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Hi-Fi 이야기
많은 분들이 오디오에 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스피커는 브랜드마다 소리가 달라도 앰프는 어차피 그 스피커를 구동하는 것인데 다 비슷하지 않을까? 어차피 소리는 스피커에서 나는 것이니까."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만약 앰프에는 소리의 차이가 없다면 누가 같은 200W의 앰프를 누구는 2억 원을 주고 사고, 누구는 20만 원을 주고 사겠습니까?
글ㅣ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스피커가 소리의 방향을 결정하는 장비라면 앰프는 소리의 품질을 결정하는 장비입니다. 실제로 이 시스템에서는 안 들리던 소리가 저 시스템에서는 들린다면 그건 스피커가 좋아서가 아니라 앰프가 좋아서, 소스 기기가 좋아서 그럴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앰프가 매킨토시의 MC275, 마크 레빈슨의 ML-2 등이 있고요. 오디오 애호가들은 이런 앰프들을 역사적인 명기라고 부르죠. 그런데 가정용 하이파이 앰프의 조건과 프로용 앰프의 조건은 조금 다릅니다. 그렇다면 그 둘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좋은 앰프라면 전 대역이 평탄하게 재생되어야 좋은 앰프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재생 주파수 대역이 넓고, 해상도가 높아야 하는 건 하이파이용 앰프나 프로용 앰프나 차이가 없지만 주파수가 평탄해야 하는 건 좀 다른 문제인데요. 우선 재생 주파수가 직선으로 그려지는 앰프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또한 직선에 가깝게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기능적으로 뛰어난 것일 뿐,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에어(Ayre) 사의 앰프인데요.
보수적인 오디오 분야에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이엔드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정도로 앰프면 앰프, 소스 기기면 소스 기기 등 나무랄 데 없는 성능을 자랑하는 에어 사의 앰프로 음악을 들어보면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소리가 시원시원하게 나오는 느낌도 들고, 무엇보다 소리가 청명하게 들립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요.
에어 사의 앰프는 입문기든 기함급 모델이든 상관없이 대략 5㎑ 정도의 대역을 부스트 시킵니다. 근데 이 부스트 시키는 정도가 오디오를 좋아하는 일반 애호가 수준에서는 느끼기 힘들 정도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부스트를 시키지요. 그렇기에 에어 사의 앰프는 그 앰프를 살 수 있는 사람에게는 꽤 인기가 있습니다. 그 앰프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데에 함정이 있긴 하지만요.
이는 비단 에어 사의 앰프뿐만이 아니라 모든 하이엔드 앰프 제조사들, 이를테면 FM 어쿠스틱스, 골드문트, 비투스, 오디아 플라이트, 마크 레빈슨 등등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부스트 시키는 특정 주파수가 그 앰프사의 특색이 되는 것이지요.
반대의 예가 브리카스티의 앰프입니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기계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앰프 중에 가장 기계적으로 완벽하고, 주파수 특성도 대단히 선형적이어서 특별히 도드라지거나 빠지는 대역 없이 전 대역을 충실하게 재생합니다. 앰프뿐만이 아니라 D/A 컨버터의 성능도 그 가격대에서 가성비를 논한다는 게 좀 우습긴 하지만 하이엔드 오디오 중에서는 그 어떤 브랜드도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가성비를 보여주는 브랜드이지요.
하지만 오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브리카스티라는 브랜드는 모르는 분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지는 않습니다. 재생 주파수 대역이 선형적이라는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특별히 잘 재생하는 장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소리가 심심하게 들리는 앰프라는 뜻이지요. 그렇기에 브리카스티 앰프는 일반 가정집보다는 주로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사용합니다. 마스터링 스튜디오는 레코딩 스튜디오와는 달리 일반적인 가정에서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에서 들을 소리를 만드는 곳이기에 이런 앰프게 제격이죠.
또 하나의 주된 차이는 댐핑 팩터입니다. 댐핑 팩터는 스피커의 임피던스를 앰프의 출력 임피던스로 나눈 값입니다. 댐핑 팩터가 크면 클수록 스피커, 그중에서도 우퍼를 잘 구동할 수 있게 되고, 우퍼의 소리가 딱딱해지죠. 일반적으로 프로용 앰프는 하이파이 앰프에 비해 댐핑 팩터가 큽니다.
프로용 모니터 스피커는 순도 높은 음을 얻기 위해 효율이 낮고, 그러다 보니 우퍼의 구동도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프로용 앰프는 출력도 높고 댐핑 팩터도 커야 제대로 모니터 스피커를 구동할 수 있죠. 대표적인 예로 ATC사의 SCM 100 SL 모니터 스피커를 들 수 있는데요. 이 스피커의 Recommended Power Amplifier는 100-1500W입니다. 이 스피커를 제대로 구동하기 위해선 적어도 1000W 이상 급의 앰프를 연결해야 그나마 모니터 성향에 어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지요.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하이파이용 스피커는 그런 출력과 댐핑 팩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 정도의 앰프를 연결했다가는 스피커의 네트워크 부품에 무리가 가거나 심지어는 탈 수도 있죠.
또 다른 차이점이라면 증폭 방식의 차이를 들 수 있을 텐데요. 아직까지도 일반 오디오 애호가들은 배음이 많이 발생하는 A 클래스 증폭방식의 앰프를 선호하는데 비해 거의 대부분의 프로용 앰프는 AB 클래스 증폭방식을 채용합니다. 배음이 많다는 것은 소리를 풍성하게 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음악 감상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음악이 아닌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딱히 장점이 있지 않기 때문이죠. 또한 A 클래스 증폭방식의 앰프는 AB 클래스 증폭방식의 앰프에 비해 열이 많이 발생하고 효율은 떨어지기에 내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스튜디오에서는 사용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방식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프로용 앰프라고 하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품질이 좋지 않다는 시선을 받곤 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면도 없지 않았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프로용 앰프와 하이파이용 앰프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되었고 가정에서도 프로용 스피커와 앰프를 사용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일반적인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세팅 능력에 따라 하이엔드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보다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를테면 브리카스티 앰프는 심심하게 들리긴 하지만 스피커가 화려한 소리를 내어주는 다이아몬드 트위터 같은 유닛을 장착한 스피커라면 오히려 착색이 있는 하이엔드 앰프보다 훨씬 잘 어울립니다.
제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 중에 "이 세상에 나쁜 오디오는 없다. 자기 오디오를 쓰지 못하는 주인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로용 제품도 잘만 쓴다면 하이엔드 오디오 부럽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격표의 가격이 아니라 내가 듣고자 하는 음악에 어울리는 스피커와 그 스피커를 잘 구동할 수 있는 앰프를 찾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