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이 May 21. 2019

이젠 '내' 아기를 '우리' 아기로 놓아주어야 할 때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신 아기님께  



순순히 인정해야겠다.

나에겐 지독한 독점욕이 있다.



내 아기는 '우리 거'가 아니라 '내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내 배에서 나왔는데, 남편과 공동 명의인 건 어쩐지 부당한 것 같았다. 아기 유전자엔 엄마와 아빠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겠지만, 그 이름표는 작아서 맨눈으로 보이지도 않으니 무효라고 우기고도 싶었다. 어차피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옛말을 들먹이는 사람은 이제 없을 테니까. '어머니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가 팩트, 엄연한 사실이니까.



그런데 아기는 소유욕에 불타는 엄마의 마음을 전혀 몰라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그랬다. 내가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아기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어쩌다 아빠가 쓰다듬으며 "해님아, 해님아"하면, 아기는 "저 여기 있어요."라 듯 배를 툭 걷어찼다. 그 귀는 아빠 목소리에만 쫑긋거리는지, 그 양수는 아빠 목소리의 낮은 음파만 전달되는 건지. 몇 번을 반복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아기는 엄마를 샘나게 하려고 작정 한 것 같았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은 "아빠"였다.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한 것이. 그래서 나는 "아빠" 그저 옹알이의 일종일 뿐이고, 아직 의미 없는 발성이라는 주장을 펼다. 첫 발화의 의미조차 무시할 정도로 지키고 싶었던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아기의 "아빠" 정확한 의미와 기능을 가진 말이었다. 전화기 밖으로 흘러나오는 아빠의 목소리에도 "아빠!" 했고, 가족사진에서 아빠를 찾아 가리키며 "아빠!" 했으며, 퇴근한 아빠를 향해 두 팔 벌려 돌진하며 "아빠!" 했다. 아빠를 "아빠"라 부르는 목소리에 묻어 나오는 특유의 살가움과 애교스러움엔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기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아빠, 

단 한 가지뿐이었으니까.






"엄마"라는 말을 듣기까지 난 오래 기다려야 했다. "아빠" 말고 "가자, 아니야, 뭐야, 앗 뜨거워, 빵, 까까" 등의 말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도, "퓌레" 같은 어려운 말이 터져 나온 이후에도, "엄마"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18'이라는 숫자로 된 욕을 수없이 하게  된다는 마의 18개월이 되었다.



18개월은 16~24개월에 찾아온다재접근기의 정점이었다. 재접근기란 아기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과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시기라고 했. 그래서인지 사방팔방 돌아다니 아기는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고, 내게 대롱대롱 매달려 제멋대로 굴기 시작했다. 나는 달라붙은 빨판상어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크고 무력한 상어 한 마리가 된 것 같았다.



당시 내 속엔 아기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과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이 공존다. 엄마인 나도 재접근기를 겪고 있었던 것. 아기를 어린이집 보내면, 홀가분하면서도 뭔가 빼앗 기분. 남편과도 공유하지 않겠다 ' 아기'를 어린이집 선생님과 공유해야  때문일 거였다.



전직 어린이집 교사였던 친구는  적응을 위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은 선생님이 엄마야."라고 말해주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말 진혀 꺼내지 않았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그리 쉽게 내주고 싶지 않았. 심지어 나도 아직 듣지 못한 말이 "엄마"였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라는 말이 내게 찾아왔다.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정확한 발음으로 내뱉은 "엄마"였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기는 두 팔을 벌리고 안아달라다. 종일 엄마와 떨어져 있었던 아기가 애틋해 요구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11킬로그램이 된 아기는 내게 안겨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엄마가 움직일 방향을 지시하는 거였다. 선반 위 물건 구경하기, 냉장고 식자재를 살펴보, 집안의 전등, 보일러 스위치 눌러보기와 같은 코스로 공중 투어를 했다. 운전대만 없다 뿐이지, 나는 아기가 조종하는 '탈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안겨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팔이 아 아기를 내려놓게 되었다. 예고도 없이 거실 바닥에 비상 착륙한 아기는 두 팔을 내게 뻗은 채 자지러지게 울다.



"어헝헝 엄마, 엄마, 허어엉"



처음 들은 "엄마"였다.



나는 왜 "엄마" 소리를 처음 들으면, 사방에 꽃눈이 날리는 듯한 감격이 있을 줄 알았을까. 처음 들은 "엄마"라는 말 8할은 눈물, 콧물이 함께 버무려진 징징 거림이었다. 아기는 바짓가랑이를 붙 젖은 얼굴을 비 하얀 자국 다. 현실의 엄마는 그 보송보송하지 않다. "엄마"와 자식 간의 사이는 비 오는 날 바닥에 떨어져 축축이 젖은 꽃잎이 신발 바닥에 찐득하게 달라붙는, 그런 흔한 풍경이었다.  



날을 기점으로 우리에게 "엄마"라는 말일상이 되었다. 달콤한 것을 먹고 싶을 때 "엄마"였고, 안아달라고 조를 때 "엄마"였고, 피곤한데 잠이 안 올 때 "엄마"였다. 아기에게 "엄마"는 꽤 실용적이었다. 투정 부리고, 불평하고, 요구하고, 주장하고, 항의하는 기능으로 쓰기 좋았다. 아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놓을 누군가로 엄마를 선택한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울 때도 "엄마"를 했고, 깜짝 놀랄 때 "엄마야!"를 했다. 깜깜한 곳에서 무서울 때 "엄마"를 찾으면 위안이 됐다. 반대로,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재밌는 놀이를  때, "엄마!"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았다. 실제로 그랬다면, 주변에서 엉뚱하고 뜬금없 바라봤을 거였다.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까? 유쾌한 순간에는 잘 생각나지 않는 이름이 바로 엄마라는 걸.



굉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게 "엄마"였고. 아기의 전부를 지배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게 "엄마"였다. 그건 내가 정한 게 아니라 아기가 정한 역할이었다. 왜 "엄마"라는 말에는 "아빠"를 외칠 때의 꽃미소가 담겨있지 않는지, 왜 항상 울음기가 묻어 있어야 하는지, 한탄해봐야 소용없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자리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영화 같은 자식의 인생에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단역 배우 같은 거였다.



아기를 혼자 소유하고 싶었던 건, 그렇게 해서라도 아기 인생의 주인공 되고픈 욕망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주변인에 지나지 않는 엄마라는 배역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하지만 "내 거"라고 우길 수 있는 것도, 아기갓 낳은 시기에 잠깐 누릴 수 있는 엄마의 치기에 불과다. 애 낳은 고생이 봐서 애교로 눈 감아 줄 수 있는 것도 잠깐이다. 그 유효기간이 끝나니, 이제 '내 아기'님을 '우리 아기'님으로 넓은 세상에 풀어드려야 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영화엔 씬스틸러라는 게 있지 않은가. 출연 분량은 적어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역할, 사건 전개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중요한 역할. 나는 아이의 인생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역 중 하나일지라도, 씬스틸러가 될 기회쯤은 있을 것이다. 아기의 인생에 가장 비중 있는 사람이 "엄마"가 아닐지라도, 그의 인생에 기억에 남는 장면 몇 컷 정도를 남겼으면 한다. 그리고 그게 조금 감동적이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아기의 인생을 이용해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픈 꿈을 이루겠다는데 이게 비난받을 일일까? 아기를 독점할 권리를 내려놓는 대가로 하는 요구치고는 가볍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겪어보기 전엔 괜찮다고 할 수 없는 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