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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May 18. 2020

세상을 떠난 로큰롤의 전설 Little Richard

장르 인사이드 #POP

로큰롤 시대의 전설적 존재인 Little Richard가 현지 시각으로 5월 9일, 골수암 투병 끝에 8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마 해외 매체를 통해 팝 소식을 듣는 발 빠른 분들은 어느 매체나 Little Richard의 이야기가 대서특필되다시피 해서 알고 있던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이번 글은 Little Richard의 존재가 낯선 분들을 위해 작성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몇몇 이름들이 있습니다. Little Richard 역시 그런 거대한 이름들 중 한 명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가 대중음악계의 일대 사건이자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1950년대 "로큰롤의 태동" 시기를 주도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중반 있었던 "로큰롤의 태동"은 대중음악계의, 더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산업 계의 엄청난 변화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넷플릭스"가 있고 "동물의 숲"이 있지만, 1950년대는 많은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음악 외에는 달리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1950년대는 "음악"만이 유일한 일상의 해방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당시, 로큰롤이 태동하기 전의 1950년대 초반에는 10대를 위한 음악이 전무했습니다. 1940년대에 주류를 이룬 스윙재즈 밴드들의 연주 영상을 보면 당시 음악을 향유하는 계층이 기성세대였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요. 분명 흥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정장 차림이었으며, 딱딱했습니다. 음악과 곁들여진 조크는 있었지만 가벼운 욕설도 없었고, 자극적인 요소도 찾아볼 수 없었죠.

"로큰롤"은 이런 기성세대의 문화, 곧 "음악"을 어른들의 손에서 10대의 손으로 옮겨왔습니다. 정장을 입고 점잖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를 흔들고 뛰어다니며 연주하고, 소리지르면서 노래하는 자유로운 음악적 문법이 바로 이 때부터 가능했던 것이죠. 1950년대가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기점으로 인식되는 이유입니다.

Little Richard는 바로 이 전환의 흐름을 주도한 아티스트 중 한 명입니다. 다른 아티스트로는 맨 처음 "록"이라는 말을 쓴 Bill Haley부터 Chuck Berry와 Jerry Lee Lewis와 같은 다른 초기 로큰롤의 설계자들, 그리고 곧이어 이런 각축전을 제패하며 끝판왕으로 등장하는 Elvis Presley를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언급할 만한 사실은, Little Richard는 이 당시부터 이미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사실이며, 자주적으로 도발적인 무대를 꾸몄던 "내추럴 본" 쇼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950년대 당시의 영상을 보면 쇼맨십의 정도가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파격입니다. 2020년 현재의 국내 심의에서도 저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성적인 은유도 상당하죠.

대표곡인 'Tutti Frutti'는 아마도 이후 활동한 록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곡일 겁니다. 드럼라인을 구음으로 표현한 "A-wop-bop-a-loo-bop-a-wop-bam-boom!"이라는 도입부부터 특징적이며, 원초적으로 내지르는 보컬과 외설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가사까지, 초기 로큰롤의 완벽한 예시와도 같은 곡이죠. 참고로 이 곡이 다듬어지기 전의 가사는 "Tutti Frutti, Oh Rutti"가 아니라 "Tutti Frutti, Good Booty"(...) 였다고 하네요.

 

Little Richard - Tutti Frutti


잠시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볼까요?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흑인들이 노동요처럼 부른 노래가 있었습니다. 바로 원형의 "블루스"입니다. 이것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전자적인 소리가 덧대어지며 소리가 강해지고, 리듬이 빨라지며 차츰 "리듬 앤 블루스"라는 형태로 변형되었고, 백인의 전유물이던 로커빌리의 요소까지 차용되며 발전한 스타일을 "로큰롤"로 보는 것이 1950년대 대중음악 흐름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 일련이 흐름에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Little Richard 같은 인물인 것이죠.

대중음악의 파이오니어와도 같은 존재였지만, 세기의 기인답게 그는 1957년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교회 목사로 전향합니다. 이후 음악과 교회를 오가며 커리어를 왔다 갔다 하지만, 대중음악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 받고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한 세기가 또 흐른다 해도, 그의 이름은 계속해서 언급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후대의 전설인 Elton John은 그의 사망 후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습니다. "음악적으로나, 보컬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10대 시절에 그를 보며 자란 것은 내 인생 가장 흥미진진한 사건이었다. 내 모든 땀구멍에서 소름과 전기가, 그리고 기쁨이 솟아올랐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음악적 영감만큼은 영원히 남아 후대를 계속해서 자극할 겁니다. 지면을 빌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Little Richard [Here`s Little Richard (Remastered & Expa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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