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 참호 속에 핀 풀꽃

- 부산향토문화연구회 대만답사기(1)

by eduist 이길재

타이베이 송산공항에서 18:20에 출발한 비행기가 1시간 남짓한 비행을 마치고 금문에 착륙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금문은 검은 바다 위 화려한 네온사인 야경으로 빛나고 있어 놀라웠다. 최전방이나 다름이 없는데 이렇게 화려한 야경이라니. 그 화려한 불빛의 주인이 대만이 아닌, 바다 건너 중국의 샤먼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타이완 본섬과는 무려 200km나 떨어져 있는 반면, 중국 샤먼과는 불과 1.8km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곳. 남의 나라의 최전방이자 접경지인 이곳을 우리는 왜 왔는가?


1949년 국공내전의 막바지, 수세에 모린 국민당군의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이곳에서 중화민국 국군은 필사 항전 끝에 인민해방군을 격퇴했다. 10월 24일부터 10월 27일 사이에 벌어진 구닝터우 전투의 승리로 금문은 중화민국의 영토로 확고히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1958년 8월 인민해방군은 다시 금문에 44일 간 47만 발의 포탄을 퍼부으며 금문 포격전을 일으켰다. 이후 1979년까지 '홀수 날에만 포격'하는 기이한 대치 상황은 무려 20년 넘게 지속되었다.


과거 중국 공산당군으로부터 무참히 포탄 수십만 발 피격당한 섬, 이후 삼통정책으로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지만 잔존하는 위험은 여전하다. 해안에는 적군의 상륙 저지를 위한 방어시설 궤조채가 여전히 날을 세운 채 중국을 향해 뻗어 있고, 섬 곳곳에는 미로 같은 지하 갱도, 참호가 있어 이곳이 접경지역임을 알 수 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유사시 가장 먼저 전장이 될 이곳을 방문객(관광객)들은 지하갱도, 참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하다. 전쟁의 상흔이 일상의 배경이 된 곳, 바로 관광 금문의 현재 모습이다.


금문의 격전 현장을 둘러보면서 위대한 시인 월트 휘트먼이 떠올랐다. 남북전쟁 당시 야전병원에서 병사들을 돌보며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던 그는, 피를 뒤집어쓴 채 서로를 향해 악마로 규정하는 전쟁의 광기를 비판했다. 포탄의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에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휘트먼은 꽃다운 젊은이들의 생명이 사라져 가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노래하며 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다.


참호의 좁은 창을 통해 바라본 하늘과 바다는 푸르고 아름다웠다. 참호 앞 풀밭의 이름 모를 작은 노란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거대한 포탄도, 견고한 콘크리트 요새도 시간이 지나면 녹슬고 허물어지겠지만 작은 풀, 작은 꽃은 매년 다시 피어날 것이다. 월트 휘트먼이 노래한 '풀잎'처럼.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금문 곳곳에 떨어진 수십만 발의 포탄을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유용한 도구로의 변신으로 이어졌다. 특히 포격전 후반기에 주로 날아왔던 '선전탄(Propaganda Shell, 전단이 든 포탄)'은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껍데기가 매우 강한 강철로 만들어져 칼을 만들기에 최적이었다고 한다. 대장간의 불꽃 속에서 쇠는 살상 무기로써의 과거를 씻고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생명을 끊던 쇳덩어리에서 생명을 살리는 요리 도구, 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포탄으로 만든 칼과 칼을 만드는 공정은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사산포 진지에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포사격 시범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단순한 공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시 참혹했던 전쟁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하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다. 평화 시에는 관광 상품인 이 포격 시범이 유사시에는 다시 살상 행위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서늘한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사실 금문의 풍경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6.25라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겪고, 휴전선을 허리에 두른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국의 접경지역 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 닮아 있다. 1.8km의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현실에서의 긴장감은 우리에겐 유전된 감각과도 같다.


역사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는 약육강식(弱肉強食)의 국제질서 속에서 대만은 과연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그 결정을 지켜낼 수 있을까? 최근의 양안 관계를 보면 금문은 관광지이면서 여전히 화약고라는 사실을 떨쳐버릴 수 없다. 자유와 인권, 평화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정점을 이뤘다고 생각되는 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파괴와 죽음에 최적화된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휴양지나 관광지 대신 이곳을 찾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 일상의 소중함을 확인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무겁기만 한 금문의 밤은 속절없이 춥고 길기만 하다. 춥고 긴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벽이 온다. 낮에 본 참호 앞 노란 꽃이 다가올 새벽 햇살 아래서 더 이상 떨지 않고 평온하게 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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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통정책: 중국이 대만 간의 교류 확대를 통해 관계 개선과 통일을 위해 제시한 정책으로, 통상(通商), 통항(通航), 통우(通郵)의 3가지 통(通)을 의미하며 양안 경제와 인적교류를 증진시켜 평화적 관계 개선에 기여함.

** 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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