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언 [Guilt-Free](2012)
기묘한 놀이터에 오신 걸 환영한다. 단, 입장 제한이 있음을 숙지해주기 바란다. 천상 긍정적인 영혼의 소유자 혹은 톱 100 외의 음악만 접했다 하면 소화불량이 오는 분, 알아서 발길 돌려주면 고맙겠다. 물론 대환영인 경우도 있다. 자신의 영혼이 골절되었다고 생각하는 분, 잘 찾아왔다. 여기가 바로 당신을 위해 이이언이 설계한 놀이터다. 심지어 이 놀이터에는 간판도 걸려 있다. [Guilt-Free]다. 이름처럼 적어도 이곳에서는 죄책감 따위 훌훌 던져버리고 마음껏 쉬다 갔으면 한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외로움이다. 아니다. 수식을 하나 붙여야 한다.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외로움이다. 흠, 조금 개선된 것 같지만 그래도 뭔가 충분치가 못하다.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 우리는 그동안 외로움이라는 단어의 황사에 숨 막혔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외로움을 목 놓아 부르짖는 통곡과도 같은 노래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것을 일단 처연한 고독이라고 부르자.
한데 그의 고독은 마치 우물처럼 고여있다. 고개를 숙여 그것을 들여다본다. 깊고, 어두운 고독이다. 저 밑의 서늘한 기운이 지상까지 와서 닿는 고독이다.
기억하건대 이이언이 몸담았던 2인조 그룹 못의 등장은 하나의 현상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들이 밝혔듯 "관습적인 것과 실험적인 것 사이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집어낸" 그들의 음악 덕이 컸다. 무엇보다 못은 섬세하게 직조된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를 독창적으로 융합하는데 능했다. 그들이 뽑아낸 기계적인 비트와 샘플링, 변박의 적극적 활용 같은 시도가 그저 차가운 계산으로만 읽히지 않았던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프로그래밍이라는 비인간적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다루는 주체는 결국 인간임을 환기하는 음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공개된 솔로 1집 [Guilt-Free]에서도 그의 재능은 탁월하고, 독보적이다. 자, 이상한 것으로부터 아름다운 것을 가려내고, 아름다운 것에서 이상한 것을 읽어내는 그의 창조적인 괴벽을 들어보라. 게다가 기저를 흐르는 집요한 완벽주의는 작품의 본진(本陣)을 튼튼한 만듦새로 길어 올린다.
음악적인 부분에 관한 한 이이언은 고집스럽게도 장인적이다. 하긴, 아티스트가 뮤즈에게 바치는 세금은 결국 시간인 것이리라.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를 얻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게 분명하다. 그런 각고의 시간은 이를 테면 그가 쳐놓은 배수진(背水陣)이다.
이 배수진의 바로 앞에 선 채 그의 머리는 더 냉정하게 사유하고, 그의 몸은 더 뜨겁게 앓는다. 그리고 머리에서 몸까지의 이 거리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이이언 음악의 합선(合線)은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킨다. 'Bulletproof'를 시작으로 '너는 자고'를 거쳐 'SCLC'에 이르는 초반부의 압도적인 성취만 감상해봐도 이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음반에는 두 곡의 커버가 수록되어 있다. 지금은 해체하고 없는 짜르(Czars)의 'Drug'와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이 바로 그것이다. 짜르의 경우야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다고는 해도 싱글로 먼저 공개된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은 겉으로 보기에 공유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나, 가사와 더불어 음악을 감상해보라. 그가 왜 이 곡을 선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슬픈 마네킹'이 이토록 슬픈 가사를 갖고 있는 노래인지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 이후 그는 [Realize] EP에서 재즈적인 접근법으로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를 과감하게 해체하기도 했다. 과연, 그의 매직 터치 앞에서 장르의 경계 따위를 긋는 행위는 그저 별무소용일 뿐이다.
'Bulletproof'에서 이이언은 생(生)의 상처를 견뎌낼 수 있는 영혼을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꿈꾼다. '너는 자고'에서는 다가갈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끝끝내 삭인다. 'SCLC'는 그렇다면 어떤가. 이것은 영락없이 소통을 갈망하는 영혼 불구자의 노래다. 나는 그가 뮤지션이 되지 않았다면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 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영혼이 무너진 사람의 모든 구석과 틈을 들여다본다.
이렇듯 인간이라는 존재가 홑겹이 아닌 여러 겹의 모순으로 이뤄진 생물임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 이런 유의 사람을 우리는 보통 예술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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