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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4. 2017

박동섭 영화 특강 후기(번외 편)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서로 다른 영화에서 같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쓴다. 만화가들이 작품마다 서로 다른 캐릭터의 인물이지만 같은 이름을 쓰는 것과 같다. 일테면 만화가 이현세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여자 주인공 이름이 엄지이다. <안녕하세요>에 등장하는 미노루의 고모는 중요한 배역인데 이름이 ‘세츠코’다. 세츠코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라 세츠코의 이름에서 왔을 것이다. <안녕하세요>에서 하라 세츠코는 출연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인물이 겹친다. 오즈 감독의 대부분 영화에서 활약하는 이가 스기무라 하루코(1909~1997)다. 오즈의 대표작 <동경이야기>에서 큰 딸 역할을 맡았던 스기무라는 <안녕하세요>에서 방귀 대신 실물(?)을 내놓은 코우죠의 엄마이자 동네 부녀회장이다. 코우죠 엄마는 이웃에 거의 없는 전기세탁기를 사용한다. 전기세탁기가 코우죠의 똥 싼 속옷을 빠는 것으로 나온다. 철없는 캐릭터이고, 그의 친정 엄마의 입을 통해 진중하지 못한 인물로 묘사된다. 산파 일을 하는 드센 친정 엄마는 손자인 코우죠도 제멋대로라고 하며 못마땅해한다.


  영화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자주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 마을은 집이 동시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똑같은 모양과 구조의 집이 구획선에 맞춰 나란히 줄을 섰다. 워낙 가까이 붙어 있어서 이웃집 소리가 다 들릴만하다. 그런데 유독 코우죠 집에서 젠의 집을 바라보는 카메라 워크가 있다. 그때 코우죠 집 출입문 왼쪽에 누구나 볼 수 있는 위치와 크기로 달력이 걸려있다. 달력에는 르느와르의 1895년 작 <The Rambler>가 커다랗게 들어있다. 이 장면이 대여섯 번 나온다.
  오즈 감독의 장난기 있지만 세심한 미장센을 고려한다면 달력 속 르느와르의 그림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우연한 장치가 아니라는 확신이다. 떠오르는 비슷한 장면이 있다. 영국의 3대 그림동화작가인 찰스 키핑의 <Through the Window(창너머)>의 첫 장면에 해군 복장의 남자 초상화가 장면의 오른쪽에 걸려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키핑의 <창너머> 전체를 조망하고 해군 복장 남자의 초상화를 해석하자면 아이의 아빠일 가능성이 크고(적어도 가족은 분명) 작품이 전쟁과 관련된 것이란 힌트를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전기세탁기-코우죠-코우죠 엄마(스기무라 하루코)-코우죠 할머니 직업(산파)-코우죠의 똥 싼 속옷-르느와르 작품을 관통하는 장치가 있을 것이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50년대 일본을 그리고 있다. <안녕하세요>는 오즈 감독의 말년 영화이다. <안녕하세요>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모두 전통복장을 입고 있다. 전통복장을 입지 않고 평소 집에서 서양식 잠옷을 입고 있는 부부가 한 동네에 있는데, 결국 이들은 동네가 시끄럽다며 이사를 가버린다. 아이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신식 젊은 부부 집에 놀러 가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한다.
  따라서 르느와르 작품은 특히 프랑스를 좋아하는 일본인 정서를 고려했을 때 서양문물의 상징으로 작용하는 미장센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르느와르의 회화 작품이 고작 달력 그림으로만 소화되는 것이 1950년 대 일본의 일상을 보여준다. 오즈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볼 때 고려할 점이다. 그런데 수많은 르느와르 작품 중에 왜 하필 이 그림일까? 고민을 했지만 그건 모르겠다. 오즈 감독이 들으면 웃으며 아무 그림이나 걸었다고 할 수도.....
  영화에서 달력 그림은 한눈에 르느와르 풍이라는 걸 알겠는데, 르느와르로 검색했을 때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구글이 텍스트 검색어가 아닌 그림을 검색창에 직접 드래그해서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명 이미지 검색이다. 영화 속 장면을 캡처해서 구글에 이미지로 넣었더니 르느와르의 1895년 작이라고 가르쳐준다. 편리한 팁을 알게 됐다. (201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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