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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an 13. 2019

기린을 기린이 아니라 기이린으로 쓰고 싶어

특수학급 Y군 이야기


예를 들어, 사람의 뇌 속에는 푹신한 소파가 있다고 해보자.


거기에 A라는 친구가 편안히 앉아있었는데, 새로운 정보를 가진 B라는 손님이 들어와서 여기는 이제 내 자리니, A보고 당장 비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고집이 센 사람이야 언짢아하면서 "에잇, 내가 엉덩이로 자리 다 덥혀놨는데!"라며 투덜거리겠지만 결국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평화로우려면 뇌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고분고분 내줘야 한다. 그래야 원래 알고 있던 정보는 새로운 정보로 바뀌고, 얕은 지식은 더 복잡한 지식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소파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은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새로 나타난 지식과 치열한 결투를 벌인다. 특히,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한다. 그걸 바꾸려고 하면 마치 생존에 위협을 받는 것처럼 필사적이 된다.




Y군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 있었던 일이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낱말의 모양을 사진을 찍어 놓듯 머릿속에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방식으로 한글을 순조롭게 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가르쳐줘도 몇몇 관심 있는 낱말은 읽고, 관심 없는 것은 읽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Y군은 후자였다. 한글을 아예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떤 글자든 술술 읽을 수 있도록 기초부터 천천히 가르쳐야 했다. 마침 한글을 익히지 못한 지적장애 아이 2명도 있어서 그들과 함께 지도하기로 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를 가르치기 위해서 낱자가 들어가는 낱말을 배우고, 그 안에서 낱자의 소릿값을 익혀나가는 식으로 가르쳤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를 배우고 나서는 '고노도로모보소오조초코토포호'를 그 이후에는 '구누두루무부수우주추쿠투푸후'를 배워나갔다. 순조로웠다.


Y군은 글씨 쓰기에 원래 관심이 많았다. 글자를 똑같이 보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자기가 쓰는 글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자기가 쓰는 글자가 어떤 뜻을 가졌는지 생각하면서 쓰진 않았다. 글씨를 쓰면서 마음의 안정감을 얻고,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해도 수업 시간에 보고 쓰기만 한다는 건 상당히 기계적이고 무의미해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혼자 쓰기'를 가르치기 위해 기회를 살폈다. '혼자 쓰기'는 어려운 목표였다. 학습지에 적힌 글자를 똑같이 보고 쓰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알맞은 글자를 스스로 생각해서 써야 했다. 지금까지 지우개로 글자 지우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자폐 아이들을 많이 봐 왔다. 실패에 예민한 Y군에게는 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두 달쯤 지났을까. 그가 쉬운 낱말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할 무렵, 나는 가방 그림을 보여주며, '□방'과 같이 빈칸이 있는 문제를 냈다. 그는 '가', '나', '다' '라' 중에서 '가'를 선택해 '가방'이라는 글자를 완성했다. Y군의 표정과 반응으로 봐서 어렵지 않아 보였다. 나는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쉬운 문제를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반복시켰다. 보기가 있는 문제는 언제나 안전감을 주는 듯했다. 객관식 문제는 주관식 문제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다고 생각됐을 때 나는 '□방'이라는 빈칸이 있는 문제에 연필로 '가'를 적어 넣는 과제를 주었다. '혼자 쓰기'의 시작이었다. Y군은 자기가 아는 글자를 어렵지 않게 적어 넣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고노도로모보소오조초코토포호' 모두 성공적이었다.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구누두루무부수우주추쿠투푸후'를 쓸 때도 틀린 글자가 많아 조금 짜증을 내긴 했지만 틀린 글자를 바르게 고쳐 쓰며 순조롭게 학습을 했다. Y군은 암기력이 좋았다. 현존하는 지능 검사 도구에 허점이 많아서 그렇지 자폐아의 지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Y군의 지능은 꽤 높게 측정될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Y군과 함께 공부하는 지적장애 학생 2명보다 습득이 빨랐다.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내가 "보"라는 글자가 불러줘도, 글자 모양이 쉽게 생각나지 않아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ㅂ 브 보 오 오" 와 같이 글자를 길게 늘려서 발음해줘야 했다. 자음의 소리와 모음의 소리를 쪼개서 들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의도였다. 길게 늘려 발음한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ㅂ" 을 먼저 생각하고, "ㅗ"를 그다음에 생각해서 "보"라고 적을 수 있었다. 하지만 Y군에게는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Y군에게는 그냥 짧게 "보"라고 불러줘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 순조로운 수업은 '기니디리미비시이지치키티피히'를 배울 때 제동에 걸렸다. 그것도 아주 생각지 못한 이유로 말이다.




그날도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Y군이 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한 질서와 반복이었다. 나는 기린 그림을 주고 '□린'이라는 문제를 주었다. Y군이 해야 할 일은 빈칸에 '기'라는 글자를 스스로 적어 넣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평소와 달랐다. 그는 '기'라는 한 글자를 적어야 할 자리에 '기이'라는 두 글자를 적었다.

"'기이'가 아니야. '기'라고 적어야지. "  

나는 '기이'를 '기'로 고치게 했다. Y의 얼굴이 불편한 기색으로 일그러졌다. 이상했다. 지난 시간에 틀린 것을 고칠 때는 이렇게 불편해하지 않았다.

"이!!!! 이!!!!!"

그는 자기가 적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 '이'라는 글자를 소리 높여 외쳤다. 어떤 생각이 그의 뇌 속에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쉽게 그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고집스럽게 자기 자리를 붙드는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팽팽한 대치 상태가 되었다. Y군은 내가 쥐고 있는 학습지를 낚아채더니 '기'라고 고친 글자를 지워서 다시 '기이'로 고쳐 적었다.


나는 친구가 바르게 쓴 학습지와 예전에 공부했던 글자 교구를 꺼내들어 "기이"가 아니라 "기"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엄연히 다른 것을 틀리게 쓰겠다고 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기이'라고 쓰고 싶은 건 알겠어. 하지만 '기'라고 한 글자로 써야 해. "

하지만 아이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이!!!! 이!!!!!"
"그럼 여기 낙서 많이 해. '이' 많이 써. "

나는 낙서할 수 있는 종이를 주고 쓰고 싶은 글자를 쓰도록 했다. Y군은 종이에 신경질적으로 '이'를 커다랗게 휘갈겨 썼다. 하지만 그래도 성에 안 찼는지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Y군의 뇌 속에 오개념이 생긴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Y군은 내가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을 가르칠 때 '기' '이'와 같이 길게 늘려 발음한 것이 Y군의 머릿속에 박힌 것이다. 자기에게 한 말이 아니더라도, 같은 수업 공간에서 하는 선생님의 말은 Y군의 귀에도 들렸겠지. Y군에게 오개념을 가르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나 때문에 Y군은 '기'가 1음절이 아니라, '이'와 같은 2음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그게 진리처럼 느껴진 순간, Y군은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다.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을 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거였다.

"자, 수업은 여기서 끝! 정리하자. "

나는 Y군이 잊어버릴 수 있도록 수업 자료를 전부 정리했다. 나는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을 보고 당황한 나의 모습, 어떻게 가르칠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긴장감이 의도치 않게 자폐 아이의 불안감을 증폭시켰을지 몰랐다. 나의 상황 대처가 썩 훌륭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나를 더욱 허탈하게 했다. 아이를 진정시켜서 통합학급에 올려보낸 후 몇 시간이 지났다. 실무사가 울고 있는 Y군을 특수학급으로 데려왔다.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특수학급에서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알림장을 써야 하는데 '가'를 '가아'로 쓰려고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 아이는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통곡을 하듯 울었다. 어떤 때는 달래는 것도 안 통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겠니. 잊어버리는 것 밖에 답이 있겠니?"  

나는 교실에 있는 그네에 아이를 데려다가 함께 앉았다. 그리고 그네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Y군아, 선생님이 노래 불러줄까?"
"네. "
"그래. 그럼 피노키오 불러줄게.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 나는 네가 좋구나~. "  

나는 Y군과 그네를 탈 때 피노키오 노래를 자주 불러다. 예전에 가르쳤던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도 피노키오 노래를 불러주면 울음을 뚝 그치곤 했다. 그 아이를 빼다 박은 듯 닮은 Y군을 만났을때,  Y군도 이 노래를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몇 번 불러줬더니 예상대로 기분 좋게 들었고, 조금씩 따라 부르기도 했다.


"피아노 치고 미술도 하고 영어도 하면 바쁜데 너는 언제나 공부를 하니 말썽쟁이 피노키오야"

피노키오를 부르는 동안 Y군의 울음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나무인형 피노키오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와 닮은 것 같았다. 그래서 피노키오의 가사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공부도 없고, 시험도 없는 파란 머리 천사의 세상, 장난감의 나라로 떠나버리고 싶은 피노키오의 마음이 Y군의 마음이었다.

"우리 아빠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잘해 줄 수 없겠니. 먹고 싶은 것이랑 놀고 싶은 놀이랑 모두 모두 할 수 있게 해줄래. "

피노키오를 4번 반복하는 동안, 아이는 무릎을 베고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사력을 다해서 울어버리는데 어떤 체력이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잠들어 있는 아이를 토닥이며 아이의 힘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그날 이후, 나는 Y군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었다. '혼자 쓰기'는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고, 알림장을 쓸 때도 내용을 불러주지 않고, 보고 쓰도록 했다. 알림장 내용을 불러주면서 쓰게 하면 '가'를 '가아'로 쓰고 싶어서 괴로워했지만, 보고 쓰게 하면 아무 문제없이 고분고분 썼다. 머릿속으로 소리를 연상하지 않고 글자를 그저 그림을 그리듯 옮겨 쓰면 혼란이 없었다. 그렇게 오개념이 Y군을 괴롭히지 않고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기다렸다.


얼마 뒤, Y군은 '기린'을 '기이린'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았던 '기'를 '기이'로 쓰고 싶다는 생각은 그의 뇌에서 자리를 털고 나가버린 것 같았다. 누가 그 생각을 내쫓았는지, 언제 그 생각이 나가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Y군은 어느 날 내 앞에 또 다른 Y군으로 나타났다. 마치 예전의 모습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조금 성장한 Y군의 모습으로 말이다.  




자폐(自閉). 스스로 닫았다는 뜻이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함부로 나올 수도 없는 것이 그의 세계이다. 들어갈 것은 안 들어가고, 엉뚱한 것이 들어가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예측불가의 세계. 하지만 숫자 '십이'를 왜 '102'라고 쓰지 않고 '12'라고 써야 하는지 괴로워하는 오늘의 Y군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렵지 않은 건, 저것이 또 무언가를 하나 배워가는 성장통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은 남들보다 아프게 배워야 하는 사람이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게 교사인 내가 '세상이 정한 규칙을 강요해서 미안하지만, 이 세상은 규칙으로 가득 차 있고, 그 규칙을 익혀야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살 수 있어.'라며 옹고집을 부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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