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이 Dec 03. 2019

교사는 연애 상대, 엄마는 결혼 상대 같아

교사와 엄마의 차이점 고찰



나는 교사 출신 엄마다.



엄마가 되고 나니, 교사와 엄마의 차이 극명하게 느다. 나도 제자들을 자식처럼 꽤 예뻐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입장과는 꽤 다. 교사로서의 사랑과 엄마로서의 사랑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교사에게 보이는 모습과 엄마에게 보이는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사는 아이에게 연애 상대와 같고, 엄마는 아이에게 결혼 상대 같아.'



 이유를 한번 정리해봤다.



1. 만나는 시간 차이


연애를 할 땐, 보통 약속을 정한다. 방이 약속된 시간에 만나 어느 정도 합의시간 동안 함께 있는다. 그래서 헤어질 땐 매번 아쉽다. 여행이라도 가면 24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겠지만,  24시간 무한히 연장되진 않는다. 무한정 반복되는 24시간이 궁금하다면, 결혼이라는 걸 감행해야 한다.


교사로 아이를 만날 때도, 함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교과 수업으로 만날 땐 하루에 1~2시간, 담임교사로 만날 땐 많아도 5~6시간 정도(초등의 경우). 주어진 시간이 제한적이 서로가 서로를 아쉬워할 가능성이 생긴다. 정해진 시간 동안 교사는 최대한 많은 걸 가르치고 싶어 하고, 아이는 최대한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짧은 시간 집약적인 사랑을 한다, 마치 연인처럼.


하지만, 엄마길게는 하루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있는다. 긴 시간을 함께 있다 보면, 서로 늘 같은 장소에 놓인 가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이라는 사실은 뭔가를 자꾸 미루게 되는 이유다. 애정 표현도 유보되곤 한다. 엄마는 좋은 게 있어도 바로 주지 않고 나중에 주려고 아껴 놓는다. 아이는 떼를 쓰고 신경질을 내다가, 뒤늦게 애교로 상황모면하려 한다. 헤어짐을 전제하지 않는 결혼처럼 그들은 긴 시간 동 느슨하게 연결되어 다. 하지만 어떤 관계보다 끈끈하다. 마치 부부처럼 말이다.



2. 긴장도의 차이


연애를 하면 사람은 보통 자신을 꾸민다. 깨끗하게 손질된 옷과 신발, 자신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를 고른다. 머리 손질을 하거나 화장을 해서, 집에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된다. 아무 말이나 하지도 않는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일수록 경어체를 쓰고, 센스 있는 답변, 세련된 농담 하려고 말을 고른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좀 자연스러워진다. 불편한 옷에 답답한 화장을 하고 하루보내는 것만큼 고역 없으니까.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기도 하고, 어휘가 잘 생각나지 않을 때는 "그거, 저거, 이거"와 같은 대명사를 남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척하면 척 알아듣기를 원한다. 가끔은 싸우는 것도 아닌데 날카롭고 격양된 말투튀어나오기도 한다.


학교에 오는 아이의 마음가짐도 데이트를 앞둔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 교사 앞에서의 표정, 몸짓, 태도 등 집에서와 전혀 딴판이다. 몸이 경직될 정도의 긴장감 느껴질 때도 있다.  긴장감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이게 아이가 학교에서 밥을 잘 먹는 이유다. 특별히 꼬인 마음 없다면, 대부분의 아이는 교사에게 바르고 예의 바른 학생으로 '잘 보이고 싶어 한다.' 연인에게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것처럼.


밖에서 긴장을 많이 하면 할수록, 집에서는 더 풀어진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도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집에서는 조금 흐트러졌거나, 조금 지저분하거나, 조금 나태해도 괜찮다고 느낀다. 아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엄마가 자신을 받아줄 것을 알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당당하다. 부부가 어느 순간 가족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순간과 비슷하다.



3. 양다리의 가능 여부


연애가 시작되고도 여전히 어장관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양다리로 여럿의 연인을 한꺼번에 만나는 사람이 있다. 도덕적으론 문제가 되지만,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지탄의 대상이 된다. 불륜은 아직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금기다.


교사도 연애하는 것처럼 마음껏 어장관리를 한다. 양다리, 아니 문어발 다리도 가능하다. 보통 한 명의 교사는 여러 명의 학생들을 상대한다. 교사의 연애 대상은 '일대다'다. 아이들은 크기가 정해진 교사의 마음에서 더 큰 파이를 차지하고자 경쟁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교사는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거다. 자신을 둘러싼 사랑의 각축전을 지켜보며 유유히 믹스커피를 홀짝거릴 수 있으니까.


엄마는 어떨까. 형제, 자매가 다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한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에는 양다리가 있을 수 없다. 결혼이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이듯, 아이와 엄마는 '일대일'의 관계로 만난다. '너 아니면 다른 애'를 생각할 수 없기에, 그 사랑은 맹목적다. 사랑에 경쟁이 없다는 것은 안정을 주지만,  안정감 어장관리가 필요 없는 잡힌 물고기처럼 상대를 홀대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만큼 편하면서 막 대하게 되는 대상이 있을지. 자주 간과하만, 하나밖에 없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감사와 예의는 필요하.



4. 관계의 변화 가능 여부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는 남녀는 흔하다. 부부이혼을 하지만, 연인의 이별만큼 흔하지는 않다. 연애는 헤어지지 않을 사람을 만나기 위한 탐색전에 가깝다. 기본 전제가 헤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결혼은 평생 헤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관계를 맺겠다는 일시적인 결단 영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약속이다. "사랑스러운 순간에도 사랑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에도 사랑하라."는 한 주례사의 문구처럼.


그렇다면 학교에서 만나는 교사와 아이의 관계는 어떨까? 쌍방의 의지에 의해 만나게 됐든, 의지와 상관없이 만나게 됐든, 그들은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있다. 교사는 본인이 가르칠 사명이 완수된 순간 아이의 곁을 떠다. 이별의 시간과 장소는 학교나 교육 시스템의 의해 사전에 결정되어 있기도 하다.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기에 애틋하지만, 헤어질 것이기에 서로에 대한 책임이 가볍기도 하다. 닥쳐올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지금 이 순간의 기쁨 취해 있어도 그만이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에게 스치듯 지나가는 단편의 기억으로 남 쉽다.


하지만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는 다르다. 부모와 자식은 우연처럼 만났지만, 그 관계는 천륜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 쉽게 끊지 못다. 관계 오히려 부부보다 단단하다. 오래 지속 사이일수록 앞날을,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매일 놀이공원에 가서 솜사탕만 사줄 수 없는 일이다. 결혼 적금을 붓는 일이자, 대출금을 갚아가는 일 것처럼, 부모와 자식도 매일의 시간을 적립 나간다. 지금 먹이는 음식이 아이의 평생의 건강을 좌우할 거라고, 지금 시키는 공부가 아이의 진로를 결정할 거라고, 엄마는 엄청난 무게감을 느끼며 아이를 키운다.






사랑에 경중이 어디 있을까. 인생 특정 시기 거쳐간 사랑은 그 기간이 짧든 길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사나 엄마나 아이를 위하는 마음하나같이 귀하다. 그저  사랑이 약간의 입장차와 온도차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해되지 않던 많은 설명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교사였던 난 예전에 만난  학부모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왜 세상에 자기 자식밖에 없는 것처럼 대해주길 원했는지. 교사가 상대해야 할 아이 꽤 여럿이라는 사실을 참작해주지 않는지. 그리고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카톡과 전화벨을 울리며 제 아이에 대한 용건을 말하곤 했는지.



또, 내 아이가 왜 어린이집과 집에서의 행동이 전혀 딴판인지도 알 것 같다. 집에서는 먹여주지 않으면 먹지 않는 밥을 왜 어린이집에서는 한 그릇 뚝딱하는지, 왜 어린이집에서는 칫솔질과 기저귀를 피해 도망가지 않는. 나도 한때 학부모 상담에서 이렇게 말했었으니까.



"어머니, 00이는 학교에서 진짜 잘해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정말 집에서는 안 그래요?"



그래도 연애할 때의 사랑은 이미 알던 것이고, 결혼으로의 사랑은 새로 배우는 것이라, 후자 쪽에 더 경외심이 생기는 것 같다. 내 자식 내가 어쩌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지금, 누군가를 평생 사랑하는 일을 기꺼이 선택한 모든 엄마에게 무한한 동료 의식이 생긴다. 나중에 본업에 돌아가면, 나, 꽤 겸손한 교사가 되어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넌 포도였고, 난 콩이지만, 우리는 초록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