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달나무 Aug 12. 2017

이성에 눈뜨는 아이들

초5 기간제 담임의 경험에서 확인된 아이들의 모습

방학이다. 다른 학교보다 일주일 늦었다. 아마도 봄, 가을 단기 방학이 있어서 수업일수를 맞추느라 늦게 한 것으로 안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들떠 있었다. 오히려 누리반보다 다른 반 친구들이 더 흥분하는 듯했다. 누리반 아이들은 이미 공연을 피크로 진을 다 뺏기 때문 아닐까 싶다.

성우회양로원 할머니 돕기 공연 모습(구파발성당) 

밀린 진도를 빼느라 수업 중심으로 일상이 돌아가다 보니 곧 방학이라는 자각이 다른 반보다 덜했으리라. 역시 수학 수업을 아이들은 지겨워했다. 신기한 것은 단원평가 형식의 쪽지 시험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는 이 지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5년 전에 일산의 중2 여학생을 개인 과외한 적이 있었다. 이 친구는 슈퍼맨을 시아버지로 극진히 섬기는 아이였다. ㅋㅋ 무슨 말이냐 하면 슈퍼주니어 13명이 모두 자기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밤 10시에 슈퍼주니어 일부 멤버가 진행하는 <키스 더 라디오>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여기는 녀석이란 말이다.
이 녀석은 전과목 전교 최하위 성적이었지만 특히 수학에 약했다.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일종의 수학 난독증에 가깝다. 그러나 눈치가 빠르고 일상생활에는 영민한 아이였다. 이 친구 엄마와 상담을 하면서 한숨을 쉬는 경험을 했다. 엄마는 수학 성적이 20점 미만이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말을 했다. 나를 만나기 직전 "에듀플렉스"라는 자기주도학습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한 수학 정리노트를 내게 보여줬다. 마치 아래 사진과 같은 노트였다.(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온 것/매우 흡사했다)


아이의 글씨가 맞지만 평소에 쓰는 필체와 많이 달랐다. 명쾌하고 깔끔하다. 풀었다기보다는 베낀 티가 역력하다. 구석에는 담당교사의 친절한 가필이 간혹 있었다. 포인트를 집어주거나 격려하는 말들이다.
아이의 엄마는 노트를 증거로 대면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문제도 잘 푸는 아이가 어떻게 빵점 시험지를 받아올 수 있냐는 항변이었다. 또 다른 증거가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명문대 공대 출신 아빠가 문제집을 가지고 딸을 지도한 적이 있었단다. 1~2시간 설명하고 문제집을 풀게 했는데, 언제나 70~80점대 점수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딸의 빵점 시험지는 분명 시험 당일 딸아이의 컨디션이 극도로 나빴거나 학교에 불만을 품은 아이의 의도적인 보이콧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들이 자기 자식에 대해서 조차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희망고문을 하면서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조작한다는 것을 알았다. 기존의 엄마라는 개념이 바뀐 것이다. 엄마는 기업의 팀장과 같은 성격과 위치에 있었다. 자식은 부모의 리더십에 따르고 의미 있는 업무실적을 올려야 하는 팀원이 되었다. 빵점 시험지의 주인공이 내 자식이 아니라 내가 이끄는 팀의 멤버이기 때문에 학생 엄마의 답답한 항변은 딸에 대한 방어막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보호막으로 들렸다. 

소위 자기주도 학습학원은 매일 3~4시간을 학원(독서실과 같은 성격)에 머물면서 주어진 분량을 공부하고 담당 선생에게 점검을 받는 시스템이다. 학원에서 늘 교사의 노트를 베끼고 집에 가져와서 공부 증거로 엄마에게 보여준다. 엄마가 냉정하고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공부한 증거가 아닌 시간 때우기 필사라는 것을 알겠지만 엄마들도 자기 팀원의 실적 부진을 어떡하든 끌어올려야 하는 처지라 열심히 공부한 것으로 결재(!)해준다. 또한 부모가 교사 역할을 할 때 학습부진을 보이는 영민한 아이들은 문제의 답을 부모 선생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다. 콧구멍의 미세한 움직임, 눈썹의 예민한 흔들림을 통해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아낼 수 있다. 이 또한 짧은 시간에 교사 역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싶은 부모의 바람이 빚어낸 촌극이다. 무의식적으로 부모는 아이에게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답을 가르쳐줌으로써 답답한 과외교사 역할을 마치고 가족이 모두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옮기려고 한다. 

고학력 명문대 출신 부모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실상이 이렇기에 학교에서 부모 없이 치르는 시험은 늘 20점 미만인 것이다. 

누리반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익힘책으로 형성평가를 보거나 프린트물로 단원평가를 했을 때 아이들은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 정답만을 표시한다. 시험 결과와 아이의 수학(修學) 능력은 별개인 것이다. 시험 결과와 공부 능력의 차이는 초등학교가 더 심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한 중1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 엄마들은 충격적인 결과 통지를 받는다. 내 아이가 4~50점 성적에 중간 이하의 석차를 받아오지만 엄마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대략 70%가량 학생의 엄마들은 이런 "멘붕"을 경험한다.

어제(27일) 일이다. 공연 촬영한 것을 편집한 파일을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당연히 아이들은 몰입해서 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이돌 댄스를 추는 3팀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아이돌 가수 댄스 흉내내기는 오로지 아이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댄스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추고 또 춰서 안무를 익히고 외웠다. 아가씨들의 귀엽고 때론 섹시한 동작을 재현하는 5학년 꼬마들이 다시 봐도 깜찍하고 예뻐 보였다. 놀이 시간이 지나고 나란히 서서 재잘되는 3 여학생을 보자니 입술에 뭔가를 바른 것이 분명했다. 

"니들 입술이 왜 그래. 뭐 발랐니?"
"네(웃음)"
"립글로스 발랐니?"
"아뇨.립밤인데 색깔이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응. 그냥.(너희들 입술 메이크업에 시비 걸 생각은 없단다) 이뻐 보여서...."
"우리가 이뻐 보인다고요? 아까 우리 춤추는 동영상 볼 때 선생님 좀 이상한 표정이었어요. 꼭 야동 보는 사람 같더라."
"뭐, 야동?"

곧바로 '아이들이 귀엽군'하며 미소 지었던 나 자신이 떠올랐고, 그런 내 모습을 이 아이들이 봤구나 하는 생각, 뒤이어 아이들이 매우 맹랑하단 생각이 순간적으로 이어졌다. 아니 이 녀석들이 누굴 '야동준규'로 만들려고 하나. 나원참! 선생님은 평생 한 번도 야동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할 뻔했다. 하지만 너무 구차한 변명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받아치는 전략을 재빨리 바꿨다. 그냥 야동 보면서 실실 웃는 사람 같았다는 말에 어느 정도는 반격을 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얘. 너는 야동을 본 적이 있나 보구나."
그런데 지목당한 아이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고 경직된다. 난 또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어, 얘 봐. 너 진짜 야동 본 적 있구나. 헐~"
그렇게 확인할 것까지는 없었다. 나중에 든 생각이다. 아이는 어쩔 줄 모르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30년 전 내가 고2 때 포르노 비디오를 가지고 있다는 친구가 모두의 영웅이 되는 것에 비하면 세상이 크게 변했다. 인터넷을 통해 아이들은 초등 3~4학년 때 포르노를 접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포르노가 아닌 남녀가 침대에 단순히 포개져 있는 영화도 야동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누리반 아이의 상당수는 포르노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여학생의 빈도가 더 높은 것으로 짐작된다.

2007~08년 사이에 일어난 대구 초등학생 성추행 사건은 처음엔 6학년 남자아이들이 포르노 동영상을 흉내 내며 동네 2학년 남동생들에게 자신의 몸을 핥으라고 협박하면서 시작됐다. 이것을 동성 간 성추행으로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가 중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 급기야 어린 여학생까지 성폭행한 사건으로 확대되면서 언론에 크게 알려진 경우이다. 아이들이 이미 여기까지 와 있다. 대구의 초등학생이 그랬다면 은빛 5학년 누리반 아이들도 거의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봐야 한다. 성폭행, 성추행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아이들이 포르노에 노출된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현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내 반 아이, 내 집 아이만의 현실이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고려한 성교육 콘텐츠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해 보인다. 학교는 보건 교육 시간을 이용해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빈약하고, 학교가 성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순리가 아니라고 본다. 아이들의 성교육은 가정과 마을에서 이루어져야 옳다. 가정에서는 모든 것을 오픈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모가 교육해야 하며, 마을에서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는 친구들과 관계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성적 성숙 과정을 서로 지켜보며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니 학교에서라도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하는 교육은 훨씬 현실적이다. 방학을 이용하여 엄마와 아이가 함께 참여하는 것을 권한다.(www.ahacenter.kr에 들어가 살펴보고 프로그램 참여는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샤프한 여학생 A가 일주일 전 놀이 시간에 급하게 담임인 날 찾았다. 그때 나는 복도에서 5학년 팀장 가람반 담임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에 이야기를 나누자고 교실로 돌려보낸 다음 다시 A를 만나 급하게 날 찾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B가 계속해서 제 몸의 특정 부분을 쳐다봐요. 이상한 웃음을 보이면서."
"네 가슴을 주목해서 본다는 말이냐?"
"네. 그래서 전 성적 수치감을 느꼈다고요. 선생님이 처벌해주세요."
"너는 지금 B가 너를 성희롱했다는 말을 하는 거냐?"
"제가 성적 수치감을 느꼈으니 성희롱이 맞잖아요. 그리고 B는 수업 중에도 바지에 손을 넣고 자위를 한다고요."
아니 이건 또 뭔가? 나로서는 낯 선 경험이다. 5학년 여자 아이가 남자아이가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자위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색했다. 분명 '자위'라는 단어를 쓰면서. 나중에 동학년 선생님들과 얘기를 들으니 A가 4학년 때부터 B의 자위를 거론하며 학교에서 자위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해 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단다. 휴~

B와 B의 엄마에게 확인한 결과 눈치 없는 B가 가려움을 해결하려고 바지에 가끔 손을 넣은 적이 있고,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았기에 친구들에게 목격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B의 변명이 맞다. 5학년 남자아이가 수업 중에 자위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 B가 그럴 형편의 발달을 보이지도 않는다.
A에게는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했다. 영민한 A는 그런 내 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이 사태를 담임선생인 당신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빨리 대답하라는 추궁이다.
"일단 선생님이 확인해보고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냥 지나갈 일은 아니겠구나."
이렇게 일단 넘겼다. A의 지식과 순발력을 이용한 선행학습은 아이들에게 빠르게 퍼진다. 나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의 수준과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에 따른 교육적 고민이 뒤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누리반 아이들은 6학년 문턱에 서 있고, 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대한민국의 "중2"를 행해 치달아 갈 것이다.(2012.12.28)

매거진의 이전글 박동섭 영화 특강 후기(번외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