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한 학교는 활기에 넘친다. 학교 정원에는 매화, 산수유가 기지개를 켜고 목련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마음에 터질듯한 꽃망울을 자랑하며 살구나무에도 붉은 빛이 가득하다. 아침저녁으론 제법 쌀쌀한 꽃샘추위도 있지만, 성급한 아이들은 벌써 반팔 차림으로 운동장을 누빈다.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파란 하늘을 보며, 이 설렘 가득한 시작이 끝까지 이어져 한 해가 마무리되길 바라는 요즘이다.
이렇게 활기찬 풍경 이면에는 다소 아쉬움도 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현상이다. 이는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부여된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며 심리적으로는 일과 분리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2022년 미국의 한 엔지니어가 틱톡에 올린 영상으로 촉발된 이 트렌드는, 성공보다 ‘안녕(Well-being)’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와 번아웃(Burnout), 노력 대비 낮은 보상에 대한 회의감을 대변하며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학교 현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교직 사회에서의 조용한 퇴직은 일반 기업보다 더 심각한 ‘공적 헌신의 상실’로 나타난다. 도를 넘은 악성 민원,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공포, 학교폭력 처리의 부담감 등으로 교육활동의 통제력을 상실한 교사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는 교육 활동의 위축과 학생과의 정서적 교감 단절로 이어지며, 교사는 교육적 보람을 잃고 학생은 인격적 성장 기회를 상실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는다. 어쩌면 우리 교직 사회 전체가 겪는 구조적 피로가 응축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현재 학교 현장은 이른바 ‘3A 현상(승진 포기 abandonment, 부장교사 기피 avoidance, 담임 회피 aversion)’이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에는 관리직 승진이 주요 목표였으나, 이제는 ‘책임만 늘고 실익은 없다’며 가산점을 챙기지 않는 젊은 교사들이 대다수다. 업무는 과중한데 보직 수당은 수십 년째 동결 수준인 부장직은 기피 대상 1순위가 되었고, 학부모 민원이 집중되는 담임 대신 교과 전담을 선호하는 현상은 고착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젊은 교사뿐만은 아니다. 중견교사 역시 부장 보직이나 담임 특히, 1, 6학년을 비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미국의 만화가 스콧 애덤스가 주창한 ‘딜버트의 법칙(Dilbert Principle)’은 한국 학교 현장에서 기묘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수업과 생활지도에 능숙한 우수 교사들이 보상 없는 관리직의 고충을 피해 교실에 남거나 승진을 거부하는 사이, 교육적 전문성보다는 행정적 처세에 능한 이들이 관리직에 오르는 사례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는 현장의 냉소를 자아내고 조직의 ‘상향 평준화’를 가로막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최근 교권 5법 개정을 통해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분리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법적 방어망이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교원 급여와 성과 보상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단일 호봉제’와 단순한 직급 구조는 교사의 성장 동기를 차단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원화된 성장 경로(Dual Career Path)’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직급의 세분화(Career Ladder)이다. 현행 1급, 2급 정교사 체제를 넘어 교사의 직급을 수습교사(Entry), 전문교사(Professional), 선임교사(Senior), 수석교사(Master)로 세분화해서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면 어떨까? 특히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해도 관리직 부럽지 않은 예우를 받는 수석교사제의 정원과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둘째, 역할과 책임에 기반한 ‘직무급’을 도입해야 한다. 근속연수에 따른 호봉 승급의 현재 급여체계 외에, 부장교사나 담임교사처럼 난이도가 높은 보직에 대해서는 기본급의 일정 비율을 직무 수당으로 지급하는 등 경제적 유인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관리직(교감, 교장)의 그 책임과 직무 성격에 맞게 승진 시 별도의 봉급표를 적용해 ‘책임감 있는 리더’를 유입시켜야 한다.
나아가 학교의 교육행정지원인력을 확충하여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외의 학교 행정(돌봄, 방과후학교, 시설, 공문처리, 행사 등)은 지원인력을 확충하여 지원할 수 있어야 하겠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싱가포르는 교수, 리더십, 전문가라는 세 가지 트랙을 통해 교사가 자신의 강점에 맞는 커리어를 선택하게 하고 있으며, 미국 일부 주의 TAP(The System for Teacher and Student Advancement) 프로그램은 수업 전문성과 동료 지원 성과를 급여에 반영한다. 이처럼 승진이 급여 인상의 유일한 수단이 아닌, 수업 전문성만으로도 고액 연봉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 틀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교원 자격, 급여 체계, 학교문화 등이 워낙 견고하고 많은 예산과 사회공론화 과정과 함께 교원 양성 과정에서부터 준비해야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생, 교사, 학부모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생명체와 같다. 그중에서도 교육 개혁의 핵심은 결국 ‘교사’다.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교육관과 사명감뿐만 아니라, 합당한 보상과 사회적 신뢰에서 나온다.
지금 학교는 일 년 중 가장 설렘 가득한 희망을 품고 있다. 학교라는 시스템을 바꾸는 거대한 도약은 어렵고 갈 길은 너무나 멀다. 소박하지만, 올해는 ‘조용한 퇴직’의 그늘을 벗어나 교사가 자긍심을 갖고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는 ‘조용한 도약’의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변화는 나에서 출발해서 동료 교사과의 연대, 공동체적 회복을 통해 실현될 것으로 생각한다.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봄이 오는 걸 막지는 못한다.
<참고문헌>
이동엽 외(2023). 수업 혁신 지원을 위한 교원인사제도 개선 방안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https://www.niet.org/our-work/our-services/show/the-tap-system-for-teacher-and-student-advancement
https://www.moe.gov.sg/careers/become-teachers/pri-sec-jc-ci/professional-develop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