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시반 [Blue Neighbourhood] (2016)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때는 2016년, 장소는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이었다. 막 떠오르고 있던 스타 뮤지션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경솔했다. 그것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빈 구석이 보이질 않았다. 끼어들어 앞으로 전전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내가 지금 뭔가를 놓치고 있구나."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아티스트의 정체는 당연히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이었다. 이후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공연을 생애 최고의 경험으로 꼽기까지 했다. 자, 이 지점에서 빌보드 "싱글" 차트를 한번 보자. 최고 순위라고 해 봤자 'Youth'가 기록한 23위다. 한데 분위기로만 보자면 히트곡을 최소 10개 정도는 낸 거 같다.
물론 앨범 차트에서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1집이 6위, 2집이 3위다. 하나, 히트의 척도라 할 빌보드 핫 100 성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드라지는 지점이 없다. 그럼에도, 다음 팩트를 부인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트로이 시반이 현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원래는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가수였다. 이게 대박이 나면서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해 슈퍼스타가 됐다. 현재까지 2장의 음반을 공개했는데 둘 모두 수작이다. 따라서 1집을 꼽은 이유는 오직 하나다.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트로이 시반의 모든 곡들 중 2집에 있는 'My My My!'를 가장 사랑한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차트 영향력 감소"와 "거대 음반사의 몰락"이 결정적이다. 한데 이 두 현상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한 요인이 하나 있다. 바로 트로이 시반이 뿌리를 뒀던 유튜브의 급성장이다. 이제 음악 팬들은 더 이상 차트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비록 차트 상위권에 있지 않아도 "내 뮤지션"이라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
이런 케이스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혼네(Honne)나 라우브(Lauv)가 빌보드나 영국 싱글 차트에서 날아다니는 거 본 적 있나?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다. 아니, 없어도 무관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음반 내면 전 세계 투어 다니면서 팬들과 직접 마주할 베이스를 충분히 마련한 까닭이다. 이렇듯 빌보드, 즉 미국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장의 질서를 혁파했다는 점이 바로 유튜브 이후 음악 세계의 특이점이다. 즉, 빌보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팬 층을 "글로벌 단위"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뮤지션은 더 이상 음반사를 전전하면서 데뷔하기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유튜브를 통해 주목을 받으면 음반사가 알아서 먼저 찾아온다. 이를테면 과거 거대 음반사가 했던 게이트 키핑 역할을 유튜브 생태계, 적시하자면 유튜브에 기거하는 대중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유튜브 시절부터 트로이 시반을 응원한 팬이라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당신이 그의 데뷔와 성공을 위한 지렛대를 놓아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다시 한번, 내 뮤지션이라는 감각이 중요한 이유다.
정말이지 세련됐다. 3분, 길어봤자 4분 안에 곡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기승전결이 뚜렷한 양식보다는 듣는 이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데 주력한다. 따라서 공간감을 다루는 재능은 선택 아닌 필수다. 트로이 시반이 가장 잘하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소리의 외연을 기가 막히게 확장할 줄 안다. 곡마다 일궈낸 울림의 크기가 깊고, 넓다. 'WILD', 'BITE', 'FOOLS' 같은 곡들이 대표적으로 증명한다. 주지하다시피, 유튜브 세대 음악가의 대부분이 1인 프로듀스 능력을 극대화했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 선두에 서 있는 뮤지션이 바로 트로이 시반이다.
타격감도 끝내준다. 서서히 몰고 가다가 터지는 'YOUTH'의 후렴구는 앨범 전체를 통틀어서도 압권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그는 최첨단을 달리는 대중음악계의 인상파다. 그 와중에 멜로디도 참 잘 쓴다. 뭐랄까. 격렬하게 운동하면서 고저를 화려하게 오르내리는 스타일은 과거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의 선율이 그려내는 그래프를 감상해보면 낙차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잔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곡들을 포함해 서정적인 결이 돋보이는 'TALK ME DOWN', 우울하고, 처연한 멜로디를 지닌 'BLUE' 등을 들어보라.
가디언지는 이 앨범을 평하면서 다음처럼 결론지었다. "결점을 찾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지금'의 사운드를 정말 잘 잡아냈다." 과연 그렇다. 대중음악의 시제는 언제나 지금이어야 마땅하다. 비틀스(The Beatles)의 링고 스타(Ringo Starr)가 비틀스라는 밴드를 소개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듯이.
"지금, 바로 여기에(Be Here Now)"
이후 오아시스(Oasis)가 아예 앨범 타이틀로 내건 바로 그 명언이다.
Troye Sivan [Blue Neighbourhood] (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