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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무번째날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_라바날 (2019.11.9)

by 박달나무

1.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한국인 순례꾼이 늘어난다. 이미 얼굴을 튼 사람도 있고,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동양인으로 보이면 모두 한국인이다. 예외는 일본인 <히로>다. 젊은 청년인데 오사카에 산다고 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는 휴지기에 스페인을 찾았다고 한다. 중절모를 쓰고 다니는 모습이 한국인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한국인은 복장이 완벽하다.


오늘은 무려 22km를 걸었다. 어제처럼 손이 시려워 쩔쩔매지도 않았고 햇살도 잘 퍼지는 날이었다. 막판에 비도 오고 바람이 세차서 좀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불만 없이 잘 걷는다. 매일 20km 미만으로 걷는다면 지구 한바퀴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장거리를 걷다보니 태즈매니아에서 생활할 때보다 대화도 더 하고 분위기도 좋다. 태즈매니아 생활 없이 1년 동안 유럽과 남미 걷기 여행을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장단점이 있겠지. 비용은 비슷하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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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어제 순례꾼들에게 먹을거리를 선물하는 다비드에게 라면 세 봉지를 선물했고, 한 봉지를 한국인 중년여성이 들고 있다. 알베르게 부엌에서 삼양라면 한 봉지를 들고 냄비에 물을 올리는 사람은 일주일 전에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분이다. 역시 예상대로 다비드에게서 선물 받았다고 한다. 선물의 선순환이라 기분 좋았다. 내가 받은 선물의 답례는 내게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이 향하면서 세상은 좀더 풍요로워지는 법이다. 라면 한 봉지에 적용하기에는 민망하지만 말이다.


딸 때문에 양평으로 이사가서 살다보니 아예 양평에 눌러앉았다고 하길래 “옥천초등학교에 보내셨군요”라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라고 반응이 돌아왔다. 어쩔 땐 내가 창문으로 도망친 100세 노인 같다.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나보다.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알아버린 일이 많다. 그래서 행복한 건 아니다. 그냥 팔자가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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