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직후 심리상담에서 나는 ‘자기확신’을 얻고 싶었다. 동시에 도망가고 싶었다. 과한 확인강박을 가졌음에도 실수를 연발하다 자괴감에 회사를 관둔 처지니 당연했다. 상담 포스터에 적힌 성장이라는 단어는 너무 커다란 동시에 아득히 멀었다.
개선의지와 두려움의 싸움은 두려움의 승리로 끝났다. 상담 내내 자신감이니 자기효능감이니 좋은 말들이 자기확신으로 가는 돌다리를 놓을 때도, 내게는 그 아래 세차게 몰아치는 물살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승리가 오롯이 두려움의 몫은 아니었다. 구직단념청년을 자처하던 마음이 개선으로 가는 발길을 묶어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회사에 적을 두고 연차를 소진하는 시기에 벌써 구직단념자였다. 문화라는 테마를 좇아 전국을 전전했으나 스스로 조직에 맞지 않음을 확인한 상황이었다. ―이 부적응자가 꺼져주마.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구직단념의 돛단배는 평온했다. 46만이라는 동승자 수가 큰 위안이었다. 오천만 국민 중 백 명의 한 명 꼴로 ‘그냥 쉬는’ 것은 사회 문제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우위의 관점에서 봤을 때 스스로도 회삿일보다 다른 것을 하는 쪽이 더 나은 것 같아서.” 왜 거기에 탔냐고 묻는 남들의 질문에 둘러대는 핑계가 선언처럼 당당했던 것도 모두 그 낙관 덕이었다.
내놓고 백수가 된 뒤로는 이것저것 들으러 다니느라 바쁜데, 개중에는 구직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더러 있다. 항로를 모르는 배에 오른 자의 마지막 보험인 셈이다.
그곳 사람들이 사회적 동물, 생계 따위의 말들로 구직을 독려할 때면 나는 슬며시 웃고 만다. 생계가 아주 여유로워서도 아니고, 스스로가 놈팽이임을 몰라서도 아니다. 직접 겪었던 직장의 천태만상을 못내 삼키고 얼버무리는 것이다. 상처를 함구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지옥에 또 들어가라고?!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을 것을 알아도 상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도망쳐온 곳에 낙원은 없다 했던가. 회삿일보다 ‘글쓰기’를 잘한다고 공언한 죄로 나는 매일 적막 속에서 커서와 씨름한다. 동태눈인 채로 있다가 마음이 급해져 컴퓨터를 당겨안아도 쓰이는 것이 없어 다시 안광을 꺼트리고… 잇단 밀당 끝에 머릿속이 잡념으로 가득찬다. ‘이게 정말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맞나’, ‘직장을 버린 건 온전히 나의 잘못만은 아닐 텐데 이게 무슨 고생일까.’ 정 쓸 것이 없으면 고민이라도 주워섬겨야 한다.
번민의 일과를 마치고 캔참치에 소주를 곁들인다. 참치기름의 짠맛과 술의 쓴맛,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확실함을 음미하며 생각한다. 나의 모든 것은 왜 이렇게 명료하지 못할까. 뒤이어 나오는 탄식마저도 희미해서 하릴없이 술잔을 한 번 더 채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