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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an 13. 2019

털신보다 따뜻해

특수학급 K군 이야기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기 전, 마지막 학기. 곧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아이들을 더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쩜 평생 이별이라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나와의 이별은 어떤 의미일까? S양에게 말했다. 

"선생님 내년에 다른 학교에 가. " 

그녀는 '내년'의 의미를 모를 것 같아 다시 고쳐 말했다. 

"선생님은 S양이 3학년 때 학습도움반에 없어."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알아듣지 못한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M군은 그 옆에서 정지 화면처럼 웃고 있었다. 

"선생님, 없어요?" 

M군은 뭔가 답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보면 참 엉큼하게 느껴진다. 

"그래, 없어. " 
"어디 가요?" 
"다른 학교. "

M군의 밝은 얼굴 앞에 무슨 청승을 떨 수 있을까. 방긋방긋 웃는 M군을 향해 나도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C군에게도 말했다. 

"선생님은 내년에 이 학교에 없어. C군과 K군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무척 속상해. " 

C군은 바로 울었다. 나는 그가 울 것을 알고 있었다. 여리고 아름다운 감성을 가진 C군이 이런 일에 울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C군을 품에 안아주었다. 가슴깃 양쪽에 눈물 자국이 생겼다. 붉어진 C군의 얼굴 앞에 초록색 풍선을 들이밀었다. 

"풍풍아, 너도 슬프니? 풍~풍~"

그는 자기감정을 반영하듯 초록색 풍선, 풍풍이에게 말을 걸었다. 풍풍이는 강력한 위로 효과가 있는 물건이라 C군의 기분은 금방 회복되었다. C군의 붉었던 얼굴은 다시 새하얘졌다. 마음속이 얼굴 위에 그려지는 정말 도화지 같은 아이였다. 

"그럼 이제 선생님 못 만나요?" 
"아니야. 만날 수 있어. 너희가 선생님 학교에 놀러 오면 되잖아. " 

나는 C군에게는 긍정적인 말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만나기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선생님을 만나려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낯선 동네의 낯선 학교에 찾아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C군과 내가 신파 영화 대사와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K군은 그저 물끄러미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학교로 놀러 가면 되겠네. " 

K군은 내 말을 되풀이하듯 말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이다. 마치 선생님이 전근 갈 학교에 찾아가는 일 따위 별것 아니라는 투 였다. 


평소 K군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연필은 심하게 눌러써서 연필심이 항상 부러졌다. 받아쓰기에서 한 문제라도 틀릴 것 같으면 온몸이 굳어 버렸다. 화가 나도 바로 싸우지 않고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면서 참았다. 강한 자가 참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주 똑똑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에게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걸까. 그는 선생님께 뭔가 부탁하고 싶을 때, "해주세요. " 라고 예의 바르게 말한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선생님과 윷놀이를 하고 싶다고 말할 땐 "윷놀이를 하는 게 낫겠네. " "그냥 윷놀이나 하지?"와 같이 혼잣말을 하듯 어색하게 말하거나, 허공을 보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 양 말했다. 가끔은 나에게 높임말 쓰는 것조차 머쓱해 했다. 숙제한 것을 내밀 때도 "숙제... "라면서 내 앞에 숙제한 것을 척 내밀었다. 

"어려워서 엄마가 도와줬음. " 
"다 하려고 했는데 못했. . . "

'못했어. '의 '어'는 거의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말은 짧아도, 숙제를 내미는 손은 공손한 두 손이라는 사실이었다. 반말이라도, 그 반말 속에는 아주 의젓하고 공손한 내용이 들어있어서 마냥 예의 없다고 훈계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타이르듯 "높임말 써야지. "라고 말해주면, 높임말을 쓰느니 그냥 말수를 줄이는 아이, 그게 K군이었다. 그런 성격이니까 선생님이 떠난다는 말을 해도 살가운 말 한마디를 못하는 거겠지. 





유독 추운 날에 있었던 일이다. 고장 난 천장형 온풍기가 따뜻한 바람 대신 찬바람만 내뿜고 있었다. 바닥 난방이 가능한 교실이긴 했지만 한겨울에는 난방을 켜도 꽁꽁 얼었던 교실 바닥이 빨리 따뜻해지지 않았다. C군은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섰다. 

"아으. 왜 이렇게 추워. 선생님, 왜 날씨가 추운 거죠?"
"음. . . 그건. . . "
"아주 엉망이구먼. 날씨가 쓰레기야. 개사기야. "
" 아무리 그래도 욕은 아니지." 
"히터가 왜 따뜻하지 않고 왜 시원해. 히터가 아주 뻥을 치고 있어. " 
"히터가 뻥을 치진 않. . . "

C군은 내가 말을 되받아 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폭포수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난 마음은 금방 진정되지 않았다. 달래주는 것이 한계가 있을 때는 기다려 주는 게 답이었다. 


아이들은 평소 바닥 난방이 되는 교실에서 실내화를 신지 않았다. 자기 집 안방처럼 맨발로 뛰어노는 것이 좋아서 실내화 신는 것을 거추장스러워했다. 하지만 손발이 찬 편인 나는 슬리퍼를 꼭 챙겨 신었다. 겨울에는 털 슬리퍼를 신었다. 털 슬리퍼를 신지 않으면 발이 꽁꽁 얼었다. 

"많이 춥지?"     

나는 신고 있던 털 슬리퍼를 벗어 C군의 발에 신겨 주었다. 

"어때 따뜻해? 발바닥에 좋은 느낌이 들지?"
"아- 따뜻해. "
"어때? 보들보들, 보들보들, 보드라운 느낌이지?"

어감이 부드러운 말들은 C군의 마음을 녹이곤 했다. '풍풍이'이나 '무당무당'처럼 말이다. 발의 촉감에 집중하는 것도 신경질 나던 기분을 푸는 것에도 도움이 됐다. 

"선생님이 슬리퍼를 신겨주니까 마음 풀렸지? 그럼 공부 시작하자!"

나는 C군과 K군을 동시에 보며 말했다. C군이 불평을 하는 바람에 수업은 10분 이상 지연되었다. 나는 빨리 준비한 수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신발 안 신어요?"     

K군이 내 맨발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괜찮아. " 

다른 슬리퍼를 찾으러 가는 건 번거로운 일이었다. 사실 신발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 앞에 붙박이처럼 서 있는 편이 좋았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인 C군이 이제 마음 잡고 수업에 몰입하려는데 내가 집중력을 흩트려뜨리고 싶지 않았다. 

"푸카 신발 있잖아요. " 

푸카 신발은 내가 작년 내내 신던 털 슬리퍼였다. 많이 낡아서 안 신고, 교실 뒤편 신발장에 처박아둔 것이었다. 

"선생님 안 신어도 괜찮아. "    

K군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신발장에서 한참 푸카 털슬리퍼를 찾았다. 그리고 내 발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생각지도 않은 K군의 젠틀한 행동에 나는 깜짝 놀랐다. 

"고마워." 
". . . " 

K군은 그런 멋진 행동을 하고서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대꾸도 없었다. 자기가 한 행동을 한 게 머쓱하게 느껴졌는지 죄 없는 필통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이미 털 슬리퍼 위에 9살 소년의 따뜻한 배려가 흰 눈처럼 가만히 내려앉았으니까. 낡은 털 슬리퍼가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면, 타고난 성격이란 아이마다 천차만별이고,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 또한 참 다양한 것 같다. C군은 감정이입을 잘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대신 자기감정에 사로잡혀 남의 감정을 살피지 못할 때가 있다. K군은 무뚝뚝하고 둔감한 것 같으나 내심 속정이 깊고 양보심과 배려심이 있다. 선생님이 떠난다는 말에 반응이 없는 S양도, 선생님이 떠난다는 말에 웃었던 M군도, 선생님이 떠난다는 말에 울었던 C군도, 선생님이 떠난다는 말에 울지 않았던 K군도 마음은 같은데 표현 방법만 다른 거라면 참 다행일 것 같다. 그래야 전근을 앞둔 선생님의 마음이 잠깐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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