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져야 할 낡은 단어
지인 중에 꿈이 현모양처라고 말했던 이가 몇 있었다. “참하게 생긴 것이 맏며느리감”이라고 칭찬하는 어르신과 그 얘기를 듣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현모양처 - 어진 어머니인 동시에 착한 아내라는 뜻으로, 기혼 여성에게 요구된 가부장제적인 태도
현모양처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낡은 단어가 확실하다. 흔히들 유교적 사상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조선시대에는 현모양처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나온 건 20세기 초반, 일본으로부터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내에서 남성 노동력 수요가 폭발하자, 이때부터 강도 높은 노동에 지쳐서 들어온 남편의 비위를 맞춰주고, 가정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 즉 ‘양모현처(良母賢妻)’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말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변형된 것이 현모양처다.
우리는 여자다움, 남자다움이라는 프레임에서 막 벗어나려고 하는 시기다. 그런 때야말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단어가 현모양처, 맏며느리감과 같이 여성의 행동거지를 규정하는 표현들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학부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학창시절 부모님께 알리는 편지나 공문은 늘 학부형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된 학부형(學父兄)은 학생의 보호자로서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의미만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학부형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학부형 -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으로, 학생의 보호자를 이르는 말
과거 역할의 차이로 만들어진 표현은 사실 굉장히 많다. 남성은 집안의 가장이자 외부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여성은 가사일을 중심적으로 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성 차이에 의한 역할의 구분이 없어졌음에도 표현은 여전히 남았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면 아빠다리와 같은 표현들이다. 아버지는 늘 가부좌 자세로 방에 앉아있을 수 있었기에 만들어진 표현이다. 과거에는 남성들만이 관직을 차지할 수 있었기에 양반다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안사람과 같은 표현도 오래전에 만들어진 표현이다. 가사 활동으로 인해 집 안에만 있는다고 하여 아내를 낮잡아 부르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과거에는 사회적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해본다면, 지금은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는 단어임을 인정해야 한다.
심지어 오래전부터 써왔던 표현 중에서는 의미를 알고 나면 무서운 단어들마저 있다. 미망인이 대표적인데, 국어사전에서는 미망인을 ‘남편(男便)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과부(寡婦)가 스스로를 겸손(謙遜)하며 일컫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죽어야 한다’는 대체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일까. 이토록 낡은 표현이 2020년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참 부끄럽고 슬프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