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MU(악동뮤지션)[항해](2019)
"성숙"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다. 너무 뻔하고, 게으른 묘사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나는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가 기본적으로 "인상 비평"의 한계를 뛰어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쪽이다. 아마추어의 글에서 특히 형용사가 잦고,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단어가 자주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음반 앞에서 나는 "성숙"이라는 단어를 빌려올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적확한 선택지를 발굴하지 못해서다. 악동뮤지션의 [항해]는 이 남매 듀오의 음악적인 깊이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했음을 증거한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그래. 맞다. 2019년 9월에 발매된 음반이다. 갇띵반의 조건 중 하나라 할 "시간의 시험"을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 인정한다. 하나, 뮤지션의 커리어로 사고 영역을 확장해보면 어떨까.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악동뮤지션은 앞으로도 음악을 할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그들의 디스코그라피 중 단 한 장을 꼽아야 할 순간이 온다. 모르겠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 남매가 [항해]를 훌쩍 뛰어넘는 음악을 다발로 엮어 발표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만큼 [항해]에는 좋은 음악이 가득하다. 모든 게 너무 빨리 진행되어 역사로 남을 겨를조차 없는 세상, 그럼에도 이 음반은 위대한 예외로 인정받아 후대에도 기억될 것이다.
서정미로 충만한 '뱃노래'로 앨범은 부드럽게 문을 연다. 이 곡만으로도 우리는 달라진 악동뮤지션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글쎄. 추측이지만 그들이 이름을 "악뮤"로 바꾼 것도 이와 연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두고 악동이라 부르는 건 아무래도 영 어색하기 때문이다. 동심과 장난기로 가득했던 분위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거기에 풍성하고, 다채로운 음악의 결이 스며들었다. '뱃노래'에 이어지는 '물 만난 물고기', 첫 싱글로 공개되어 사랑받은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가 연이어 이를 증명한다.
서늘하고, 쓸쓸하면서도 곡이 쥐고 있는 감정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다. 목놓아 울지 않는다. 끝내 울음을 삼키고, 정자세로 앉아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게 노래한다. 이런 지향이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의 요체임에 분명하다. 아니, 앨범 전체로 놓고 봐도 동일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달'에서는 전에 없이 예민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려주고, 음반의 2막을 알리는 'Freedom'은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하는 구성을 통해 가사의 주제와 소리를 요철처럼 들어맞게 연출한다. 뭐로 보나 보통내기의 음악이 아니다.
장르적으로도 [항해]는 칭찬할 구석이 여럿이다. 포크, 발라드, 모던 록 등, 낯설지 않은 장르를 따분하지 않은, 더 나아가 신선한 표현으로 길어내는 능력은 어쩌면 타고난 재능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하긴, 그렇다. 진정한 놀라움은 내가 몰랐던 걸 알게 되었을 때 찾아오는 게 아니다. 잘 안다고, 익숙한 거라고 믿었던 걸 기실 내가 잘 모르고 있었다는 깨달음 속에 찾아온다.
[항해]에서 이 재능은 정점을 찍는다. 록과의 연계를 시도한 '더 사랑해줄걸'에서는 탁월한 완급 조절로 록의 고루함을 벗어던지고, '고래'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의 어쿠스틱과 클랩 비트로 '최신의 바이브'를 일궈낸다. 정말이지 '고래' 듣고는 깜짝 놀라 감탄사를 내뱉으며 주저앉을 뻔했다. 솔직한 독후감이다.
노랫말을 언급해야 할 차례다. 자, '달'에서의 다음 문장은 어떤가.
"자막 없이 밤하늘 보고, 번역 없는 바람 소릴 듣지"
그런가 하면 이런 가사도 있다. '뱃노래'의 일부다.
"몇 고개의 파도를 넘어야 하나/소금기 머금은 바람/입술 겉을 적신다/난 손발이 모두 묶여도/자유하는 법을 알아"
음반은 과거의 포크 감수성을 재현한 '작별 인사'와 모던 록풍의 '시간을 갖자'로 마무리된다. 악뮤는 이 곡들에서도 (잠시의) 안녕을 노래하되 글썽이지 않는다. 차라리 처연하고, 담담하다. 기묘한 직관성으로 첫 청취에 듣는 이를 사로잡을 줄 알면서도 쉬이 질리지 않게 한다. 과연, 이 앨범에는 가끔씩 나오는 오버파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단지 깊이만은 아니다. 뮤지션으로서 악뮤는 두루 살피는 동시에 멀리 볼 줄 안다. 시야는 넓어지고, 시선의 사정거리는 길어졌다. [항해]라는 제목을 붙일 자격 있다.
악동뮤지션 [항해](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