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워드 사이드와 경계인의 시선
모든 시작은 끝의 실패와 맞물린다.
오늘 아침 신문 칼럼(중앙일보, 2026. 1. 7. (수) 마음 읽기: 미래로 나아가는 단단한 방법)의 첫 문장이다. 새해가 밝은 지 오늘로 일주일째이다. 새로운 결심과 함께 의욕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에 우연히 마주한 이 문장에 마음이 깊이 꽂혔다. 그리고 오래전에 읽었던 에드워드 사이드를 다시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흔히 '시작'을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의 산뜻한 출발로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기대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그 환상을 가차 없이 깨뜨린다. 무언가 새로 시작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전의 흐름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상태가 완벽했다면 새로운 시작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모든 시작은 지난 시간의 한계와 붕괴를 딛고 일어서려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역사적 사건이다.
이러한 통찰의 기저에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있다. 그는 저서 『시작: 의도와 방법 Beginnings: Intention and Method』에서 신화적이고 수동적인 '기원(Origin)'과, 인간의 의도가 개입된 능동적인 '시작(Beginning)'을 엄격히 구분했다. 그에게 시작이란 지난 실패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넘어서려는 재출발의 순간이었다.
사이드가 이런 통찰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이 철저한 '경계인(Marginal Man)'이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활동했고, 서구와 동양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늘 '제자리를 찾지 못한(Out of Place)'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이 불편함을 회피하는 대신, 기존의 거대 담론을 해체하는 지적 무기로 삼았다. 서구가 동양을 멋대로 재단한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문학 작품 이면에 침묵당한 식민지의 목소리를 읽어내는 '대위법적 독해'를 창안한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사이드의 통찰은 문학을 읽는 방식에서도 혁명적이었다. 그는 음악 용어인 '대위법'을 차용해, 멜로디(주류의 이야기) 이면에 깔린 반주(침묵당한 역사)를 동시에 읽어내는 '대위법적 독해(Contrapuntal Reading)'를 제안했다.
예를 들어 알베르 카뮈의 명작 『이방인』에서 우리는 주인공 뫼르소의 실존적 허무에 집중하지만, 사이드는 뫼르소가 죽인 '이름 없는 아랍인'에 주목한다. 소설 속에서 식민지인은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주인공의 고뇌를 위한 배경 장치로 소모될 뿐이다. 또한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 속 평화롭고 우아한 영국의 저택은, 사실 카리브해 식민지 농장의 노예 노동과 착취가 없다면 유지될 수 없는 공간임을 그는 짚어낸다.
사이드는 위대한 문학 작품들을 깎아내리려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아름다운 문장과 서사 뒤에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실패와 폭력이 어떻게 자연스러운 배경처럼 깔려 있는지를, 우리가 보지 못한 '끝의 실패'를 읽어내려 했을 뿐이다.
"모든 시작은 끝의 실패와 맞물린다."
이 말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장면들—이별 후의 새로운 사랑, 퇴사 후의 창업이나 재취업, 혹은 혁명과 같은 사회적 변화—에 깊은 위로와 용기를 준다. 새로운 사랑은 지난 관계의 결핍을, 새로운 사회는 구체제의 모순을 딛고서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는 부끄러운 낙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하는 귀중한 자산이다. 사실 우리는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실패는 곧 낙오라는 등식이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시작을 위해서는 이러한 강박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다양한 결심을 한다. 사실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권이기도 하다. 새해의 결심이 벌써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실패가 있었기에 우리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깨닫고 다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경계인의 고독 속에서도 끊임없이 세상의 이면을 읽어내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듯, 우리 또한 지난날의 실패를 딛고 단단하게 나아가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경계인의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익숙한 성공의 서사가 아니라 실패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 즉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겠지만, 어떤 시작도 없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시작은 실패한 끝에서 비로소 움튼다. 이 명징한 진리를 품고, 2026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