는 선생님이 사랑하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휴~ 다행이야!“


짧은 대화에 많은 게 들어있다. 



완구점에서 돌아와 오전 10시 조금 넘어 숙소에서 출발했다. 길게 걷지 않겠다고 하니 텐션이 떨어졌는지 돌발사태가 여럿 있었다(큰아이 사라지거나 작은아이 길에서 크게 울거나)


하지만 결국 정해진 숙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밤은 찾아오고 아이들은 잠든다. 당연히 다음날 해가 뜬다. 


나의 상념은 우주 운행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인생의 시계는 계속 가는 법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16일 아침 7시….


어제 숙소에서 일기를 쓰려다가 포기했다.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바깥 온도가 5도 이하로 떨어지는데 난방이 없다니.


입을 수 있는 건 다 입고 덜덜 떨면서 잤다. 새벽에 좀 덥다고 느껴 깨보니 라디에이터가 들어온다.


그래서 이제야 어제 일기를 작성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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