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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12. 2017

역사를 왜 공부하나요?

중2의 문제제기-지난 간 일에 대해 왈가왈부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한슬이가 “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죠?”라고 질문했을 때, ‘옳다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주로 떠나기 전 그런 질문이 나오길 기대하고 답을 마련했었다. 정작 반남고분에서 질문이 나왔을 때 반가웠지만 대답을 정갈하게 정리해서 말하기 쉽지 않았고, 배고픈 시간을 넘겼기에 카페에 답을 하기로 미루었지. 이제 그 답을 여기서 한다. (선생님의 답은 진정한 답을 찾아가는 너희들의 여정에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이다. 멈추지 말고 그 불빛을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바란다)

영국 신부인 토마스 머튼이 장자 사상에 심취하여 열심히 공부한 결과로 펴낸 책이 <장자의 도>(은행나무 출판사)이다. 장자의 도 <12편 13절>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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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삶이 충만했을 때는 아무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고,

아무도 능력 있는 사람을 가려내지 않았다.


왕은 그저 가장 높이 달린 나뭇가지였고,

백성들은 숲에서 뛰노는 사슴이었다.


그들은 정직하고 의로웠지만 '임무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것이 '이웃 사랑'인 것을 몰랐다.


그들은 아무도 속이지 않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고,

서로 믿고 살면서도 '훌륭한 믿음'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살았지만 그들이 너그럽다는 것을 몰랐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들의 행위는 기록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역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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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생겨난 여러 가지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한 다양한 양상을 기록한 것이다.

역사가 무엇인지 이처럼 역설적으로 설명한 것이 또 있을까? (여러 번 곱씹으면서 읽어보아라. 뜻을 알아내려고 애쓰면서 읽어보아라)


# 따라서 문제가 없었다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고, 당연히 문제를 해결한 것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사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거꾸로 역사를 찾는 사람들은 ‘능력’이 뒤지며, 뛰놀 숲이 없고, 정직하지도 의롭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모르고, 특히 서로 주고받을 줄 모르는 것이지.


#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역사는 계속 기록된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는 또다시 역사가 된다.

‘문제’를 늘 안고 사는 사람들은 그 ‘해결’ 책을 찾기 위해 과거의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역사를 몰라라 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가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예를 들어 현재의 문제는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자. 그것이 과연 당연한 걸까? 비추어볼 것이 없다면 우리는 현재를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게 될지 모른다.

물론 우리가 돌아볼 과거의 어느 시점에도 상거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는 어떤 형태를 띠었나? 왜 그런 형태를 띠게 되었나? 지금 우리가 취하고 있는 형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뿐더러 과거라고 해서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통해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위의 말들 중에서 ‘서로 주고받을 줄 모른다는 것’과 관계가 가장 깊다. 거래는 있을지언정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간(人間)이 없다. 사람이 소외된 상거래를 위한 물질의 교환만이 있다. 그런 것을 상품경제라고 한다. 상품경제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반드시 이익을 창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익창출을 제외하면 전체 경제가 멈춰버리는 것이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거짓 당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지 모른다. 이익을 끊임없이 창출하기 위해 상거래 대상이 아닌 것도 빠르게 시장화되는 것을 보면 선생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과거에 품앗이로 해결했던 공동체 과제가 노동시장으로 편입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었지. 가르치는 모든 행위는 곰비임비 완전 시장화되었다. 공교육 학교도 마찬가지야. 교실에서 친구에게조차 공책을 보여주지 않는 세태가 교육의 시장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잖니. “그래서 너는 내게 뭘 해줄 건데?” 대가 없이 거래 없는 것이 상품경제 구조인 거니까.

엄마가 정성껏 차려주는 저녁식사는 1588에 전화 걸어 시켜먹는 피자에 구축(驅逐)되고(‘구축’이란 내쫓긴다는 말이다) 마음과 마음을 전달하는 의사소통 수단도 모두 대기업이 주도하는 통신회사에 정복당했다. 이제 상품화되지 않은 우리 생활이 무엇 있으랴?(사실상 가족 관계도 상품경제에 의해 해체됐다고 본다) 한 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사랑’일 게다. 하지만 이것도 풍전등화. 곧 함락될 것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우리가 백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은 한갓 유람을 하거나 바람을 쐬기 위한 것이 아니지. 그들이 금동대향로와 금동관을, 사리장엄구를 만들고 중국으로, 일본으로, 멀리 인도와 아랍까지 뱃길로 드나들면서 만들어나간 ‘그들만의 리그’에서 오늘날 상품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는 어떻게 투영될 것인가?

분명 ‘오늘 우리’의 문제는 ‘그때 그들’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다.(그때가 유토피아라는 말은 아니다. 그때는 그때의 문제가 있었지)

샘의 말이 전달될 거라 믿는다. 너희들은 총명하니까^^

샘의 글을 거듭 읽으면서 질문 꼭 해주길 바란다. “역사를 왜 기록하고, 또 배우는지?”에 대한 대답도 스스로 만들어보기 바란다.


10월 24일(수)과 31일(수) KBS1 마지막 꼭지로 한 <특집 다큐멘터리 대백제>를 인터넷 다시 보기로 꼭 보길 바란다. 방송국 사람들은 영산강 유역의 정치집단(반남고분 사람들 말이다)에 대해서 모르고 있더구나. 백제는 대륙에서 내려온 세력이고, 반남고분 사람들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뱃길로 한반도에 들어온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반남고분 세력을 염두에 두고 다큐멘터리를 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야.


역사를 아는 건 또한 현재(문제)의 뿌리를 추적해가는 중요한 여정이 된다. 문제의 뿌리를 알 때, 미봉책에 그치거나 누군가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고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2007.11.1 박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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