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명성 뒤의 그림자를 노래하다

Taylor Swift [Reputation](2017)

by Melon

전례 없이 쿨하다. 날이 잔뜩 서 있지만 깔끔한 프로덕션으로 이걸 근사하게 마감한 앨범이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커리어를 조감해보면 거기에는 공통된 흐름이 있(었)다고 본다. 한데 이 흐름과 동떨어졌음에도 변함없이 거대한 히트를 기록하고, 찬사를 획득한 음반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이 앨범 [Reputation]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말을 먼저 들어본다.


"[Reputation]은 내 생각에 어찌 되었건 무조건 냈을 것 같은 음반이에요. 뭐랄까. 카타르시스를 욕망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Reputation]에는 기묘한 방어기제가 존재해요. 이런 방식으로 작업해본 적은 단연코 없었죠.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그래, 좋아. 너희들이 말하는 테일러 스위프트 있잖아. 이번에는 그 캐릭터를 갖고 음악을 만들어볼게."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진 출처ㅣ@TaylorSwift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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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 '…Ready For It?'부터 도전적인 뉘앙스가 확 풍긴다. 뭐랄까. 이전까지 그를 상징했던 "미스 아메리카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러니까, '…Ready For It?'는 제목 그대로 "자, 내 얘기 각 잡고 들을 준비됐지?"라는 일종의 도발인 셈이다.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테일러 스위프는 여기에 없다. 그는 과거의 자신이 "손을 흔들고 웃으며 감사하다 말하고, 나의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착한 컨트리 소녀"였다면서 이런 유의 고정관념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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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 곡만은 아니다. [Reputation]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 날을 향해 조종(弔鐘)을 울린다. 이를 위해 그는 앨범의 커버 이미지마저 싹 바꿔버렸다. 옐로 저널리즘에 가까운 타블로이드를 풍자하고, 이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혹적인 사진을 전면에 내걸었다. 더 이상 강요 받은 역할 놀이 따위 하지 않을 거라는 의지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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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송을 부르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결이 기존과 확연하게 다르다. 'End Game'을 예로 들어볼까. 우선 저 유명한 [어벤져스] 자막 오역 논란을 상기해보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이 곡이 의미하는 바는 무언가의 종언이 아니다. 적시해서 말하자면 "당신과의 러브 스토리가 마지막이라 여겨질 만큼 절박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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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명성에 가려진 진짜 모습을 사랑해달라"고 노래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Reputation]이라는 제목처럼 테일러 스위프트는 음반 전체를 통틀어 허망한 명성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노래한다. 아니, 이걸 넘어서서 어두운 그림자에 햇살을 비춰줄 누군가를 갈구한다. 'Delicate'도 이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는 곡이다. 가사의 일부를 밑에 적는다.


"내 명성(평판)이 이렇게 최악인 적은 없었어/그러니까 너는 나를 위해서 나를 좋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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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생은 예측 가능한 파동이었다. 억제 가능한 전투였다. 만족스러운 놀람이었다. 이제 그는 허물만 그럴듯한 역설적인 상태를 벗어나겠다고 선포한다. 사랑을 하더라도 사랑한다는 그 이유로 주도권을 내주지는 않을 거라고 당당하게 내뱉는다. 하하. 이건 뭐로 봐도 나이스 걸의 태도가 아니다. 통쾌하고, 후련하다. 사이다 원샷 정도는 해야 겨우 근접할 수 있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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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정, 'Look What You Made Me Do'와 'Getaway Car'에 위치한다. 전자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올드 테일러는 죽었고, 이제 전화 못 받는다"며 외치듯 노래한다. 그러나 곡 중간에도 나오듯이 그는 "더 똑똑하고 강해진 정신으로 무장한 채 무덤에서 다시 일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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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away Car'는 그렇다면 어떤가. 역시 과거와의 단절을 뜻한다. 더 이상 도망치듯 살지 않겠다는 확고한 다짐이다. 이런 곡들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특정 누군가를 지목하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그걸 자연스럽게 불특정 다수로 확장한다. 주지하다시피 그 대상은 파파라치일 수도 있고, 한 명의 뮤지션일 수도 있고, 헤이터일 수도 있으며 타블로이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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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포함해 맥스 마틴(Max Martin), 잭 안토노프(Jack Antonoff) 등이 참여한 프로듀스는 테일러 스위프트 디스코그라피 역사상 가장 현대적이다. 변조된 보컬을 적절한 선에서 활용('Delicate', 'Getaway Car')하고, 일렉트로 비트를 격렬한 톤으로 쿵쾅 내려치는 와중('King Of My Heart', 'I Did Something Bad')에 팝적인 센스를 길어낸다. 그래서일까. 이거야말로 '모던 팝'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곡들이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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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s something I've learned about people."


앞면 커버를 넘기면 만날 수 있는 문장이다. 이제, 당신이 알던 미스 아메리카나는 더 이상 없다. 차라리 그는 악역을 자처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더 이상… 없다"라는 수식을 여러 차례 썼다. "미스 아메리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당신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근 몇 년 새 만난 최고의 음악 다큐멘터리들 중 하나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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