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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May 11. 2020

10년 만의 피치포크 만점, Fiona Apple 신보

장르 인사이드 #POP

힙스터들의 음악매거진, 피치포크에서 올해 Fiona Apple의 신보 [Fetch the Bolt Cutters]에 만점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이 팝 팬들 사이에서 계속 회자되는 이유는, 피치포크미디어가 설립된 1995년 이후 과거 앨범이 아닌 정식 발매와 함께 만점을 받은 케이스가 딱 열 두 장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로 희소한 거냐 하면, 그보다 앞서 만점을 받았던 가장 최근의 앨범이 Kanye West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입니다. 무려 2010년의 앨범이지요.


말하자면 그렇게나 까탈스런 피치포크에서, Fiona Apple의 이 앨범에 대해 10년 만에 한 번 나오는 수준의 "올타임 레전더리 명반"급 대우를 해주고 있다는 말인데요. 뿐만 아니라 가디언지와 텔레그래프지 등, 다른 매체에서도 앞다투어 만점을 부여하며 메타크리틱 평균점을 100점을 찍었습니다.

참고로 피치포크는 미국의 인디록 중심 음악지, 가디언은 영국의 진보성향 일간지이며, 텔레그래프는 영국의 보수성향 일간지입니다. 평균점이 100이라는 말은 지향하는 바가 각자 다른 모든 미디어에서 절대적인 호평만을 던졌으며, 중간 평가나 혹평이 아예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음악에 대한 평가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고, 관점에 따라 호평도, 혹평도 가능한 것이 당연한 "가치판단"의 영역에도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분명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Fiona Apple의 신보는 왜 이렇게 매체들의 일관된 찬사를 받고 있는 걸까요? 그냥 "음악이 좋아서"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앨범이 가지는 함의가 너무나 방대합니다. 숲 전체를 보기에는 턱없이 부적하지만, 그래도 나무 몇 개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여기서는 각 매체들이 호평한 메인 코멘터리들을 몇몇 소개해 봅니다.

피치포크: "Fiona Apple의 다섯 번째 정규작은 자유롭고 야성적인 일상의 교향곡이자, 고집스런 명작이다. 여태 들었던 어떤 음악도 이 앨범처럼 들리지 않았다."


가디언: "이 느긋한 예술가의 8년 만의 스튜디오 앨범은 놀랍고 친밀하며 침묵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텔레그래프: "'미투' 시대('MeToo' Era)를 위한 걸작. (중략) 이것은 한 여성의 분노와 약점, 혼란과 지혜를 우리가 들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앨범이다.

 올뮤직: "현재 42세의 작곡가는 여전히 광기의 내면을 샅샅이 뒤지고 있으며, 그에게 잘못한 파트너, 혐오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Fetch the Bolt Cutters]를 전작들과 차별화시키는 것은 처음으로 저울이 고통보다는 회복을 향해 기울어졌다는 점이다."

어떻게 읽으셨나요? 앨범이 어떤 성격인지 감이 잡히시나요?


우선 이 앨범은 녹음에 쓰인 사운드 소스들이 범상치 않습니다. 피치포크에서는 "일상의 교향곡"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실제 이 앨범에는 Fiona Apple의 노래는 물론 속삭임과 괴성, 박수소리와 뭔지 모를 부스럭대는 생활잡음, 투박한 퍼커션 소리에 더해 벽을 쿵쿵대는 소리와 반려견들의 짖는 소리까지 녹음되어 있죠. 이런 소스들의 활용은 방법적인 측면에서 우연성과 독창성을 부여합니다. 말하자면, 그는 일상의 소리들을 활용해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가디언지의 코멘트 "침묵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텔레그래프지가 말한 "미투 시대를 위한 걸작"이라는 의미에도 집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지금보다도 훨씬 보수적이던 1990년대에 이미 음악을 통해 과거의 강간피해와 그로 인한 정신질환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When The Pawn]의 감상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2020년, Fiona Apple은 "좋은 아침! 좋은 아침! 넌 네 딸이 태어난 침대에서 날 강간했어"라며 ('For Her') 또 한 번 서슬퍼런 한 방을 먹이고 있습니다. 이 곡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코러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넌 알아야 해, 하지만 넌 몰라, 네가 뭘 했는지. (Like you know, you should know, but you don't know what you did)" 이는 자신의 과거뿐 아니라 지금의 사회적 문제와도 직결되는 메시지이죠.

끔찍한 범죄를 음악으로 다루다니,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주제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언급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Under The Table'은 "테이블 밑에서 원하는 대로 나를 차봐 / 난 입 다물지 않을 거야"라며 혐오에 당당히 맞설 의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침묵을 거부하지 않는 앨범"이라는 말은 분명 이런 부분에서 도출된 수식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올뮤직이 포인트로 짚은 "회복", 이는 이런 복잡하고 문제적인 이야기들을 노래하면서도 그가 (여전히 혼란스럽긴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있으며, 노래에 유머 또한 섞여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파괴에 가깝던 이전 음악들과는 결이 다른, 조금은 더 밝아진 방향인 것이죠.


트랙 중 'Shameika'에서는 친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던 친구가 따돌림을 받던 자신에게 "넌 잠재력이 있어"라고 말했다는 것을 노래하는데요. 이 파트가 끝난 직후부터는 내면의 웃음소리를 표현한 듯한 기묘한 소리들을 냅니다. 이는 듣기에 따라 철부지가 느끼는 순수한 기쁨으로도, "네가 뭘 알고 그렇게 말하지?"라는 식의 조소로도 들리죠. Fiona Apple 식의 독기 서린 유머입니다.

위의 언급들로만 종합해서 본다면, 이번 앨범이 언론으로부터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시대적 문제제기와 흐름에 이 앨범이 놓여있다는 "동시대성", 아티스트적인 뚝심, 독창적인 작사능력과 센스, 그리고 녹음 프로덕션과 같은 기술적 측면의 완성도 등이 모두 한 데 합쳐진 결과로 보입니다. 종합적인 영역에서 호평이 가능하니, 앨범에 대한 평가가 수직 상승할 수밖에요.


물론 이것은 미디어의 찬사를 몇몇 단 일부만 인용하며 이 앨범의 단면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한 글일 뿐, 역시 음악은 직접 듣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티스트의 자아가 뚜렷이 반영되어 있고, 그를 전달하는 방법도 탁월하며,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인 문제제기까지 던지는 "올해의 앨범"이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브제 하나 하나를 신경 쓰며 보는 예술영화처럼 앨범을 접한다면, 좀 더 넓은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Fiona Apple [Fetch the Bolt Cu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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