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달나무 Aug 04. 2017

엄마는 아이를 짝사랑 합니다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괴롭히는 심리에 대하여

  아이들은 종종 엄마를 괴롭힙니다. 여러 유형이 있는데, 오줌싸기/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기/주변 아이들과 쉽게 시비 붙기/맥락 없이 울기/타인 앞에서 무리한 요구하기/물건 집어던지기(파괴나 손괴로 감정 표현하기)/공공장소에서 탈의(바지 내리기 또는 발가벗기)/부모를 경찰에 신고하기/마트나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드러눕기 등 다양합니다.

  자신과 엄마 외 지켜보는 눈이 있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것은 대부분 엄마를 괴롭히는 행위라고 보면 됩니다. 이것은 엄마에 대한 강력한 저항 메시지입니다. 물론 엄마를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에게 저항하는 것은 엄마의 권위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엄마는 서비스 공급자이면서 어른으로서 권위를 가집니다. 전자가 양육의 결과고 후자가 훈육의 전제입니다. 서비스 제공하지 않는 양육이 있을 수 없고, 권위에 기반하지 않는 훈육도 불가능합니다.

  일부 아이들에게는 서비스 제공과 권위를 갖는 사람이 다를 수 있습니다. 바로 엄마가 아닌 사람이 영유아 때 양육 서비스를 제공한 경우입니다.

  "서비스는 보모가 줬는데, 생모인 당신이 엄마의 권위를 내세우며 행동을 강제하다니,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이게 엄마가 아닌 분에게 영유아기 보육이 맡겨진 아이들의 속마음입니다.(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따라서 내 경험으로 말한다면, 양육 서비스 제공자와 엄마가 동일할 경우 엄마의 권위에 의한 억압의 상황을 아이가 잘 받아들입니다. 즉 엄마가 행동교정을 위해 언성을 높이거나 매를 든다 해도 수용합니다. 반대로 영유아 시기 아이를 할머니나 이모, 유료 보모에게 맡긴 경우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둘로 분리됩니다. 생모는 아이에게 권위의 화신으로만 인식될 수 있어서 부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아이는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육 서비스를 불가피하게 생모가 하지 못했을 경우에 "엄마"는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낳은 이로서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엄마 자신이 '지시' '교정' '훈육' '훈련'의 개념을 정말 해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계속된다면 당분간은 엄마가 아닌 룸메이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계속 동거를 원한다면 룸메이트에게는 지시가 아니라(그러면 당장 헤어지지 않겠는가) "너로 인해 내가 불편함을 느낀다"라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중하게 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것뿐입니다. (2016.9.26)

매거진의 이전글 출발점, 2009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