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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Aug 08. 2017

과잉보호

한라산 백록담에서 바라본 오늘의 세계

  지난 16일 아이들과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습니다.


  날씨가 좋았습니다. 파란 하늘, 흰구름, 긴 시야, 고도가 높아 서늘한 기온....
  고등학생 수학여행 온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투덜이들이 많았고 먹은 컵라면 용기를 바위틈이나 의자 밑에 몰래 버리는 녀석들도 있었지만(덕분에 쓰레기 잔뜩 수거해서 내려왔다) 예쁜 녀석들도 많이 봤습니다. 앞서가는 녀석이 뒤에 오는 친구에게 계단이 좁으니 넘어질 수 있다고 가이드를 하거나, 힘들어하는 친구를 부축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작은 친절에도 마음 흐뭇했습니다.
  하산길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과 잠시 나란히 걸었습니다. 이 분들은 자신이 돌보는 손주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말이야. 아 글쎄 걔가 보행기를 타는데 자꾸 엉덩이 닿는 의자 위로 올라서는 거야. 보행기가 움직여서 아이가 넘어질까 봐 올라서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면 좋다고 깔깔거리며 더 올라가네. 억지로 앉히면 다시 의자에 올라서고.... 위험하다고 소리치면 깔깔거리며 더 올라가고. 걔는 내가 다칠까 봐 겁나서 못하게 하는 게 재밌나 봐."
  이 이야기를 한 아주머니의 손주는 아마도 전혀 다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위험을 사전에 제거해주는 할머니의 수고가 자신과 놀아주는 것으로 착각했을 게 분명합니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입니다.
4.3부터 6.25를 거쳐 지리산 빨치산 토벌의 10년 피의 세월 이후 60년이 흘렀습니다. 5.18과 같은 대규모 학살도 있었지만 국지적,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되고 한반도 남쪽은 두 세대 넘게 평화가 지속됐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매우 긴 시간의 평화입니다. 위험을 전제로 삶을 세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언제나 전쟁의 위협에 노출된 세대(60대 이상)가 이해하기 어려운 다른 세상입니다.
  잠재적 의식에 '전쟁'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는 드러나면 안 됩니다.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내가 타깃이 되는 것이며, 타깃으로 날아오는 것은 화살이나 총알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게 겸양지덕은 덕목이 아니라 삶을 지속하기 위한 본능적 대피소였습니다.
  '전쟁'이 잊히고 대신 '경쟁'이 대입(代入)되면 얘기가 거꾸로 됩니다. 나는 타깃이 돼야 하고 그 타깃으로 선발의 기쁨이 날아옵니다. 평화의 시대에 겸양지덕은 삶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자세입니다. 어디서든 나는 드러나야 하고 드러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총알을 피하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살아남기' 말고 없듯이 나를 드러내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것은 효율성뿐입니다. 전쟁이든 경쟁이든 이래저래 도덕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위에 언급한 보행기 의자 위로 자꾸 올라서는 아기는 할머니의 경고가 자기 존재감에 대한 반응으로 느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손주를 위한다면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 위험한 일을 당하도록 느슨하게 돌봐야 할 것입니다. 
  평화가 오래 지속됐습니다. 물론 평화는 지속돼야 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한반도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죽을 일도 죽일 일도 없다고 내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우리는 또다시 진짜 전쟁의 지옥으로 빠져버릴 것입니다.
  평화가 깨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가짜 평화입니다. 다시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몸부림만이 평화를 지킵니다. 평화가 아무 걱정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밀레니엄 이후 어린이 청소년의 '욕망 드러내기'가 도를 넘었다는 생각입니다. 자기의 욕망은 소중하고 표현 또한 자유롭다고 주장하면서,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주변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평화로운 상태가 자기 때문에 깨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영아기부터 세상의 위험 요소는 어른 보호자가 모두 막아주겠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흔히 말하는 과잉보호가 우리 아이들의 제어장치를 제거한 것은 아닐까요. (2017.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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