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 그리고 김현철](2002)
장담할 수 있다. 누군가 김현철 팬임을 자부하면서 대화 내내 1집과 2집, 그도 아니면 '달의 몰락'이 수록된 3집만 주야장천 칭송한다면 그에 대한 음악적인 신뢰, 조금은 낮춰 잡길 바란다. 솔직히 나는 김현철의 찐팬은 아니다. 김현철보다는 윤상이 좋았고, 윤상보다는 신해철이 좋았다. 물론 술 잘 사는 학교 선배로서의 김현철은 매우 애정한다. 잠시 샛길로 샜는데 핵심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김현철에게는 총 3장의 명반이 있다. 1집과 2집, 그리고 지금 쓰려는 8집이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비평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뭐, 1집이 준 충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다. 2집 역시 1집의 발전적 계승이었다는 측면에서 찬사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그 어떤 리스트를 봐도 관성에 발목 잡힌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열에 아홉은 1집 아니면 2집이다. 자, 이제 8집을 각 잡고 들어야 할 때다. 정주행 딱 1번만 하면 이 음반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일단 사운드가 끝내준다. 이 음반을 쓰기 위해 김현철의 주요작들을 되풀이해 감상했는데 소리 완성도로만 따진다면 8집이 무조건 1위다. 참여한 동료와의 앙상블도 빼어나다. 김현철 자신의 존재감을 희석하지 않는 선에서 인상적인 결과물을 여럿 길어냈다. 앨범 타이틀이 […그리고 김현철]인 이유다.
정말이지 이 음반 흠 하나 잡기조차 어렵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능력으로 온전하게 전이된 케이스라고 할까. 수려하면서도 테크닉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이고, 그 와중에 임팩트를 정확하게 짚어낼 줄 안다. 이것은 쉽사리 연료가 고갈되지 않는 앨범이다. 당신이 만약 열린 마음으로 텍스트를 읽으려는 해석자라면 […그리고 김현철]은 반복 청취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줄 것이다.
무엇보다 다채롭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여러 동료, 후배의 음악적인 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거듭 고민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 비단 작곡가만이 아닌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프로듀서는 이를 테면 조타수다. 음반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최종권자다. As One, 박효신, 윤상, 롤러코스터, 불독맨션, 봄여름가을겨울, 김광진 등의 이름을 쭉 훑어보라. 쌍으로 묶일 수 있는 뮤지션이라고는 없다. 다 제 각각이다. 김현철은 이걸 한 장의 앨범 안에 흡수 통합했다. 근사한 톤으로 통일성을 부여했다. 다시 한번, 음반 제목이 […그리고 김현철]인 이유다.
곡을 꼽는다는 게 실례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봄이 와'의 존재감을 빠트릴 수는 없다. 보사노바에 특히 강한 롤러코스터의 개성을 산들거리는 리듬 터치로 거의 완벽하게 잡아냈다. 곡의 빈 공간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채워주는 기타는 당연히 밴드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이상순의 터치다. 김현철의 편곡 솜씨는 여기에 감미로운 기운을 더한다. 계절의 공기를 음악으로 전이했다는 측면에서 이보다 더 빼어난 성취를 일궈낸 트랙, 몇 없을 것이다.
'사랑하오'는 어떤가. 덤덤한 만큼 솔직하고, 솔직한 만큼 여운이 길게 남는 곡이다. 무엇보다 편곡에 있어 재주를 부리지 않았다. 하수는 더하고 고수는 뺀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 그렇다. 이 곡과 더불어 김광진이 참여한 'You Know Why' 등이 대표적이다. 1, 2집과 8집 사이의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이것이다. 더하기가 아닌 뺄셈의 묘를 추구했다는 것. 괜히 눈 부릅뜨고 멋 부리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김현철]은 마치 지극한 눈으로 음악을 응시하는 듯한 앨범이다. 그가 거장의 길목에 들어서면서 잠근 첫 단추다.
음반의 베스트는 맨 마지막에 위치해 있다. 'Caribbean Cruise'. 퓨전 재즈의 끝판왕 같은 곡이다. 경이로운 사운드와 깔끔하면서도 핵심을 타격할 줄 아는 연주. 봄여름가을겨울이 참여한 만큼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어느새 20살에 데뷔한 한 청년이 그의 선배와 같은 키로 성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음반의 간판이 […그리고 김현철]로 써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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