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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함께 읽기 네째날

대하소설 광개토태왕 담덕 읽기모임 후기

by 박달나무

『광개토태왕 담덕』 4회차 읽기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면서 생각했어요.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칭송하는 노래는 미국의 팝송도 있고, 한국의 동요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광개토태왕을 기리는 노래는 없을까. 바로 검색했더니 두 곡이 나옵니다. 2001년에 윤명철 작사, 한치영 작곡으로 <광개토태왕> 노래가 있네요. 2005년에는 김현이 작사 작곡하고 본인이 부른 락스타일의 <광개토대왕> 싱글앨범으로 발표됐어요.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나옴)

먼저 한국 고대사의 권위자 윤명철 교수(엄광용 작가의 친구)가 작사한 노래 가사를 소개합니다.

<광개토태왕>

윤명철 작사/한치영 작곡

만주에는 광개토대왕비가 서 있어.

스무 자 훨씬 넘는 돌비석이 서 있어.

아시아 제일 큰 금석문 천 칠백 칠십 오자 새긴 비

영웅 광개토대왕비가 서 있어.

오 천년을 말하고 있어.

우리는 하늘의 자손 밝히고 있어

하늘의 뜻 펴기 위해 고구려를 세웠노라

광개토대왕이 말하고 있어

역사를 전하노라

돌아오라 고구려

용기를 전하노라

일어서라 겨레여

예전처럼 손잡고 서라

굳게 뭉쳐 하나되어라

큰 세상 꿈꿔라

광개토대왕이 말하고 있어

노래는 하늘의 자손으로 담덕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광개토태왕 담덕>과 방향성이 같습니다. “예전처럼 손잡고 서라” 가사에서 고구려 다물 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김현의 노래를 보겠습니다.


<광개토대왕>

김현 작사/곡

하늘의 부름 받고 태어난 사람 광개토대왕

하늘의 정기 입고 세워진 나라는 바로 고구려라네

역사 속에 묻혀도 알 수 있는데

세계사에 모든 게 들어 있는데

누가 감히 역사의 진실을 진실을 왜곡 하는가

누가 감히 우리의 나라를 나라를 들먹이는가

여기 바로 그분의 영혼이 영혼이 살아계시는데

여기가 바로 그곳

이곳이 바로 고려 고려 꼬레야인데

헤이 물럿거라 나가신다 우리들의 영웅이신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의 영웅 광개토대왕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의 나라는 바로 고구려라네

마지막 가사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구려를 ‘하나뿐인 우리의 나라’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색하지만 짜릿한 기분입니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 역사 타임라인에 고구려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가 있었는데 고구려를 하나뿐인 우리의 나라라고 말하는 게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뿐인 우리의 나라를 고구려라고 말하는 건 고구려는 시공간적으로 다른 이름을 가진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대표하며 여러 다양한 이름을 가진 우리 조상들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주장이라 짜릿한 느낌입니다. 소설 담덕을 읽으며 느낀 감정과 다르지 않았거든요.


『광개토태왕 담덕』 4권은 6개 챕터로 구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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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역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익숙한 노래는 지금 현재 순간 들리는 음이 지나간 음과 다가올 음을 이어주지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움켜쥔 ‘기억’이 노래를 듣는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낯선 노래는 그런 기억의 힘을 발휘할 수 없어서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법이지요. 『광개토태왕 담덕』이 술술 읽히고 감동과 힐링을 주는 건 이미 읽은 스토리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고, 다가올 스토리에 대한 기대가 독자가 갖고 있는 역사의식에 힘입어 가늠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위대한 작곡가와 위대한 작가는 같은 원리로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요. 엄광용 작가의 탁월함 덕분으로 10권 대하소설을 계속해서 읽고 있습니다. 엄 작가님이 기획한 다음 작품도 얼른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원해요.

저는 4권에서 주매신 일화(5. 상봉)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제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화두를 던지게 된 거죠. 평소에 일신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지만, 내 안에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낭중지추처럼 ‘신념’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구나 확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각자 다르기도 하고, 역사와 사회문화의 영향으로 겹치기도 하는 ‘신념’이 무엇일까 생각했지요. 계기가 없으면 생각하지 않거든요. 소설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기를 주는 힘 말입니다.

4권의 표지 부제는 <고구려 천하관>입니다. 여섯 번째 챕터 제목을 표지 부제로 썼어요. 저도 4권의 핵심은 고구려 천하관, 즉 고구려 사람들의 우주관/세계관/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과연 2천 년 전 고구려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삶을 이어갔을까. 왜 담덕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을까. 『광개토태왕 담덕』은 고구려 천하관으로 삼태극을 소개하고 있어요. 삼태극? 한국 사람 중에 삼태극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많지 않을 겁니다. 저도 모르구요.

이와 관련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요.


유럽 사회는 The One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어서, 엄마가 아기에게 말하기를.....

"아기야, 너는 하나님(조물주)의 자식이란다. 이 세상은 하나님(조물주)이 만드셨단다. 그러니 네 삶은 하나님에서 왔고 하나님에게 돌아갈 거야."

인도의 엄마는,

"아기야, 우주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단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저 나무에게도.... 그러니 네 삶은 세상만물과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살아야 한다"

반면 동아시아(한중일) 엄마의 경우,

"아기야, 우주는 텅빈 무극에서 시작해서 태극으로 진화하여 삼태극을 거쳐 세상에 네 방향과 오행의 형태로 발전했단다. 세상만물은 음양오행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이렇게 말하긴 힘들다. (너무 어렵다)

그러니 동아시아 사람들이 인지능력이 발달하기 전에 몸에 녹아드는 우주관이 없어서 마음의 안정이 없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공부>가 유일하다고..... 대륙 전체가 전쟁에 휩싸일 때 <공부>를 강조한 2500년 전 제자백가의 외침의 배경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위 글은 5년 전에 김재형 선생님 주역 강의를 듣고 당일 일기에 쓴 말이지요. 종교의 만트라는 짧아야 한다고 알고 있지요. 불교에서 “나무관세음보살”이라거나, 천도교에서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라고 하거나, 일본의 창가학회(불교의 일파)에서 “남묘호렌게쿄”라고 짧은 진언을 되풀이 소리내는 걸 ‘만트라’라고 하지요. 만약 만트라가 A4 한바닥 분량의 종교가 있다고 치면, 그 종교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예요. 그런 이치처럼 동아시아의 무극/태극/삼태극/음양오행의 정신을 말로 풀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이번 담덕 4권에서 작가님은 스토리 안에서 고구려 삼태극을 잘 풀어주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삼태극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상징한다고 하였사옵니다.˝(김슬갑 왈)

˝무엇이? 그것은 곧 천지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오?˝(담덕 왈)

˝그러하옵니다.˝

˝우리 배달민족에게만 천지인 사상이 있는 줄 알았는데, 흉노(김슬갑은 흉노 사람)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군요.˝(담덕 왈)

˝천지인 사상은 우주의 원리라 들었습니다. 북방민족들 사이에서 공유하고 있는 사상으로, 특히 쇠를 다루는 우리 장인들은 그 우주 원리를 매우 숭상하는 편입니다.˝P. 255

“무극(無極)이니, 태극(太極)이니, 황극(皇極)이니 하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오?”(담덕 왈)

“음양의 사상에서 나온 말이라 하옵니다. 무극은 하늘의 변화무쌍한 창조성을, 태극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 같은 변화성을, 그리고 황극은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람이 창조성과 변화성을 운용하여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주재성(主宰性)을 뜻하옵니다. 정신으로 말하면 학문과 도가 될 것이고, 물질로 말하면 쇠를 다루는 장인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이 바로 주재성이라 생각하옵니다.”(김슬갑 왈) (pp.256-257)


창조성, 변화성, 주재성을 모두 포함한 삼태극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서 이루는 것이니 숫자 3이 주는 상징성이 크다 하겠습니다.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도 여기서 나온 것이겠지요. 하늘, 땅, 사람의 정립(鼎立; 세 발로 서다)이니 어느 하나가 빠지면 모두 붕괴됩니다. 그래도 핵심은 하늘이 아닐까 저 혼자 짐작합니다. 天은 서양의 하나님과 다르고(서양은 오직 하나님 뿐; The One) 이집트 태양신 라(Ra)와도 다르며 석가모니 부처님하고도 다릅니다. 제 미천한 지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한국인이라면 5천 년 동안 쌓인 정서로서 공유하고 있다고 확신해요. ‘하늘을 두려워 한다’는 말 속에 모든 게 들어있지 않을까요.

앞서 말한 주매신 일화에서 말한 ‘신념’은 하늘에 대한 경외(敬畏)가 아닐런지요. 경외는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잖아요. 경(敬)은 존경의 의미가 아니라 겸손/겸허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삼가는 마음이고, 삼가는 형식이지 않을까요. 영어로 굳이 쓰자면 ritual입니다. 형식 없는 예절은 없잖아요. 공경하기 위해서 형식이 있지요. 존대말도 한국만의 독특한 형식이잖아요.

외(畏)도 공포가 아니지요. 타인의 강압에 의한 두려움이 아니라 스스로 삼가는 마음이 畏에 들어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요. 법 없어도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스스로 제어 장치가 마음 속에 들어있는데, 그 뿌리는 우리의 긴 역사성이고 『광개토태왕 담덕』에서 고구려 천하관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봅니다. 참으로 멋진 우리 민족이 아니겠습니까.

4권에서 담덕은 만 11세, 12세 나이를 지나갑니다. 오늘날로 보면 초6학년, 중1학년에 해당합니다. 담덕은 권력자 앞에서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위기를 지혜롭게 돌파하고, 포로에 대한 측은지심과 백성을 사랑하는 대왕의 넓은 품을 보여줍니다. 그 어린 나이에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리다고 생각하는 건 지금의 세상에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태어나 10년을 넘게 산 사람이라면 충만한 덕을 갖출 수 있어요. 수명이 길어져서 어린이 기간이 긴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문화 패러다임이 사람을 늦게 성장시키고 있어요.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 않지만, 영웅의 경우 초6 학년 나이의 소년이라면 충분히 현실적입니다. 5살에 작곡한 모차르트나 9살에 미국 UCLA에서 수학 강의한 테런스 타오(1975년생 홍콩계 호주인 수학자), 11살에 의회 앞에서 기후위기를 위한 정부의 행동을 촉구한 스웨덴 소년 그레타 툰베리를 언급하지 않아도 제 직업상 영웅다운 초6학년 소년 소녀들을 늘 목격합니다.

다만,

우리는 수많은 영웅들을 죽이고 있지 않나 두려운 마음입니다.

일단 여기서 후기를 접고, 담덕 5권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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