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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함께 읽기 첫날

대하소설 광개토태왕 담덕 읽기 모임 후기

by 박달나무

먼저 아래 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경기도 여주에 살고 있다. 어쩌다가 여주 태생이고 여주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 엄광용 선생을 만나서 막걸리 한잔했다. 엄 작가는 딱 10년 선배다. 엄 작가의 10권짜리 대하소설 <광개토태왕 담덕>(도서출판 새움)을 널리 소개하고, 지역의 담론 형성을 위한 씨앗모임을 만들자고 작당을 했다. 지난 9월5일 저녁에 16명이 모였다. 중학생부터 80 노인까지 다양한 남녀노소 여주 시민이다. 1권 읽기를 엄 작가 진행으로 성황리에 마쳤다. 2권 읽기부터 내가 사회자가 돼서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1권 모임 후기이자 고민의 단초를 기록한다는 의미로 아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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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고 가다가 싱크홀에 차가 빠진 느낌이 지난 12.3 내란 이후 반년의 시간이었다. 다행히 바닥을 치고 일어나 이재명 대통령 시대에 읽는 <광개토태왕 담덕>은 순식간에 고등학생 때 내 나라 내 겨레 노래를 부르던 분위기로 나를 데려갔다.

1981년과 82년의 주말에 서울 경운동의 천도교당에 나가 천도교 학생회 모임에 참석했다. 내가 고2~3학년 때이다. 학생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흐려졌지만 또렷한 장면이 있다. 활동이 파하고 헤어질 때 우리는 꼭 <내 나라 내 겨레>를 불렀다. 무슨 의식 같은 제창이다.

<내 나라 내 겨레>는 70년대 초에 김민기가 노랫말을 짓고 송창식이 작곡한 노래다. (가사를 잠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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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피어린 항쟁의 세월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위에

보라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앞길에서 환히 비치나

눈부신 선조의 얼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 앞에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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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면 노랫말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시비를 걸 수 있지만, 당시에 우리는 매우 비장한 마음으로 불렀다.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우리 중 하나인 나는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가슴속에 간직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교육대학에 진학했고, 다음 세대를 올바르게 이끌 책임이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시절은 80년대 전두환과 노태우가 군림하는 군부독재였기에 심리적 갈등과 고통이 상당했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교직생활-결혼-육아-생계유지에 전전긍긍하다보니 환갑 나이가 되어 은퇴 시기를 맞았다. 그리고 여주로 이사했고, 그때 엄 작가님과 담덕을 만났다.

엄광용 작기가 말했다.

“개인이든 국가든 바닥을 경험하지 않고는 다시 솟아오를 수 없지요. 그래서 국왕이 숨지는 치욕과 국력 최약체기를 겪는 4세기 고국원왕부터 소설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담덕>을 읽으면서 낯선 낱말을 만나거나 당시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기 어려우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읽었다. 백제 첩자 사기의 존재도 삼국사기에 같은 내용이 기록된 것을 찾고, 작가님이 얼마나 자료조사에 천착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담덕>을 위해 10년 이상 준비한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봉두난발의 비구를 등장시켜 엄 작가는 석정 스님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북아시아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하는 일이다. 석정의 외침은 1600년 전에 울려퍼짐과 동시에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외침 아니겠는가. 평화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전쟁을 하고, 전쟁의 승리 없이는 참혹한 처지만 남을 뿐이라는 주장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뜨거운 아이스크림’과 같은 모순적 표현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시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삶이 전쟁이다. 한반도를 포함 동아시아가 여전히 전쟁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무수히 패배했다. 이제는 이겨야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우리가 간직하는 일”이 된다.

다만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엄광용 작가가 글머리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광개토태왕 담덕>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노마드 정신을 되살려 새로운 미래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39세의 짧은 일생 중 상당 부분을 말 위에서 보낸 광개토태왕의 정신은 이미 역사 속의 원형질로 돌아가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중략) 광개토태왕이 광야를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통해 오늘날 세계로 뻗어 가는 네트워크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가 그물처럼 엮여진 정보의 유통망을 통하여, 독자들이 새로운 미래의 시간을 열어가는 동력을 확보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사석에서도 엄 작가는 강조했다. 전쟁이 총 쏘고 미사일 발사하는 양상에서 이제는 누가 더 정보의 그물망을 넓고 촘촘하게 드리우냐가 싸움의 승패를 결정한다고 말이다.

우리는 고구려에 대한 오해의 뿌리를 살펴야 한다. 오해의 핵심은 고구려가 2000년 전에 백두산 주변에 생겼다가 7세기 중반에 멸망한 과거의 국가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21세기 현재 지구의 세계사적 룰은 아직 국민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1648년 유럽은 베스트팔렌 조약을 거쳐 근대 국민국가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로부터 400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에 전 세계인 모두 당연히 국민국가를 기본 세팅으로 생각한다. 한국인들도 헌법에 명시한 영토/영공/국민으로 ‘대한민국’ 국가가 이루어졌다고 믿고 살고 있다.

나부터 모든 역사적 인식이 국민국가의 기본 틀에 갇혀있기 때문에 삼국시대 한반도 상황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부여, 옥저, 동예, 삼한 등 한 지역에 배타적 깃발을 세운 개별 단위 국가로 이해하고 있었다. 더구나 고구려의 대부분은 북한 영토와 겹치고 만주는 공산화된 중국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 우리는 심리적으로 고구려를 마치 남의 나라 역사로 받아들인 면이 있다. 교과서에서 소개하는 고구려는 생략하거나 왜곡한 것도 많다. 예를 들면 <담덕1권>의 주요 등장인물인 사유(고국원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안악3호분의 벽화를 우리 교과서에 소개할 때 매우 색이 바래고 일부 그림이 뭉개진 것처럼 게재하는데, 실제로는 얼마 전에 그린 것처럼 색이 살아있고 전체 그림이 선명하다.(내가 큐슈국립박물관 특별전에서 안악3호분 벽화를 1:1 크기로 인화한 대형 사진을 확인했다)

서양이 종교 자유와 스위스, 네델란드 독립이 이루어지던 시기(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조선은 1592년 임진왜란에 이어 44년 만인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청 2대 황제 홍타이치는 조선을 자신들과 뿌리가 같다고 생각하며 화친을 맺기를 바라지만 조선의 명나라 사대주의 조정은 전쟁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린다. 조선과 뿌리가 같다는 판단은 청(여진)이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모두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의 후폭풍으로 왕권이 바닥에 떨어지고 이어서 인조의 삼전도 굴욕으로 조선은 지하로 추락하면서 20세기 식민지까지 미끄러지는 신세가 됐다. 역사에 상상은 불필요하지만, 반대로 청나라 홍타이치의 제안을 받고 명과 단절했다면 조선의 운명은 충분히 달라졌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과연 여진(만주)족과 한민족이 같은 고구려의 후손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국민국가 디자인에 묶여있는지 자각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함께 소설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고자 하는 가장 큰 동기가 서로 질문을 던지고 함께 답을 고민하자는 취지에 있다.

답을 함께 고민할 때 짚어야 하는 또 다른 중요지점은 1905년 간도협약 이전까지 간도(북만주, 동만주)가 조선의 영토였다는 사실이다. 고구려 마지막 보장왕이 당나라에 끌려가서 조선왕 직함으로 여생(14년 동안 당나라 거주)을 살다가 죽었기에 고구려 이름은 없어졌어도 거의 같은 영토에 곧바로 발해가 건국되었다. “우리는 고구려를 이어받았다‘고 선언하는 발해가 한반도 북부와 요동과 만주, 연해주에 건재했기에 국가 명칭으로서 고구려는 사라졌어도 고구려의 세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발해 멸망 후 후발해가 잠시 이어졌고, 거란족이 동진하여 요나라를 세웠다. 요나라 멸망 후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운다. 금나라 멸망 후 몽골의 원나라가 만주 지역을 차지했지만 이어서 명나라의 지배를 거쳐 여진족이 성장하여 만주족으로 등장하여 누르하치가 옛 고구려 영토에서 후금을 건립한다.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치가 이름을 청나라로 바꾸면서 후방을 다지겠다고 조선 침략하여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조선은 고구려의 세계최고 수준 천문 관측 자료를 그대로 물려받을 정도로 진정한 고구려 후예이기에 홍타이치가 ’우리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형제‘라고 말한 걸 이해할 수 있다.

거란족이나 여진족이나 멀리 선비족의 분파였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흉노에 뿌리가 있다. <광개토태왕 담덕> 1권에서 소개하는 4세기 고구려는 모용선비에게 미천왕이 괴롭힘을 당한 직후이지만, 고구려 세력 또한 흉노와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동북아시아 제 세력들은 싸우기도 하고 연대하기도 하면서 삶을 이어간 이웃들이다.

우리가 얼마나 중국 한족 중심의 역사관에 빠져있는지,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식민사관에 젖어있는지 우리 자신도 잘 모른다. 물고기가 물 밖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국민국가 개념에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기에 만주 지역에 누가 왕으로 군림하며 깃발을 세웠는지만 알려고 하지 단군조선 이후 현재까지 나라 이름은 달라도 우리 민족이 간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수천 년 살아온 것을 보지 못한다.

여기서 질문이 새로 생긴다. 공식적 기록에서 기원전 4세기에 연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한 것을 시작으로 왜 황하와 양쯔강(장강) 세력은 끊임없이 만주와 한반도를 침략했을까? 7세기 초반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4차에 걸쳐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수나라는 국력이 바닥을 쳐서 멸망한다. 3차 침략 때 100만 대군이 수도 장안(현재 시안)에서 출병하는데만 4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결국 을지문덕에게 박살나고) 장안은 북경과 달리 한반도에서 매우 멀다. 국력을 총동원해서 반드시 고구려를 정복하겠다는 건 무엇 때문인가. 당나라 이세민(당 태종)도 마찬가지다. 고구려를 정복하려고 그렇게 애쓰다가 결국 실패하고 돌아가면서 ”다시는 고구려에 쳐들어갈 생각하지 마라’고 했다지. 왜 한반도와 만주를 정복하지 못해서 안달이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중국과 만주의 입체지형도를 보면 나온다는 생각이다. 중국 중원의 드넓은 화북(화베이)평야가 어마어마한 크기이지만 만주의 동북(동베이)평야도 버금가는 크기다. 농경사회에서 진정한 통일왕국은 화북평야와 동북평야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러니 동북평야에 떡하니 고구려가 지키고 있어서 중원 세력은 죽어라 만주와 한반도를 침략한 것이 아닐까. 만주의 광활한 동북평야는 농경사회 이전에는 큰 의미가 없었고, 농사로 경제 중심이 이동하고 정주문화로 바뀌며 청동기 도입으로 농업생산량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그에 따라 강력한 정치권력체가 등장하면서 만주의 입지는 중국 중원 못지않았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위도가 더 올라가면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냉대 타이가 지역이니 강이 흐르고 지평선이 보이는 만주 동북평야는 부족을 이루고 정치집단이 탄생할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다.

강력한 한나라의 침략에 고조선이 멸망하지만 결국 한사군을 물리치고 다시 만주와 한반도의 주인으로 700년을 이어간 고구려의 저력은 이후 21세기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농경사회가 아닌 정보화사회로 확실히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었기에 말 타고 칼을 휘두르며 만주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을 벌이지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 전쟁은 항구적 삶의 환경이다.

평화를 위해 힘을 길러 우리 땅을 지키고자 했던 고구려 정신을 <광개토태왕 담덕>은 치밀한 고증과 역사적 팩트를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소설의 상상을 섞어서 잘 보여준다. 정신없이 읽다보면 김민기가 가사를 쓰고 송창식이 곡을 붙인 <내 나라 내 겨레> 노래를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후반부는 힘을 모아 고음을 내야하지만)

뱀발을 붙이자면, 고등학교 시절 천도교 학생회 시절 부른 <내 나라 내 겨레>가 떠오른 동기가 있다. 3년 전 여주 시골집으로 이사했는데, 얼마 전 80년대 초반 학생회 활동 때 함께 한 1년 후배를 만났기 때문이다. 소설 읽기 모임 덕분에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천도교 여주교구장으로 있는 혜암 최용근 선생이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최용근 선생은 이미 통일운동의 선봉에서 애쓰고 있었다. 함께 고구려 정신을 이어받아 한반도 통일은 물론 동북아시아 평화와 연대를 위해 힘을 보태고 싶다.

1권은 아직 담덕이 태어나지 않았다. 담덕의 할아버지 사유(고국원왕)와 큰아버지 구부(소수림왕), 아버지 이련(고국양왕)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1권이다. 나는 중학생 때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를 세 번 읽었다. <담덕>은 삼국지보다 재밌다. 스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엄광용 작가의 살갗을 간질이는 문장력이 큰 역할을 한다. 수많은 주옥같은 문장 중에 두 문장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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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자가 사라진 곳으로 달빛이 은빛 가루처럼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p.99)

마당 귀퉁이의 대추나무에 걸린 달이 등불처럼 추녀 밑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달빛은 이미 뜰을 반 이상 먹어 들어와 한창 마루턱에서 출렁이고 있는 중이었다.(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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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광개태왕 담덕> 2권 읽기 모임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더 많은 분과 읽고 질문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일이 있기를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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