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넷째날

프랑코와 박정희_산토도밍고 (2019.10.24)

by 박달나무

1.

점심을 먹은 씨루에냐는 아파트가 즐비하고 멋진 골프장도 있지만 인구 100여 명에 불과한 괴이한 마을이다. 아파트가 대부분 텅텅 비어있고 ‘En Venta(for sale)’ 딱지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공포영화를 찍을 만한 곳이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바르(bar)가 딱 한군데 있어서 들어갔다. 토마토 스파게티를 시켰더니 한국적 스파게티 맛이라 아이들이 폭풍흡입~ 나는 생맥주 한잔을 마셨다....가 한잔 더 마시고 충만함을 얻었다.

식당 TV에서 계속 프랑코를 떠들었다. 45년 만에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국립묘지에서 파헤쳐져서 일반인 묘지로 이장했다는 뉴스다. 프랑코가 누구던가.... 독재의 상징이고 박정희의 롤모델이다. 프랑코는 1966년에 법 개정을 통해 총통에 오르고, 박정희는 1972년에 유신헌법을 만들어 총통에 오른다.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에서 우파 반군 지도자로 승리하여 스페인 공화정을 내몰고 자신이 다스리는 스페인국(나라국)을 세워서 죽을 때(1975년)까지 다스렸다. 스페인 내전은 유명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배경일 뿐 아니라 작가 헤밍웨이가 직접 참전하기도 했다. 코민테른과 전 세계 좌파 세력의 열렬한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수세에 몰리자 전 세계 지식인들의 참전 러시가 이어졌다. 스페인 내전으로 50만 명이 죽었다. 프랑코 집권 이후 저항 세력 수십 만 명을 학살했고, 현재 우리가 있는 곳에서 가까운 바스크 및 카탈루냐 독립세력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지금 바스크 지방은 외교부에 의해 여행주의지역으로 지정됐다.(독립운동으로 유혈충돌)

그런 천하의 � 새끼를 국립묘지에서 파헤치는데 44년이 걸렸고, 오늘도 프랑코를 지지하는 것들이 눈물 바람으로 이장 반대를 외치고 있다. 박정희는 내일로 죽은지 딱 40년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국립묘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부에서 반신반인이라 추앙하기도 한다.

식당의 TV 뉴스는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프랑코 유해를 담은 꽃장식 관을 헬기에 싣는 모습이고, 그의 손자가 뒤따르는 영상이다. 프랑코와 박정희는 20세기의 성격을 상징한다. 내 권력에 반대하면 잡아서 사형시키고, 맘에 안들면 가두고 두들겨 팼다. 맞다가 죽으면 암매장하고 실종처리하면 그만이었다. (난 조현천이 김형욱의 길을 갔다고 본다. 갑자기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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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세기를 청산하지 못하고 21세로 넘어온 대가를 치르고 있다. 조국이니 윤석열이니 이름이 오르내리고 주말마다 초대형 집회가 열리는 일의 뿌리는 20세기에 있다. 이렇게 나라를 흔드는 사태와 똑같은 방식과 성격으로 교실에 축소 재현되고 있다. 아이들의 삶에 20세기의 모순이 폭탄처럼 터지고 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정서가 아이들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니 룰은 당연히 무시되고 인과관계의 맥락은 쉽게 폐기되며 과잉행동과 억지주장이 최선이 된다. 누구나 이런 공기를 마시고 있고 벗어나지 못한다.

“너 죽을래!” “죽어!” “죽여버릴 거야!” 너무도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온다. 아직도 그렇다. 저주의 말을 내뱉는 아이들의 잘못은 일도 없다. 맘에 안들면 죽여버리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 이들이 여전히 권력의 최상부에 있는데 태어난지 20년도 안 된 아이들이 떠안을 책임이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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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아이들은 이틀 연속 이태리 여행을 얘기한다. 그런데 맥락이 바뀌었다. 이태리에서 핏자를 먹고 싶다에서 7성급 호텔에 가고 싶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타고 싶다로 바뀐 것. 예상한대로 다음 얘기는 7성급호텔은 하룻밤에 얼마냐, 페라리 스포츠카는 얼마냐, 람보르기니는 얼마냐 질문한다. 아이들에게는 비싼 값이 그대로 권위다. 다음 수순은 뭘지 당연히 예상된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아이들이 똑같았다.

“내 차가 그랜저인데요... 그랜저는 얼마인가요?”

“뭐? 니 차가 그랜저라니... 아주 당당하게 자기차라고 말하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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