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이 Jan 13. 2019

손톱에도 이유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만져본 세상



제왕절개 수술 후 처음 찾은 병원 모유 수유실. 간호사가 작고 낯선 생명체를 내 아기라며 건넸다. 손목, 발목에 걸린 이름표가 없다면, 남의 아기를 받았어도 감격스레 안았을 거였다. 



아기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아기를 안은 내 엉거주춤한 자세 영 불안해, 아기를 무릎 위 수유쿠션 위에 내려놓았다. 작은 몸 프게 할까 봐 꼭 잡지도 못하고 놓치지만 않게 살며시 붙들었다. 문득 내 뱃가죽이 아기의 몸을 감싸 보호하고 있었던 때가 안전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기의 몸에 부딪히는 공기의 촉감조차 거칠거나 날카롭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걸 보면.



젖을 빠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아기는 빠는 둥 마는 둥 하다 젖꼭지를 입에 물고 잠들어 버다. 그럴 때 아기 귀나 발을 만져서 깨우라고 배웠다. 아기의 발은 배춧속 같은 싸개 속에 있음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차가웠다. 조금이라도 따뜻해질까 싶어 아기 발을 연신 주물다.  발은 하얗고 길쭉했다. 앙상한 발가락 끝에 라벨 스티커 같은 조그만 발톱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꼼꼼히 붙어있었다. 바깥쪽으로 비스듬히 돌아간 세모꼴의 새끼발톱은 내 것과 같았다. <발가락이 닮았다> 걸 알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닮았다>는 아니었다. 내 손톱은 단추처럼 짤막하고 동글동글한데, 아기 손톱은 사파이어 보석처럼 길쭉다. 문득 언니와 함께 손가락을 펼쳐 고 비교하며, 우리는 왜 이렇게 손톱이 예쁘지 않냐고 한탄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언니 손톱은 나보다 더 심했다. 손톱깎이로 바짝 깎아 버리면 남아있는 손톱 몸통이 쥐톨만 했다. 햇볕에 그을려 거뭇거뭇해진 손에 군데군데 새까맣게 때도 끼어있었을 손톱이었다. 한창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은 시기에 매니큐어를 칠해도 썩 예쁘지 않아 불만인, 그런 손톱이었다.



출산 병원에서 퇴원할 때쯤, 아기 손톱은 손가락 끝을 앞지르고 발톱은 발가락 끝을 앞질러 하얗게 자라 있었다. 어떤 이는 성장 발달이 늦은 아이를 가리켜 '손톱같이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수사를 쓰기도 했지만, 손톱은 생각보다 빨리 자랐다. 자라나는 찰나를 실시간으로 목도하지 못할 뿐이었다. 소프트 콘택트렌즈처럼 연한 아기 손톱은 작은 손톱 가위로도 가볍게 잘렸다. 하지만 깎아준 지 하루 이틀 지나면 어느 날 또 훌쩍 자라 있었다.



나는 손톱 깎아주는 걸 자주 깜박했다. 아기 낮잠 시간에 도둑처럼 해야 하는데, 재우는 데 이미 진 뺀 후라 손톱 따위 까맣게 다. 그러면 말 못 하는 아기는 얼굴에 빨갛고 예리한 상처를 내는 것으로 손톱 깎아달라는 말을 대신했다. 허공을 허우적거리던 손가락 끝으로 연한 살갗을 할퀴는 행동은 속싸개 완전히 뗄 때쯤 사라졌다. 그 후 아기는 손과 팔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험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동은 긁는 것이었다. 그르르르르... 드륵드륵드륵... 어떤 소리가 나는지는 어디에 눕혀져 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종이 벽지를 긁을 때도 있었고, 범퍼 침대의 쿠션을 긁을 때도 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앉고, 뒤집는 일을 한창 연습할 때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어도, 아기는 한가하지 않았다. 드득드득드득... 아기는 긁는 것으로 소리 없는 사물도 소리를 가진 사물로 만드는 재주를 부렸다. 긁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아기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손톱은 아기와 세상의 소란스러운 대화 창구였다.  



몸집이 커지면서 손톱의 기능은 더 다양해졌다. 어떤 물건을 쥐여주면 아기는 물건이 가진 모든 정보 다 캐내려는 듯 찔러보고, 만져보고, 뒤집어 보고, 뜯어보기 시작했다. 내복에 붙은 라벨은 꼭 만져봐야 했고, 눈에 보이는 스티커는 전부 떼어야 했다. 단호박은 껍질째 으깨야했고, 귤에는 손가락을 박아서 과육이 줄줄 흐르게 해야 했다. 세상 모든 것이 앉은자리에서 만질 수 있 위치에 있거나, 서툰 걸음마로도 닿 거리 있다면, 아기는 전부 만졌을 거였다.   



하지만 만지는 것이 많아질수록 아기의 손톱은 닳았다. 꼭 한두 개쯤은 끝이 부러 있었다. 손톱 끝에 낀 때를 보면 아기가 얼마나 많은 것을 만지고 경험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톱 끝에 아기의 요란하고 부산했던 하루의 일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신 갓 태어났을 때 쁜 손톱 모습은 점점 잃어다.



이제 제법 단단해져서  가위로는 잘리지 않는 아기 손톱 끝을 손톱깎이로 똑똑 잘라냈다. 작고 동글동글한 손톱만이 남았다, 그 모양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언니와 내가 불평하던 어린 시절 우리의 손톱 모양이 때문이었다. 언니에게 아기 손톱을 찍은 사진을 전송하며, 문자 메시지에 이렇게 썼다.  



손톱 모양은 후천적인 게 확실해~ 아기가 태어날 때 손톱은 길쭉했는데 갈수록 언니와 나처럼 되고 있어~ 새로운 것을 보면 가만두지 않고 만져보고 긁어보고 뜯어보느라 손톱이 다 닳아졌어~ 손톱이 짧다는 건 우리가 호기심과 탐구심이 좋은 아기였다는 뜻 아닐까ㅋ



그렇게라도 언니에게 우리도 새것인 적이 있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 것 같다. 새 책을 처음 펼칠 때의 시원하고 뻣뻣한 느낌이나, 새 옷을 처음 입었을 때의 보송한 감촉처럼 우리도 처음에는 꽤 산뜻했을 거라는 것. 그렇게 우리도 존재 자체가 환희였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새것 냄새만큼 빨리 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도 새것 냄새가 점차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향기가 들어다. 지금 아기에게는 귤 향이 가득 차 있다. 햇빛을 잡은 것도 달빛을 잡은 것도 아닐 텐데, 귤이든 뭐든 손으로 헤집어 먹느라 아기 손톱 끝이 노래졌. 아기가 만졌던 모든 색깔과 감촉과 온기가 손톱 끝에 담겨 있다. 어쩜 닳고 닳은 우리의 손톱 끝에도 우리가 미처 상상 못 할 거대한 세상이 끼어있을 모르겠다.







귤 까먹은 아기가 잠든다.

아기 꿈속에 뜨는 건

귤처럼 둥근 보름달.


아기 몰래 손톱을 깎는다.

엄마 무릎에 뜨는 건

열 개의 노란 초승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