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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Apr 13. 2020

2020년 4월의 재즈

장르 인사이즈 #재즈

어느덧 이번 달 4월도 중순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치고 있지만 봄과 함께 4월은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와 유유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봄은 3월과 함께 우리 곁에 왔지만 4월은 좀 더 확연한 봄의 정취를 우리에게 늘 전해줍니다. 그래서 4월은 그 어느 달보다 아름다운 음악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올해는 조금 스산한 4월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을 더 듣고 싶습니다.


글ㅣ황덕호 (음악평론가, KBS클래식FM Jazz수첩 진행)


'April in Portugal'은 포르트갈의 작곡가 Raul Ferrão와 작사가 José Galhardo가 1947년에 쓴 곡으로 원래는 포르투갈의 도시 이름을 딴 'Coimbra'로 발표되었던 곡입니다. 파두 가수 Amalia Rodrigues의 대표곡이기도 했던 이 곡은 Jimmy Kennedy의 영어 가사가 등장하면서 1950년대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Louis Armstrong의 1953년 녹음은 그 무렵에 등장한 유일한 재즈버전이었습니다.

Vernon Duke가 작곡하고 Yip Harburg가 1933년에 작곡한 'April in Paris'는 대표적인 4월의 노래일 것입니다. 특히 Count Basie Orchestra의 빅밴드 연주는 이 곡의 이정표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 녹음에서 멋진 트럼펫 솔로를 들려줬던 Thad Jones는 1년 뒤 5중주 편성의 밴드로 부드럽고 우아한 자신만의 버전을 탄생시켰습니다.


작곡가이자 편곡가인 Paul Weston이 1950년에 곡을 만들어 그 해에 Jo Stafford가 불렀던 'When April Comes Again'은 쓸쓸한 낭만이 느껴지는 뛰어난 곡입니다. 곡이 탄생한 지 7년 뒤 '벨벳 포그' Mel Torme는 안개같이 자욱한 목소리로 Marty Paich의 편곡과 함께 이 노래를 불렀고 Stafford 이후의 가장 인상적인 노래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Louis Armstrong & His Orchestra - April In Portugal

Thad Jones - April In Paris

Mel Torme - When April Comes Again


하지만 4월은 늘 화사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봄을 맞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가슴 설레는 것만이 아니라 겨우 내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일깨우고 진정한 존엄과 자유를 맞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4월은 유독 역사의 희망과 상처가 교차했던 달이기도 했습니다. 1919년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60년 4월 19일 혁명이 있었는가 하면, 제주의 비극과 세월호의 아픔이 영원히 남아있는 달이 4월입니다.


그래서 4월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 음악에는 슬픔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4월이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트럼펫 주자 Paolo Fresu와 스웨덴의 베이스 주자 Lars Danielsson이 함께 연주한 'April in Dardegna'가 정확히 어디의 4월을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곡을 쓴 Fresu의 나라 이탈리아의 서쪽에 있는 섬 사르데냐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만 그저 추측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미지의 장소가 갖고 있는 황량한 4월의 풍경은 우리의 마음에 깊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어쩌면 4월의 아픔은 단지 우리의 것만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1916년 아일랜드의 '부활절 봉기'가 있었고 영국의 시인 Thomas E. Eliot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으며 같은 나라의 록 밴드 Deep Purple도 명곡 'April'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Pat Metheny Group의 데뷔 앨범에 실린 'April Wind'와 'April Joy'의 접속곡은 우리의 4월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면서도 이런 것이야 말로 4월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아직 차갑고 쓸쓸한 '4월의 바람' 뒤에 꺾이지 않는 희망처럼 일어나는 '4월의 기쁨'은, 그래서 4월이 되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젊은 시절 Pat Metheny의 걸작입니다. 


Lars Danielsson & Paolo Fresu - April in Dardegna

Pat Metheny Unity Group - Aprilwind

Pat Metheny Unity Group - April Joy


올 봄에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의 확산은 많은 희생을 낳았습니다. 재즈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3월에 색소포니스트 Manu Dibango, 피아니스트 Mike Longo가 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4월이 시작되던 첫날, 기타리스트 Bucky Pizzarelli(1926~2020)와 피아니스트 Ellis Marsalis(1934~2020)가 같은 날에 역시 코로나19로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Pizzarelli와 Marsalis는 오랜 활동 속에서 재즈의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지만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연주의 명인들이었고 동시에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스승이었으며 동시에 그의 자녀들을 일급의 재즈 음악인들로 키워낸 아버지였습니다. Buck Pizzarelli는 명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John('Two Funky People'에서 함께 연주), 베이시스트인 Martin을 키웠고, Ellis Marsalis는 색소포니스트 Branford('Mozartin''에서 함께 연주), 트럼펫 주자 Wynton, 트롬본 주자 Delfeayo, 드러머이자 바이브라폰 주자인 Jason을 재즈의 중심인물들로 성장시켰습니다.

동시에 두 사람은 연주에 있어서도 비슷한 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반주에 있어서 탁월한 감각과 철학을 갖고 있었는데 앞에 나서는 독주자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우아하고 정교한 반주로 음악의 질을 한층 높이는 그들의 연주는 보통의 연주자들이 쉽게 간과하는 "반주의 예술"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2세들을 통해 재즈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이 갖고 있던 소중한 음악적 유산도 함께 계승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Bucky Pizzarelli - April Kisses

Bucky Pizzarelli & John Pizzarelli - Two Funky People

Ellis Marsalis - Mozartin'

Ellis Marsalis - When We First Met


상품화된 음악, 곧 대중음악이 20세기 이후 세상을 지배했지만 그럼에도 요즘과 같은 재난의 시기에 사람들을 가장 위로해 주는 음악은 역시 민요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래 전에 이름 모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민요가 오늘날까지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은 그 노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금까지 위로해 줬는가를 말해주는데, 그러한 노래들은 어느새 까다로운 재즈 음악인의 귀마저 사로잡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스웨덴의 민요 'Dear Old Stockholm'도 바로 그런 경우로 'Ack Värmeland, du sköna'(오, 사랑스런 바르메랑)가 원제인 이 곡은 '50년대 들어 Miles Davis와 당시 그의 밴드 멤버였던 John Coltrane, Paul Chambers 등이 각각 녹음으로 남김으로써 재즈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명곡입니다. 하지만 이 곡을 최초로 연주한 재즈 음악인은 Stan Getz로, 1951년 그가 북유럽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남긴 녹음은 이 곡을 즉각 재즈 스탠더드 넘버로 남길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곡 때문이었는지, 마치 운명처럼 Stan Getz는 1950년대 중반부터 북유럽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1959년 그곳의 연주자들과 함께 실황으로 다시 한 번 'Dear Old Stockholm'을 녹음으로 남겼습니다.

영국의 작곡가 Frederick Weatherly가 1913년에 발표했지만 원래 아일랜드의 민요 'Londonderry Air'를 바탕으로 만든 'Danny Boy'는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민요 중 하나일 겁니다. 우리도 "아, 목동아"란 우리말 가사로 오래 전부터 불러왔던 이 노래는 멀리 떠나는 아들에게 보내는 어머니(혹은 아버지)의 마음을 담고 있어서 늘 깊은 감동을 주는 명곡입니다.


1939년 Glenn Miller Orchestra가 이 곡을 처음으로 음반에 담아 발표한 무렵부터 이 곡은 수많은 연주자들에 의해 녹음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1957년에 녹음되어 약 40년 만에 음반으로 등장한 Jimmy Smith의 오르간 연주는 자칫 유실될 뻔했던 이 녹음이 주는 깊은 감동을 값지게 전달해 줍니다.

재즈계 베이스의 명인 Oscar Pettiford, 트롬본의 기인 Roswell Rudd도 녹음한 바 있는 우리의 '아리랑' 역시 역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준 명곡입니다. 색소포니스트 신명섭의 연주는 한국인이 아니면 표현해 낼 수 없는 곡의 깊은 서정과 재즈의 과감한 화성적 도전, 분방한 즉흥연주를 결합시켜 '아리랑'의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들려줬습니다. 


Stan Getz - Ack Varmeland du Skona (Aka `Dear Old Stockholm)

Jimmy Smith - Danny Boy

신명섭 그룹 - Arirang


아름답지만,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4월입니다. 그래서 음악 두 곡을 더 골라봤습니다. 하나는 1965년 Burt Barcharach가 곡을 쓰고 Hal David가 가사를 붙여 Jackie DeShannon이 불러 히트곡이 된 'What the World Needs Now'입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이란 메시지를 담은 이 곡 역시 여러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인데 1966년 색소포니스트 Stanley Turrentine의 연주는 우아한 왈츠 리듬 위에서 펼쳐 낸 즉흥연주가 일품입니다.

원래는 목회자 Charles Albert Tindley가 1900년에 발표했던 가스펠 송이었던 'We Shall Overcome'은 1945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있었던 노동자들의 파업 때 노동자들에 의해 불리면서 이후 대표적인 저항가요가 되었습니다. 베이스 연주자 Charlie Haden이 이끌던 빅밴드 The Liberation Music Orchestra는 1989년 몬트리얼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이 곡을 무려 20분 동안 연주했는데, 연주 내내 그들이 잃지 않는 유머와 재치는 어려울 때일수록 웃음을 잃지 않고 힘을 내는 보통 사람들의 낙관주의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힘겨운 4월이지만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웃음과 흥을 목숨처럼 지키는 이 음악처럼 말입니다.


Stanley Turrentine -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Charlie Haden - We Shall Over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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