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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열아홉번째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인간의 몸을 본 적이 있나요-아스토르가(11.8)

by 박달나무


1.


이례적으로 추운 날이다. 몸이 움츠러드니까 늦잠을 잔다. 출발이 가장 늦었다. 8시40분. 아이들은 처음으로 장갑을 꼈다. 아침을 먹지 못한 채(먹을 곳이 없어서) 10km를 걸어가니 언덕을 지나 갑자기 나타난 가건물이 있다. 여러 음식이 좌판에 어지럽게 있다. 일단 주인장과 인사를 나눴다. 우리 모습을 보더니 곧바로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한국말을 한다. 얼굴이 가수이자 배우인 신성우를 닮았다. 이 추위에 조리 슬리퍼를 신고 있다. 자유롭게 먹으라고 말한다. 따뜻한 커피도 있다고 안내한다. 우리를 이어 바로 도착한 한국인 청년이 “도네이션 카페인가 보네요”라고 하니, (도네이션 단어를 알아 듣고) 절대 도네이션 아니다, 선물이다, 까미노에 대한 사랑이다, 영어로 힘주어 말한다. 공짜로 주는 선물이니 맘껏 먹으라는 거다. 좌판 앞에 작은 돈통이 있었다. 다비드 이름의 주인장은 황량한 언덕에서 텐트생활을 하는 듯 보인다. 작은 난로에 물도 끓이고 설거지도 본인이 하고 활력이 넘친다. 말과 몸짓에 진정성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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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말그대로 맘껏 먹기 시작했다. 한국 청년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 자리를 뜨면서 “너무 많이 먹지 마라. 다음 사람도 먹어야 하지 않겠니?” 가볍게 충고한다. 배고픈 나도 비스킷 여러 개, 레몬 잔뜩 들어간 채소스프, 커피, 호두 등을 먹었다. 시하가 골든키위를 2개 먹으니까 1개만 먹고 멈췄던 태호가 하소연을 한다. “제발 키위 한 개 더 먹을 게요” 먹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결국 먹으라고 했고, 먹는다고 누가 눈치 주는 일은 아니지만 먹겠다는 동기가 ‘시하는 2개 먹었으니’에 있어서 잠시 망설였던 것이다. 그냥 먹어도 되는데, 다 먹고 길을 떠나려니까 시하는 2개 먹은 게 생각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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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참에 우리 셋이 다양하게 아주 잘 먹었다. 돈통에 5유로를 넣고, 가지고 있던 라면 중 삼양라면(브랜드 이름)세 개를 다비드에게 선물로 줬다. 살짝 당황하는 눈치더니 고맙다고 인사하며 받는다. 그때 예상할 수 있었다. 라면은 다시 다른 이에게 선물로 전달될 것을....


2.


이반 일리치가 하버드 특강 때 젠더문제에 대해 언급하자 한 청강생(여성)이 질문한다.


“선생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인간의 몸을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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