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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Sep 10. 2019

손님처럼 왔다간 아기의 계절

매일이 이렇게 부족한 것이었다니



해님이는 여름 내내 외출용 원피스를 입고 잤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기 여름용 드레스가 참 다는 거였. 아기가 귀한 시절이라 그런지, 주변에 옷을 주는 사람이 많았다. 딸아이를 먼저 키운 시누이나 이웃이 때때로 한 무더기의 옷을 주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이 담긴 커다란 종이 상자 택배로 보내주는 사돈도 있었다. 그 집 딸 쌍둥이가 있어 예쁜 옷 늘 쌍으로 들어 있었다.



얻은 옷이지만 낡은 옷은 아니었다. 몇 번 입보지 못했는데  쓸모가 없어진 옷일 뿐이다. 아기 옷의 운명이라는 게 그다. 낡아질 새도 없이 계절은 훌쩍 지나고 아기는 금방 커버다. 내 손에 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부지런히 입혀도 늘  같았다.



그래서 아끼지 않기로 했다. 집에서 놀 때도 외출복을 입히고, 재울 때도 외출복을 입히기로 한 것이다. 주로 소재가 얇고 장식이 없는 원피스를 골다. 원피스는 머리가 들어가는 입구도 넓어 입히기 편했다. 치마가 길게 내려오니 가끔은 바지 생략하고 기저귀만 입힌 채 재웠다. 옷 입히기 절차를 최대한 단순화하려는 엄마의 속셈도 일부 있었다. 그래도 입혀 놓으면 예쁘니까, 그걸 보고 있는 게 바보같이  좋았다.



자기 아기가 예쁘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만은, 해님이는 정말 예뻤다. 밝고 하얀 얼굴빛과 까맣고 긴 머리카락 때문에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도 잘 어울렸다. 알록달록한 꽃무늬 원피스, 귀여운 꿀벌 모양 원피스, 모던한 체크무늬 원피스, 드레시한 시폰 원피스... 뭐든 좋았다. 아기 옷을 입힐 때마다 그림을 오려 종이 인형의 어깨에 걸쳐주고, 작은 천 조각으로 마론인형의 옷을 만들어 입혀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더 좋은 건, 이제 그 인형이 살아서 움직이기까지 한다는 거였다.



외출용 원피스를 입으면, 아기는 패션쇼 모델이 되고 온 집안 런웨이 무대가 되었다. 아기가 예쁜 옷을 입고 내게 총총 걸어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매일 새 옷을 입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 같았다. 옷을 입어도 입어도 낡지 않는 기분이 드는 건, 입는 사람이 새것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태어난 지 두 해도 되지 않은 아기는 아우라 자체에 방부제나 보존제 같은 성분이 들어 어서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을 새롭고 특별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개중에는 내가 구입한 옷도 있었다. 해님이가 태어나던 해 5월, 나는 남편과 괌으로 태교여행을 갔다. 괌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아기 옷을 살 수 있는 쇼핑센터가 많았다. 환호성이 나올 만큼 작고 예쁜 옷들이 많았지만, 당시 해님이의 성별도 몰랐기에 쉽게 옷을 고를 수 없었다. 맘에 든 옷을 집어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다가, 장난감 몇 개만 고른 채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괌을 떠나기 전날, 사지 못한 그 옷들이 눈에 밟혀서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다.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졸라 쇼핑센터에 다시 렸다. 다시 온 기회라서 그랬을까. 거기서 나는 예뻐 보이는 아기 옷이란 옷은 죄다 쇼핑카트에 담다. 사이즈도 제각각이고, 용도도 불분명 옷이었다. 딸을 낳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화려하고 풍성한 드레스들 쇼핑카트 수북이 채웠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새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은 그렇게 들뜨는 거였다. 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할지 모르니 뷔페식으로 준비하는 심정과 비슷다.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은 고스란히 버려지겠지만, 손님이 소중하다면 그 감수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원래 사랑은 어느 정도의 낭비를 전제로 하 거였다.



다행히 나는 딸을 낳 괌에서 사 온 들이 어느 정도는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쓸모가 없 것도 있었다. 신데렐라 무도회 정도는 가야 어울릴 듯한 드레스들이 그랬고, 에어컨 나오는 실내에서 입기에 선뜻 손이 안 가는 민소매 원피스들이 그랬다. 특별한 날 입혀봐야지, 무더운 날 입혀봐야지 하면서, 결국 한 번도 입혀보지도 못한 옷들이었다.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히면 충분히 다 입힐 줄 알았는데. '매일매일'이 이렇게 유한하고 턱없이 부족한 날들을 의미하고 있었음을 아기를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거센 태풍이 여름의 흔적을 휩쓸고 지나 날, 나는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여름이 시작될 때 아기에게 넉넉하게 잘 맞던 90 사이즈의 옷들 이젠 정리 대상이었다. 아기 무릎까지 오던 기장이 이젠 엉덩이를 겨우 덮을 정도로 깡총해진 원피스도, 입히면 몸에 찰싹 달라붙어 볼록한 배가 드러나고, 만세를 하면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티셔츠, 아무리 끌어올려도 엉덩이 중턱에 걸려있는 조그만 바지도 이제 녕이었다. 



75 사이즈도 헐겁던 신생아는 어느새 80 사이즈의 돌잡이가 되고, 90 사이즈 어린이집을 걸어 다니더니, 이젠 100 사이즈의 두 돌을 앞두게 됐다. 허물을 벗고 탈피하는 동물도 아닌데, 아기의 성장은 지극히 불연속적이었다. 매일 똑같은 듯하다가 어쩌다 보면 불쑥불쑥 자라다.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지 정말 그럴까 겁나서 말도 못 꺼냈는데, 누가 눈치챘는지 정말 그렇게 됐다. 



지금까지 숱한 이별을 겪었는데 또 이별이었다. 속싸개 한 아기와 헤어지고, 젖병과 노리개 젖꼭지를 물고 있던 아기와도, 아기띠에 매달려 있던 아기와도 작별해야 했다.  입지 못하는 옷이 늘어나는 만큼 이별의 횟수는 많아다. 하지만 새로운 해님이를 만나기 위해, 이전의 해님이와의 이별해야 했다. 



그렇게 아기의 지난 여름은 차곡차곡 접혀서 언제 다시 꺼낼지 모르는 상자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해 이 계절의 해님이는 다시 우리 집에 방문할 수 없는 손님이 되었 옷상자 뚜껑을 덮으며 꽃 같던 시간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다. 늘 피곤하다는 이유로, 행복한만큼 행복해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처음부터 홀연히 내게 나타난 영혼이자, 지금도 존재만으로도 신기하고 낯선 너란 존재를 매일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맞이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그리고 옆에서 외출용 원피스를 입고 잠든 아기를 바라다.  꿈나라도 외출이라고 잘 차려입고 다녀오려 듯,  치마천을 이불처럼 포근히 덮고 자고 있는 그녀가 참 고왔다. 한참을 바라봤다. 손님처럼 왔다간 아기의 여름을, 그 90 사이즈의 계절을 그냥 떠나보내기가 아쉬워서 보고 또 보고 그렇게 하염없이 봤다. 먼 훗날에는 바라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리움이 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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