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달나무 Aug 06. 2017

출발점, 2009년

나의 출발점을 말하다

  제가 대안교육을 하겠다고 시동을 걸면서 벌인 판이 여름방학캠프였습니다. 2009년이었습니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2년 만입니다. 그런 연유로 8년 전 여름에 중고생 10명과 제주도 난산리 폐교에서 24일을 보냈습니다. 이 캠프를 계기로 대안학교 운영에 뛰어들어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뭔가 계도의 훈계를 풀어야겠지에 다음의 잔소리를 읊어댔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중고생에게 한 말이지만 현재 만나는 초등학생들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아이디어입니다. 다루기 힘든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나 교사에게 소개합니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문제집 말고.
  그래. 나름대로 문제가 있을 거야. 어른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문제가 뭐지. 아니, 니 문제가 뭐냐가 아니라 "문제"란 놈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문제? Problem?
  그건 말이지. 내가 처한 현실과 내 희망사항 사이의 차이를 말하는 거야. 그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문제라는 놈이지. 차이가 커지면 문제가 커지는 거야. 반대로 둘 사이에 차이가 없으면, 즉 일치되면 문제가 없거나 해결되는 거지.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비데 설치 안 된 화장실은 절대로 가려고 하지 않아. 그분은 비데가 없는 낯선 화장실 앞에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하지만 비데 화장실에 대한 희망사항이 없는 사람은 똑같은 화장실 앞에서 아무 문제가 없어. 현실과 희망사항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문제는 현실이 만들까, 희망사항이 만들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문제 해결 방법도 명확해지지. 바로 두 가지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거야.
  벌써 알았구나. Good job! Bingo!
  네가 말한 것처럼 하나는 현실을 희망사항에 일치시키는 것(전략 A)이고, 또 하나는 희망사항을 현실에 일치시키는 것(전략 B)이지.
  사람들은 흔히 전략 A만을 인정하려고 하지만 전략 B도 자주 사용한단다. 사실은 전략 B를 더 많이 사용하면서도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바로 너희들을 말하는 거야. 자기를 자신이 모르는 경우가 많아. 너희들이 학습면에서 끊임없이 전략 B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거든. 그런데 문제 해결 방법적인 측면에서 현실은 너희들 학교 성적이지만 희망사항은 너희 희망사항이 아니라 부모님 희망사항으로 치환되는 거야. 부모님 희망사항을 자신의 학교 성적에 일치시키려는 치밀하고도 교활한 전략. 그게 너희들 전략이지. 너희들도 전혀 모르는.
  군대 가지 않으려는 선생님의 선배 일화야. 선배지만 정말 독한 놈이지. 배울 점은 결코 아니고,
그 선배는 군대에 가자마자 청년 치매환자 노릇을 했어. 물론 가짜 연극이지. 똥을 싸서 침상 주변에 묻힌 거야.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면 어떡하냐는 얘기를 들어보지 않았니? 이제 그 사람은 어떻게 됐겠니? 부대 책임자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았지. 선임병이나 장교들은 가짜인 줄 다 알거든. 폭력은 그들이 사용하는 문제 해결방법이었지. 이쯤 되면 모두들 가짜 치매환자 노릇을 그만두게 돼. 하지만 그 선배는 다음 날 다시 침상에서 똥을 쌌고, 이번에는 먹기까지 한 거야.
  전세는 역전됐지. 부대 책임자는 상황보고를 받고는 제일 먼저 가짜 치매환자 구타 사실을 숨기려고 했어. 그 선배가 진짜 환자였는데 폭행을 당해서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생각한 거야.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자리에서 쫓겨날 판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또 생각했을 거야. 부대 책임자가 말이야. '혹시 저 짓도 가짜 연극?' 이어서 부대 책임자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지. '만약 거짓말일지라도 저런 짓을 하는 놈은 이미 정신병자이거나 혹 멀쩡한 놈이라도 저런 녀석이 군대 생활을 하면 사고를 저지르게 될 거야. 저런 놈을 군대에서 받을 수 없어'
  그래서 입대한 지 일주일만에 제대하게 되었어.
  정말 독한 그 선배는 문제를 해결한 셈이지. 어떤 전략인지? A? or B?
  전략 B를 사용한 것이지. 하지만 쉽게 전략이 먹히지 않아서 자기 현실을 더욱 격하시킬 수밖에 없었던 거야. 거의 자폭 수준 아니겠니.
  자, 벌써 눈치챈 거 같은데.... 많은 학생들이 "청년 치매환자를 가장한 군대 탈출하기"같이 비뚤어진 전략 B를 사용한단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방치하거나 망가뜨려서 학습에 관한 한 부모님의 기대 수준을 억지로 끌어내리는 거야.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공부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어느 날 갑자기 매우 불성실한 아이로 변하고, 요란한 사춘기를 겪는 아이가 되지.
  거기서 그치지 않아. 왜냐하면 부모님은 갑자기 변한 너희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내기도 하고, 애원도 하며 과거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잖아. 확실한 부모님의 실망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스스로를 한층 더 망가뜨리는 거야.
  "더 이상 나에게 기대를 걸지 마!!"
  전략 B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결과 너희들은 학원과 보충수업에서 벗어나 제주도로 날아온 거지. "여러분"과 "너희들"은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야. 아주 많은 너희들 또래들이 그렇다는 얘기야.
  이제는 멈춰야 해.
  

전략 B는 원래는 득도한 사람들의 전략이야.

  수도자, 도사님들이나 사용하는 전략이지.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희망사항을 쉽게 조절하지 못하거든. 쓸 수 없는 전략을 쓰다 보니가 부작용이 심각한 거야. 부모님이 속상해하는 것은 부작용도 아니야. 전략 사용 당사자의 불안감이 극대화된다는 것이 가장 큰,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야. 전략 자체가 자폭이라면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가 예정된 전략이야.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신에게 결국은 자기가 침을 뱉게 돼 있단다.
  이제부터 전략 A를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야. 다만 뒤틀린 전략 B와 결별하라는 거다.
  자존심.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매일 벼랑에서 자신을 밀어버리는 일을 멈춰야 해.
이제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짜자.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부모님의 희망사항이 아닌 자기 희망사항을 갖는 거야. 아직까지 너희들은 자기 자신만의 희망사항을 설계한 적이 없어. 학교의 비극이지. 자기 희망사항이 없는데 어떻게 문제 해결이 되겠어. 어떻게 현실과 희망사항을 일치시키겠냐고.
  자기 꿈, 자기 미래, 자기 소망-즉 자신이 고민하고 반성하고 고치고 다듬은 자기 희망사항을 천천히 만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우리 캠프가 비교적 긴 거야.
  자기 희망사항이 명확해지면 문제 해결 방법도 저절로 분명해지지. 캠프를 기획한 선생님이 바라는 것이 그거야.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희망사항이 무엇인지 깨닫고 가는 거지. 그러면 출발을 위한 신발끈이 저절로 고쳐 매 지니까.
  누구 때문에 사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가 결정하는 삶을 살아. 삶에 대한 자기결정력을 가지려고 너희들이 요란한 사춘기를 겪는 거란다.
  얘들아. 힘내~!!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과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