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광개토태왕 담덕 읽기 모임 후기
코로나19가 한숨 돌린 시기에 파리를 잠시 둘러보는 기회가 있었죠. 단 이틀의 기회만 주어져 둘째 날 한국인 안내원에게 비용을 주고 함께 파리 내 유명 지역을 빠르게 지났어요. 몽마르트 언덕에 올라서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봤을 때 많이 놀라지 않았지요. 그때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그냥 거대한 성당이구나 싶었죠.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보는 눈을 돌려 반대를 볼 때 깜짝 놀랐습니다. 파리가 왜 2천 년 이상 오래된 유럽의 중요 도시인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죠. 파리는 광활한 벌판이고, 지평선이 좌우로 끝없이 달렸어요.
만약 고구려 사람이 파리를 갔다면 탐을 내며 ‘브루나’라고 불렀을 거예요. 브루나는 평평한 땅을 뜻하는 고구려 고유어이고, 한자를 동원한 말이 ‘평양(平壤)’이지요. 담덕이 파리로 날아갔다고 상상할 때 이미 파리는 로마제국의 주요 도시로 번성하고 있었어요. 파리는 담덕의 머리속에 ‘평양’ 낱말로 개념화될 것이고, 영국해협과 연결되는 센강은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처럼 보일 거예요. 유럽 각지에서 센강을 통해 배로 파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황해에서 대동강을 따라 평양 시내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1866년 미국 무장 상선 제너널 샤먼호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연결해보니 몽마르트 언덕에 19세기에 지은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담덕이 평양성에 지은 9개 사찰과 같은 의미로 보여요.(담덕 5권 마지막 6장에 “고구려가 평양성에 세운 아홉 개의 사찰은 법력으로 주변의 구이九夷들을 물리친다는 기원을 담고 있었다.” p.333) 사크레쾨르가 성스런 마음 즉 성심(聖心)이거든요. 보불전쟁(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 1870~1971)에서 프랑스가 패전하고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물어주고 나자 프랑스는 불황에 빠져요.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은 피폐하고 사회주의 운동이 격렬해지자 카톨릭 사제들이 앞장서 국민모금을 통해 대성당을 짓지요. 무려 40년 동안 건설해서 20세기 들어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봉헌돼요. 서양이나 동아시아나 비슷한 원리로 돌아가나봐요. 5세기 고구려와 19세기 프랑스에 평행이론이라니…
그런데 평양(平壤) 한자에 눈이 갔어요. 전에는 아무 관심이 없던 평양의 ‘양(壤)’자가 낯선 거예요. 壤은 땅을 말해요. 변에 쓴 흙 토가 뜻을 나타내는 거예요. 지명에 흔히 사용될 것 같지만 의외로 우리 지명에 드물게 나와요. 예천군 풍양면 이름에 壤자를 써요. 풍요로운 땅이란 뜻이죠. 그리고 평양에서 壤을 쓰고요. 현역으로 사용되는 남한의 지명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어요. (이유는 모르겠네요) ‘양’자가 사용되는 지명은 대부분 볕 양(陽)을 써요. 당장 밀양(密陽)이 떠올라요. 영화 <밀양>을 해외에서 <Secret Sunshine>이라고 소개해요. 기타 ‘양’을 쓰는 지명은 楊(회화나무양/성씨 양)을 사용해요. 경기도 양평(楊平)이 얼른 떠오르는 이름이죠. 하지만 경기도 양평은 대부분 산악 지역인데… 모든 건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예요.
평양(平壤)의 고려 때 지명은 서경(西京)이고, 조선에 와서 평양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고려 이전 이름이 뭔지 알 수 없어요. 담덕이 평양성에 사찰을 지었다거나 담덕 아들 거련(巨連)(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했다는 건 역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단군왕검이 최초로 도입지로 삼았다는 평양성이 지금의 북한 평양이라고 말하긴 곤란하지요. 아사달이 ‘아침에 해가 뜨는 땅’이라고 본다면 일출이 가능한 평원 지대를 말하는 것이니 아사달이 곧 ‘평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지금의 북한 평양이 그다지 평평한 지대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해요. 대동강 하류는 약간의 평야지대(평양평야 외에도 평양 근처 서해안 지역에는 재령평야(載寧平野), 안주평야(安州平野), 연백평야(延白平野) 등의 비교적 넓은 평야들이 위치)이지만 과연 압록강변 북쪽 국내성에서 굳이 좁은 한반도 안에 있는 반(半)산악지대로 천도했을까 생각하면 수긍하기 쉽지 않아요. 가장 고구려 국력이 정점에 있는데 말입니다.
반면 현재 중국의 둥베이(東北)평야는 베이징 아래로 펼쳐진 화베이(華北)평야보다 넓고(중국에서 가장 큰 평야) 세계 4대 곡창지대 중 하나이지요. 여기가 요동지역이고 요하(랴오허 강)는 발해만으로 흘러들어가는 큰 강이라 기원 전 로마가 파리를 주요 도시로 개발할 때 추모왕(주몽)도 이미 단군이 도읍지로 삼은 아사달에서 고구려 건국을 선포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당시엔 그곳 요동지역의 아사달이 바로 ‘평양’이 아니었을까하는 상상이 엉뚱한 건 아니라 봤어요.
이 글 읽기모임 후기를 쓰는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딸 아이와 고구려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요. 낼모레 서른인 딸과 같이 사는데 하루 중 아침밥상에서만 이런저런 대화가 가능하거든요.
“내 입장에서 고조선과 고구려가 요동 지역을 넓게 차지했다거나 만주 간도가 사실상 조선 땅이었다거나 백제가 4세기에 요서 지역을 차지했다는 얘기는 의미가 없어. 지금 어떤 파워를 갖느냐 말이야. 그런 역사가 사실로 밝혀졌다고 해도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기대하기 어렵잖아.”(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재 중국이 한족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주변국들과 싸우면서도 협력하고 지냈고, 중원을 차지한 것도 한족만은 아니니 남북한과 중국, 일본 동아시아 전체가 화해와 협력의 선린관계로 가야한다는 거지. 20세기는 극단적인 죽음의 시대였고, 21세기도 4반세기를 지나왔으니 20세기 그림자를 떨쳐내고 우호와 웃음의 신세계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걸 말해.”(나)
“암튼 난 우리 선조가 과거에 이렇게 큰 땅을 차지했거든-하면서 자랑하듯이 말하는 게 별로야. 사료도 부족한 상태에서 그런 드잡이가 뭔 도움이 되겠어. 지금 상태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도약할 수 있잖아.”(딸)
더 긴 얘기가 필요하지만 아침 출근 시간이라 이 정도에서 멈췄어요. 딸 아이는 고등학교 수업에 <동아시아> 과목이 <국사>와 별도로 있었다고 해요. 제 경우는 <담덕 광개토태왕>을 읽지 않았다면 1500년 전 한반도를 둘러싼 우리 선조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는 담덕 읽기모임에 고마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역사가 아닌 소설로 들어가 볼까요.
담덕 5권도 6장으로 구성됐어요. 각 장의 핵심 문장을 뽑았습니다. 담덕이 아버지 이련(고국양왕)의 죽음으로 고구려 19대 국왕에 오르고 대왕이 아닌 태왕 명칭과 영락 연호를 사용하여 중원의 황제와 동급으로 스스로 격상하지요.
1장 : 무명검
˝무명검법의 마지막 단계가 무엇이옵니까?˝
무술사범 우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심지검劍! 마음을 비우고 칼을 그친다. 줄여서 심검이라고 한다˝
2장 : 소금과 철
초원을 지배하던 흉노족이 북흉노와 남흉노로 갈라졌다. 후한 시절 남흉노는 한왕조에 투항했고, 북흉노는 끝까지 저항하다 궤멸되었다. 그리고 유랑객이 된 흉노족들은 돌권족.선비족 등 여러 갈래로 흩어져 나갔다. 선비족이 우문.탁발.모용 등 씨족으로 갈려 나간 것도 북흉노가 궤멸되면서 분파된 것이었다.
3장 : 왕당군
"담덕아, 그럼 강국을 만들려면 앞으로 어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담덕 아버지 이련 대왕)
"우리 고구려를 강국으로 만들려면 우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담덕이 대답했다.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려면....?"
"저 부첟의 나라 천축(인도)을 통일한 아육왕(아소카왕)처럼 불교를 융성케 하여 백성들을 교도하겠나이다. 폐하께서 평양성에 아홉 개의 사찰을 창건하라 명하신 것도 그와 같은 호불 정신을 근간으로 한 것이 아니옵니까?"
4장 : 영락태왕
대왕 진사는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 관미성은 서해에서 한수를 따라 한성으로 들어오는 백제의 관문이었다. 관미성을 고구려에게 빼앗기면 부소갑과 갑비고차의 인삼 재배단지는 물론, 예성항에서 이루어지는 중원과의 인삼 교역권까지 한꺼번에 잃게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한수를 통해 수도인 한성을 공격하는 수로를 제공하는 꼴이라, 관미성을 고구려가 차지하게 될 경우 백제는 코앞에 적을 두는 위급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5장 : 관미성 전투
고구려 군선 세 척에선 금세 불꽃이 솟아올랐다. 어차피 작전상 좌초시킨 것이므로, 고구려 군사들이 스스로 불을 지른후 급히 소형 배를 바다에 띄워 퇴각했던 것이다. 한편 특공대로 선별된 헤엄 잘 치는 병사들은 초겨울의 바닷물로 뛰어들어 갑비고차의 물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잠수를 했다가 숨을 쉴 때만 머리를 잠시 내민 후 다시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백제군은 그들의 침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검은빛 도는 바닷물에 반사된 달빛이 은백색으로 반짝거려 시야를 어지럽게 하는 통에, 육안으로는 헤엄치는 고구려 특공대를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6장 : 평양성 대법회
석정은 불교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자는 이른바 정치승려로서의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따라서정통 불교의 논리로 백성을 교화하기보다는 나라 안정을 통하여 평화의 시대를 여는 데에 더 중점을 둔 선동적 성격이 강한설법을 구사했다. 그동안 오래도록 전쟁으로 시달려온 고구려 백성들은 그의 설법에 크게 위무되어 쉬지 않고 배례를 하고 경전을 암송했다.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낱말이 몇 개 나오는데 176쪽의 ‘부용국’을 검색했어요. 기타 다른 낱말은 문맥을 고려해서 짐작하고 넘어갔지요. 부용국은 부용(芙蓉)이 흔히 연꽃을 뜻하기 때문에 맥락은 부정적인데, 느낌은 긍정적이기 때문에 찾아본 것이지요. 역시 부용국은 종속국의 의미였어요. 附庸國이라고 쓰며 ‘붙을 부’와 ‘빌릴 용’을 사용하여 식민지이거나 똘마니 나라로 사용되는 낱말이네요.
문학이 예술인 이유는 기호인 텍스트를 늘어놓아 독자의 머리에 그림과 영상을 창조하기 때문 아닐까요. <광개토태왕 담덕>은 엄 작가님이 독자의 머리에 그리는 그림이 매우 선명하다는 특징이 있어요. 특징이자 장점이겠죠. 다만 독자가 그리는 그림이 선명할수록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가 단일한 해석으로 수렴될 거예요. 일부러 다양하게 해석되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지만 역사 대하소설에서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리얼리즘 그림이 아닐 경우 독자가 긴 마라톤을 완주할 수 없겠죠. 리얼리즘 그림이 진짜 리얼인지 가짜 페이크인지 따진다는 건 소설에서는 의미가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따라서 고구려 때 평양이 현재 평양이 맞는 건지, 담덕이 당시에 실제로 서역에 다녀왔을 가능성이 얼마인지를 따지는 건 독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광개토태왕 담덕>이 역사 다큐가 아니라 소설이니까요. 중요한 건 작가가 그린 대작 그림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의 재미를 즐기는 거 아닐까요. 소설은 지금 창작되는 것이지 1500년 전에 쓴 건 아니지요. 해서 1500년 전 시공간이 현재 정서로 재창출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광개토태왕 담덕> 5권을 읽으면 자꾸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파워게임이 떠올라요. 아, 이건 요즘 김정은, 시진핑, 트럼프, 푸틴과 얼마 전 대통령인 윤석열, 현재 한국 대통령 이재명 이런 이름들이 <광개토태왕 담덕> 스토리와 연결되는 느낌이지요. 진정 읽는 재미가 쏠쏠한 <광개토태왕 담덕>입니다.
이제 10권 중 5권까지 꼼꼼하게 살폈어요. 산 정상에 올라온 느낌입니다. 내려가는 길은 힘도 덜 들지만 속도도 빨라질 거라 짐작해요. 현실이 아닌 판타지 상상을 하고 기억할 수 있어서 오늘날 호모사피엔스가 됐을 거라 주장하잖아요. <광개토태왕 담덕>은 우리를 판타지로 안내하기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틈’을 제공하지요. 하지만 영원히 판타지에 산다면 곤란한 거죠. 6권부터 마지막 10권까지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가다보면 다시 현실의 바탕 즉 리얼의 세계로 돌아오겠지요. <광개토태왕 담덕>에 입문하기 전의 리얼과 <광개토태왕 담덕>을 마친 후의 리얼은 다를 겁니다. 한층 성장하고 힘을 충전한 나 자신으로 달라져 있을 거라 확신해요.
6권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