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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Aug 02. 2019

비가 좋아지는 순간 사람은 식물이라도 되는 걸까.

마냥 좋아서 그 자리에 멈춰 섰을 때

 “비야, 여름답게 좀 내려 봐라.”



계속된 무더운 날씨에 질릴 땐 이런 말이 나온다.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어버리면 좀 시원할까. 하지만 정작 여름답게 비가 내리면 자진해서 젖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차가 막힐 출근길을 걱정하고, 젖을 바짓단과 신발에 신경 쓴다. 그리고 나는 아기를 어떻게 등원시킬까 걱정한다. 레인 커버를 씌운 유모차는 오른손으로 밀고, 우산은 왼손으로 든 채, 이 비를 온전히 뚫고 갈 수 있을까.



결국, 남편에게 차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아기에겐 화사한 꽃무늬의 레인코트를 입혔다. 우비가 아닌 레인코트. 사실 나는 레인코트가 비를 얼마나 막아주는지 몰랐다. 아기는 태어나 지금까지 제대로 비를 맞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보슬비 맞으며 "이게 비야."라고 말해준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분무기에서 뿜어 나오는 것 같던 미세한 물방울이었다. 아기도 속으로 '에계?'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이번 비의 규모는 대단했다. 워터파크 대형 구조물 꼭대기에 매달린 양동이가 비스듬히 쓰러지며 콸콸 쏟아붓는 같았다.



남편은 비를 덜 맞도록 어린이집 입구에 가까운 곳에 차를 세워줬다. 나는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다른 손으론 우산을 든 채 차 문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빗물이 쏟아졌고,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 나온 삼단 우산은 힘없이 휘청거렸다. 나는 얼른 어린이집 처마 아래로 뛰어들었다. 빗물이 쏟아지는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처마 아래에 비가 들이치지도 않는데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나는 우산의 물기를 털고 옷과 어린이집 가방이 젖지 않았는지 살피느라 바빴다. 아기를 빨리 들여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 오는 날에 유독 행동이 부산스러워지고 마음이 급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빗소리가 빠른 속도로 똑딱거리는 메트로놈 같아서 심장이 덩달아 빨리 뛰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기는 달랐다. 내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아기는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들어가자."



나는 계속 아기를 재촉했다. 하지만 아기는 정지화면이 되어 그저 눈앞에 내리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빗소리가 없었으면 정적만 흘렀을 시간이었다. 아기에게 나는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 입을 뗐다.



 "그래, 이게 비야. 비가 많이 오지?"



솔직히, 비를 '비'라고 가르쳐주려는 마음보다 비에 대한 관심을 그만 끊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생전 처음 만난 큰비를 신기해하는 아기의 마음도 이해는 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 정도면 충분히 봤잖니. 이 정도면 비가 뭔지 알 것 같잖니.'라고 마음으로 말하고 있었다. 빗소리 메트로놈이 조급함을 더 부추기는 것 같았다.



등원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 어린이집 앞은 혼잡하기 짝이 없었다.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거나 유모차를 타거나 엄마 품에 안겨서 온 다른 아이들은 고분고분해 보였다. 반면에 아기는 입구를 막아서고 나와 대치 중이었고, 누구에게도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눈치가 보여 아기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어린이집 교사들도 아기에게 들어오라 손짓을 했다. 어떤 교사는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비타민 사탕을 흔들기도 했다. 사탕이 조금 효력이 있나 싶었는데, "들어가서 먹자."라는 말에 아기는 휙 돌아섰다. 사탕보다 더 중요한 일을 발견한 것 같았다. 빗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결국 어린이집 처마가 만든 경계를 넘어갔다. 아기의 꽃무늬 레인코트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또르르 굴렀다.



아기가 계속 비를 맞게 둘 수 없어 우산을 펼쳤다. 우산을 낮게 들어보아도 거센 빗줄기는 계속 안으로 들이쳤다. 큰 우산을 가지고 올 걸, 속으로 후회하며 아기 발걸음에 속도를 맞췄다. 아기는 노란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을 따라 어린이집 앞 인도까지 나갔다. 그곳엔 갑자기 불어난 빗물을 흘려보내지 못해 생긴 거대한 물웅덩이가 있었다. 물웅덩이가 하도 넓어 수심이 얕은 호수가 펼쳐진 것 같았다.



평소에도 길가의 물웅덩이를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기였다.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 뛰어들었다. 아기에게 우산을 씌워주려면, 나도 물웅덩이에 들어가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아기에겐 발목까지, 나에겐 발등을 덮을 정도까지 물이 찰랑거렸다. 생각보다 맑아서 주황색 보도블록과 물에 잠긴 내 발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고인 물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는 사람들은 고인 물에 자진해서 들어간 우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모든 철없는 행동을 아기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아기 엄마라는 사실이었다.



참방참방. 아기는 신나게 발을 구르더니 흐드러진 들꽃처럼 환히 웃었다. 발만 담갔을 뿐인데 아기는 물을 한껏 들이마신 사람처럼 청량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체면을 포기하고 그냥 웃어버렸다. 체면을 버리니 시원함이 느껴졌다. 프라이팬처럼 달궈져 있던 세상도 맑은 물이 담긴 대야에서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돌아보니, 길가의 들풀은 빗물에 씻겨 푸름이 짙어지고 있었다. 들풀도 다리가 있다면, 비 오는 날 좋아서 아기처럼 깡충깡충 뛰겠다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내 청색 원피스도 반절이 다 젖어 짙은 청색이 되었다.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양새가 물속 흙에 뿌리내린 부엽식물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비가 좋아지는 순간, 사람은 식물이라도 되는 걸까. 내가 식물이라면, 지금 나는 물에 젖은 것이 아니라 물을 축인 거로 생각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재미있어졌다. 이렇게 물을 축이며 물웅덩이에서 참방 거리면, 온종일 놀아도 목이 마르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학교에서 겪었던 작은 일화가 떠올랐다. 그날도 오늘처럼 큰비가 왔다. 한 소년이 흠뻑 젖어서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몸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다니는 곳마다 발자국이 남았다. 학부모가 쩔쩔매며 그를 뒤따라 들어왔다. 우산을 같이 쓰며 학교를 걸어오는데, 아이가 갑자기 냅다 빗속을 뛰어들더라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혼자 빗속을 신나게 달려서 학교에 온 것이다.



그때, 나는 소년에게 "옷이 다 젖어서 축축하지? 찝찝해서 어떡해? 우산 쓰고 와야지."와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나는 왜 그때 이런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을까 싶다.



 "비 맞으면서 오니까 시원했지?"



나는 안 되는 것도 많고 걱정도 많은 고지식한 교사였다. 지금도 고지식하긴 마찬가지였다. '아기들은 한 번 허용해주면 다음에도 계속해줘야 하는데, 비가 올 때마다 이렇게 놀자고 하면 어쩌지?'와 같은 염려 때문에, 결국 아기를 들쳐 안고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시원한 비가 내리던 여름날 아침, 잠깐이라도 물웅덩이에 빠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아기가 머무는 곳에 잠시 멈춰 선 덕분이었다. 마냥 좋아서 그 자리에 멈춰 섰을 때, 나는 내가 원래 자연의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때로는 즉흥적이고, 대담하고, 대책 없어도 괜찮다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이 자연이었던 기억이 조금 더 남아있는 아기가 내게 가르쳐주다.



이날 얻은 교훈은 또 있었다. 레인코트를 입어도 안에 입은 옷을 적실 수 있다는 거였다. 어린이집에 미리 갖다 둔 여벌 옷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담임교사에게 옷 갈아입힐 것을 부탁하며, 미안한 표정으로 아기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점잖은 얼굴의 어르신 한 분을 만났다. 어르신은 짙은 청색으로 물든 내 옷을 보면서 말했다.



 "아이고, 다 젖었네."



평소 같으면 흠잡는 것으로 들렸을지 모를 낯선 사람의 말이 오늘따라 다정한 걱정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시원하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구먼. 나는 반바지를 입고 나오려다 양반 체면에 아니다 싶어 긴 바지를 입고 나왔다가 이렇게 걷어 올렸네."



그러고 보니 어르신의 바지는 끝단부터 돌돌 말아 올려 무릎이 드러나 있었다. 긴 바지가 결국 본인이 입지 않으려 했던 반바지가 되어버린 거였다.



 "시원해 보이시는데요."



 "그런가. 허허허"



낯선 이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걸 보니 비가 오는 날은 걱정스러운 날이 아니라 시원한 날인 게 분명했다. 버튼을 누른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가벼운 미소와 함께 목례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양반 체면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날을 혼자 보낸 것 같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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