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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ul 23. 2019

너의 이름이 조금 부르기 쉬웠더라면

아기의 꽉꽉이, 그리고 나의 글쓰기



예전엔 '오리'가 그렇게 어려운 말인지 몰랐다.



아기는 늘 장난감 오리와 함께 목욕다. 그림책 목욕 장면 빠지지 않 장하전형적인 노란 오리. 괌으로 태교 여행을 갔을 때, 아기와 탕 목욕을 할 날을 꿈꾸며 사 온 것이다. 아기는 오리에 관심이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었지만, 목욕 때마다 함께다.



샴푸 캡을 쓰지 않는 아기 머리 감 , 오리의 도움을 받았다. 오리를 세면대 가장자리에 살짝 걸쳐놓으면, 아기는 오리를 보려고 고개를 번쩍 들다. 나는 아기 머리가 뒤로 젖혀진 틈을 놓치지 않고, 뒤통수에 물을 뿌려 머리를 헹궜다. 하지만 아기 같은 자세를 오래 유지하 못했다. 비눗기가  빠진 것처럼 느껴질 때는, 아기가 오리를 계속 쳐다보도록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오리야! 오리야! 내려와! 오리야! 내려와서 같이 놀자!"



막 서기 시작할 즈음라, 아기는 일어나 세면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까치발을 해도 손이 닿지 않았다.  



"오리야! 위험해! 높은 곳은 위험해! 해님이가 구해줄게, 오리야!"



아기가 가까스로 오리를 구출하는 동안, 나는 머리 감기기를 마무리했다. 아기 키가 크면서 세면대 위의 오리를 낚아채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될 때까지, 이 방법을 썼다. 매일 없이 "오리야!"를 외쳤다.  정도 반복해서 들려줬으니, 나는 아기가 이 말을 충분히 따라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리" 소리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아기는 그냥 크고  소리로 "야!"라고 했다. 그 말에는 3옥타브 D음 정도의 음정이 있었다. 이는 다른 동물 인형에게까지 확장되어, 해님이는 토끼나 고양이 인형을 찾을 때도 같은 소리를 냈다. 해님이가 "야!"를 하면, 나는 어떤 인형을 가리키는지 눈치껏 알아채서, "토끼야!"나 "고양이야!"라고 같은 3옥타브 D음 냈다. 어떻게든 소통은 가능했으나, 조금 답답한 시간이. 



그러던 어느 날, 해님이가 갑자기 "꽉꽉" 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오리는 "꽥꽥" 운다고 가르쳐 줬을 땐 별 반응이 없던 아기였다. 어린이집에서 오리 관련된 재미난 활동이라도 했는지 머릿속에 꽉꽉이란 말이 콕 박힌 것다. 아기는 오리를 볼 때마다 "꽉꽉"라고 , 오리 카드를 내밀며 "꽉꽉"라고 했고, 그림책에서 오리를 찾아내 "꽉꽉"라고 했다. 



원래 나는 아기에게 야옹이, 멍멍이 같은 말을 쓰지 않고, 처음부터 제대로 된 말을 가르치려 마음먹고 있었다. 야옹이, 멍멍이를 배우고 나면 결국 고양이, 강아지를 다시 배워야 하니, 처음부터 제대로 된 말을 가르치는 게 경제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기는 내 뜻과는 달랐다. 아기가 좋아하는 말들은 "따라 해 봐!"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스스로 따라하고픈 재미난 말들이었다. 한번은 똑딱핀을 만지작 거리는 아기에게 "똑딱똑딱" 해줬더니, 한참을 "똑딱똑딱"을 하고 다녔다.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들고서 끙끙거리기에 그 모습을 흉내 내며 "아고아고" 해줬더니, 자기도 "아고아고"를 하며 까르르 웃어댔다.



이렇듯 아기는 살아 숨 쉬는 말을 좋아했다. 말의 높낮이와 크기를 과장해서 말하면 더 반응이 좋았다. 찾아보니, 그런 엄마의 말들이 아기의 언어 발달을 촉진한다고 다. 운율을 가진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긴 문장도 단어로 분절해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기는 어른들의 길고 장황한 말들 속에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말을 쏙쏙 골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기가 오리 "꽉꽉이"로 정하고 난 뒤, 우리는 오리 이름을 전보다 더 많이 부르게 되었다. TV에 오리가 나오면 아는 사람이라도 나온 양 한참 떠들었다. 오리 인형 놀이는 전보다 감나, 꽉꽉이가 먹는 것, 사는 곳, 잘하는 것에  더 관심이 생겼다. 이름을 부르면 꽃이 되는 김춘추의 시처럼 오리는 "꽉꽉"이가 된 순간부터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된 것 같았다.



애초부터 '오리'가 아녔어도 상관없는 거였다. 나는 '오리'라는 말만 하면, 오리를 아는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맺는 방식을 생각하면, 이름 안다고 상대를 다 아는 게 아니었다. 친구가 되려면 상대의 성격이나 취향, 하루의 일과나 사소한 습관, 예민해지는 순간 같은 것 알아야 . 함께 보낸 시간과 공유한 경험 충분 다. 결국 '오리'라는 이름보다 오리 알고, 오리와 친해지는 게 더 중요 거였다.



아기는 제대로 된 이름을 나중에 배울 거라 믿기로 했다. 바른 이름을 계속 말해주긴 하겠지만, 억지로 고쳐주거나 닦달하지 않기로 했다. 흩어져있던 세상의 말들이 아기에게로 와 꽃이 될 때까지 조금 기다려도 괜찮 것이다. 어른이 돼서도 오리, 강아지, 고양이를 '꽉꽉이', '멍멍이', '야옹이'라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을 테니. 



아기와 마찬가지로 어른에게도 제대로 이름을 부르지 못 일들이 다. 그런 일들은 해님이의 '오리'처럼  보이면서도, 진입장벽이 높아 쉽게 시작할 수 쉽게 배울 수도 없. 어떤 일이 유독 아득하다면, 처음부터  일 너무 어렵고 진지 이름을 붙였기 때문인지 다. 쉬운 이름이었다면, 조금 더 말 걸었을 테고, 조금 더 알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가까이에 머물렀다,  일과 조금 친 수 있었을 것이다.



내게 어려운 일은 '글쓰기'다. '글쓰기'는 평생 제대로 부르기 어려운 이름이다. 오리 인형처럼 마음의 욕조에 늘 떠다니지만 이름이 항상 거창다. 그 이름을 부르려면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에게 어울리는 친구가 닌 것 같아 여태껏 피해 다다. 처음엔 쉬운 이름으로 부르다가 어려운 이름은 나중에 물어봐도 되는 건데, 내가 그걸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글쓰기를 '글쓰기'라 부르지 않고 '꽉꽉이'부르면 어떨까. 3옥타브 D음쯤으로 불러보면 친구처럼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힘을 빼보려고 한다. 엄마가 아기에게 하는 말처럼 조금 쉬운 말로, 리듬과 음조 표정을 가 살아 움직이는 말로. 어쩐지 '글쓰기' 못해도 '꽉꽉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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