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길재 Dec 07. 2021

뮤지컬 '론더풀 투나잇' 관람기


늘 같은 자리에 있기에 존재조차 잊었던 오래된 사진액자, 어느 날 그 사진 액자가 사라졌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액자를 찾아 온 집을 뒤진다. 보이지 않는다. 사진 속에 담긴 예전의 희미한 모습, 그립고 그립다. 지난 2년간의 시간이 그랬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다만 잊고 지낼 뿐. 어느 한순간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본연의 나를 만난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상황은 극적이다. 그때의 감정이 어떠하든. 전혀 계획에도 없었지만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갑작스러운 뮤지컬 공연 관람은 일상에서 느끼는 설렘의 반전이다. 뮤지컬 「론더풀 투나잇 - 혼자 가기 좋은 술집」 관람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같이 공부하고 있지만 한 학기 내내 형식적 인사만 나눈, 게다가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더 익숙한 사람들과의 공연예술 관람이라 맞선 자리에서 느끼는 어색함, 불편함 그리고 기대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론더풀 투나잇」은 2013년 초연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에 회자된 연극 <론더풀 투나잇>을 새롭게 기획하여 선보인 부산에서 보기 드문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 5년 동안 그리고 다시 뮤지컬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야기의 서사가 가지는 ‘공감’이지 않을까? 저녁이 되고 도시가 낮보다 더 화려하게 변할 때 동네엔 어둠이 내리고 작고 따뜻한 불빛이 빛난다. 그리고 낮에 보이지 않던 작고 허름한 술집이 보인다. 그곳으로 약속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손님들이 각자의 삶의 무게를 안고 찾아온다. 홀로 앉은 채 자신 앞에 놓인 술 한 병, 술잔 하나, 수저, 소박한 안주를 내려다보며, 한 잔의 술잔을 기울이고 잠시라도 고단한 짐을 내려놓는다. 

뮤지컬을 보는 내내 일본 TV 드라마 ‘심야식당’과 겹쳐졌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하루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한 식당에 모여든다. 마땅히 정해진 메뉴도 없다. 특별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 속에는 그저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나’가 있다. 20여 분의 짧은 한 편의 에피소드는 잔잔하다 못해 지루하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 12시가 되면 이 식당의 주인은 한 대의 담배를 피우고 문을 연다. 그리고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손님들이 온다. 둘러앉아 각자가 시킨 간단한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신다. 그리고 나누는 한 두 마디의 대화들. 그런데도 한 번 보면 계속 보게 된다. 다음 에피소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내가 그 속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외로운 ‘나’가 거기에 있다. 「론더풀 투나잇」도 기본 포맷은 심야식당과 비슷하다. 빌딩의 화려한 불빛의 뒤쪽, 휘황찬란한 빛 아래의 어두운 그래서 나를 감추기도 좋다. 아니 오히려 감춰진 나가 드러난다. 하루 종일 숨겨진 나의 진실된 모습. 혼자라서 편안하고 혼자라서 외로운 ‘나’가 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의 주인공이 되고 감춰진 ‘나’를 만난다.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희망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희망은 열정이 넘치는 젊은 공연예술가들이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예술가들은 배가 고프다. 삶에 대해서도 예술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배우들은 젊다. 노래, 연기, 춤, 대사 전달까지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리고 연기력이 뛰어난 중견배우와의 어울림도 좋다. 이들이 우리 부산예술의 미래이다. 그 에너지가 느껴져 관람 내내 즐겁고 행복하다. 또 하나는 일상이 무너진 코로나 시대, 서로에 대한 경계와 거리가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조금씩 그 경계를 풀고 그동안 죄인처럼 숨죽여 기다려왔던 공연이 다시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하면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첫 번째 아쉬움은 이야기이다. 한국의 콘텐츠는 이제는 가히 세계적이다. 지옥,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한국의 드라마, 영화 속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서사구조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 담긴 철학과 의미의 수준도 높다. 이러한 수준에 길들여진 관객의 수준은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뮤지컬 「론더풀 투나잇」의 인간군상의 이야기는 솔직히 시대에 뒤쳐진 느낌이다. 딸아이의 결혼으로 인한 공허한 빈자리로 더 외로움을 느끼는 퇴직한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정형화되어 오히려 신파로 느껴진다. 청년들의 모습도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이다. 또한, 뮤지컬 속에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은 요즘 여성들이 느끼는 고민과 다른 느낌이다.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연극 작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을 얻는 이유는 뭘까? 그 속에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여전히 현실 속에서 살아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의 고민과 어려움은 무엇일까? 노인으로 칭해지는 늙음이 주는 진짜 외로움은 무엇일까? 왜 여성은 육아, 결혼이라는 문제에만 고민이 있는 것으로 표현될까? 우리 사회는 많은 외로움이 있다.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공정성, 차별,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노인, 성소수자, 여성, 노동 등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숨이 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에 이야기의 서사는 2013년 그때에 머물러있다. 

두 번째 아쉬움은 무대미술이다. 누구에게나 하나 정도의 단골이다. 그것이 술집이 아니라 미용실이 되었든 식당이 되었든 아니면 어느 특정한 장소이든 간에. 사람들은 어떤 곳을 단골로 만들까? 편안하고, 따뜻하고 드러나 있어도 나를 숨길 수 있는 하지만 반대로 나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고 서로를 위로해주는 그런 곳. 그런 공간의 배치가 아쉽다. 공연예술 특히 연극은 무대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 작가를 포함한 공연예술가는 늘 고민한다. 무대 공간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하지만 관객과 공연예술가는 공간의 확장에 대해 서로 약속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공연 무대는 때로는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다. 요즘 영상매체의 도입은 이제 자연스럽다. 제한된 예산과 무대 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려한 도시의 모습뿐만 아니라 조명의 활용을 통해 장면에 따른 무대 공간을 조금은 다채롭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한 편의 뮤지컬 관람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진액자 속의 한 장면을 찾았다. 그래서 오늘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 연극 「트라우마」 관람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