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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Sep 26. 2023

부르고스 입성

2023.5.7(일)

어제는 덜 긴장하려고 우리 네 명만 한 공간을 사용하는 Casa rural(시골 민박)에 들었다. 알베르게보다 두 배 이상 비싸지만 내부에 스팀사우나도 있고, 간이부엌도 있어서 시원하게 땀도 흘려보고, 3일 째 들고 다니던 중국 라면을 끓여먹었다. (역시 라면은 한국 라면이 짱. 20년 전 일본 편의점 라면 맛이 나쁘지 않았지만 이제는 한국 라면 못 따라온다)


무엇보다 두 아이의 사소한 갈등으로 인한 소음을 신경쓰지 않아서 행복했다.

부르고스는 순례길에서 두 번 째로 큰 도시다


민박집은 아따푸에르까 소속이지만 카미노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아침에 높은 언덕을 넘어 카미노에 합류했다. 카미노 부근의 숙소를 잡았더라면 볼 수 없는 고지대의 풍광이 대단히 멋지다.


역시 삶은 우연의 직조로 이루어진다.

부르고스엔 부르고스대성당이 중심이다

19km를 걸어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시계에 들어와서도 6km를 걸었다. 부르고스가 꽤 큰 도시라서 부르고스 성당(스페인 3대 성당 중 하나) 옆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까지 아스팔트길을 오래 걸었다.


중간에 보이는 bar는 모두 들렀다가 쉬어가느라 8시10분에 숙소에서 나와서 오후 4시 반에 부르고스 알베르게 Los Lerma에 도착했다.


작은아이가 지금까지 숙소 중에 최고라고 좋아한다. 한 10년 전에 알베르게 목적으로 신축한 건물이라 디자인과 기능성이 뛰어나다. 일인 10유로, 4년 전에 6유로였다.



작은아이는 어제 민박집에서 본 어른 손바닥만한 스포츠카에 집착을 보이며 어제 저녁부터 오늘 부르고스에 도착해서 마음에 드는 인형을 구입할 때까지 계속 울거나 골을 부렸다.


처음엔 민박집 자동차 장난감을 주인에게 20유로를 주고 사자고 제안하더니(주인이 살지 않는 민박집. 주인하고는 문자로만 소통) 50유로도 좋고 100유로도 좋으니 반드시 민박집 헌 장남감 자동차를 자기 손에 넣겠다는 거다. 정 안되면 훔쳐라도 가겠다는 걸 부르고스에 가서 어린이날 선물로 자동차 완구를 사주겠다고 간신히 설득했다.


‘일요일이라 장남감 가게가 열지 않았을 텐데….’ 걱정을 하며 도시에 들었는데, 우리 다이소 성격의 마트가 문을 열고 있었고, 작은아이는 가게를 한바퀴 돌더니 중국산 달팽이 인형을 기쁜 마음으로 영접하더라.


“자동차 필요없어요. 이게 가장 맘에 들어요”


애니 <터보>의 주인공 달팽이 이름이 터보다. 작은아이는 터보를 닮은 달팽이 인형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8유로를 주고 샀고, 작은아이는 큰아이와 같이 언제나 들고다니는 애착인형을 손에 넣었다. 평생 같이 살 거라고…..


자동차 장남감부터 달팽이 인형까지 24시간의 해프닝은 내게 상처를 줄 정도로 갈등/울음/설득/애원/타박/협박/불면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작은아이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으니 <성공>한 해프닝이 되었다.


이제 <성공>까지 했으니, 아이의 떼쓰기작전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울음을 이길 수 없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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