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에서 간과하기 쉬운 요소, 전기

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by Melon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한 가장 큰 조건은 뭘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제 생각엔 공간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앰프나 스피커라고 할지라도 그 오디오가 세팅되어 있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오디오가 재생하는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비싸고 좋은 오디오도 그저 장식품일 뿐이죠.


그렇다면 좋은 공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같은 오디오 시스템을 세팅한다고 하더라도 공간의 모양 – 천정의 높이, 가로 세로의 비율, 바닥의 재질, 벽의 재질 등 – 에 따라 소리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간과하고 있는 요소, 바로 전기입니다.


글 | 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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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에 관한 우스갯소리로 "수력발전 전기는 클래식에 좋고, 원자력발전 전기는 록 음악에 좋다. 그리고 화력발전 전기가 가장 중립적이다." 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해서 썼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장난 내지는 오디오 애호가에 대한 조롱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긴 하죠.


제가 이야기하는 전기의 품질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노이즈가 적고, 220V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걸 말합니다. 제가 전원생활을 할 때에는 집을 짓고 전봇대에서 따로 선을 뽑아 전기를 인입했기에, 그것도 오디오용으로 15KW라는 대용량을 인입했기에 전기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아파트에서, 그것도 요즘처럼 전력 사용이 많은 겨울에는 안정적인 전원 공급이 거의 불가능하죠. 심지어는 220V 콘센트에서 200V 언저리의 전압이 측정될 때도 있으니까요.


이런 불안한 전원 공급은 앰프의 성능을 떨어뜨려 음질의 열화를 초래하고, 무엇보다 소리의 다이내믹스가 떨어집니다. 이럴 경우 클래식 음악을 듣는데 소리가 심심하게 들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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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 중 대포 소리가 나는 부분이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서주 같은 부분이 앰프의 다이내믹스를 확인하기 좋은 부분인데요. 겉으로 보이는 공간과 앰프, 스피커의 조합에 문제가 없는데 소리가 밋밋하게 들린다면 이는 거의 대부분 전기의 문제일 확률이 높습니다.


Tchaikovsky : 1812 Overture In E Flat Major Op.49 (차이콥스키 : 1812 서곡 내림 마장조 작품번호 49)

Richard Strauss: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 Einleitung, Oder Sonnenaufgang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도입부, 또는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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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 중에 다이내믹스가 떨어질 경우 클래식 음악을 듣는데 문제가 있다는 말에 의문을 가질 분이 있을 겁니다. "헤비메탈이나 하드록이 아니라 클래식이라고?" 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헤비메탈이나 하드록은 음량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일정한 볼륨의 앰프에 연결해 연주하거나 녹음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클래식, 그중에서도 대편성 음악은 다릅니다. 많은 경우 악기 자체에 마이크를 설치하기보다는 연주하는 공간에 마이크를 설치하기 때문에 연주자가 소리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고, 이런 대표적인 악기가 팀파니입니다. 그렇기에 소리의 다이내믹스는 헤비메탈이나 하드락 같은 장르의 음악보다 클래식 음악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전기의 품질이 좋지 않을 경우 어떤 대책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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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별도의 오디오용 전원 장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디오가 멋있게 쌓여있는 집에 가보시면 그 용도를 알 수 없게 생긴, 데스크탑 컴퓨터 본체처럼 생긴 장치를 보실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장치의 대부분은 오디오용 전원 장치입니다. 보통 AVR이나 차폐트랜스를 사용하는데요. AVR은 Automatic Voltage Regulator의 약자로 오디오에 일정한 전압의 전원을 공급하게 해줍니다. 차폐트랜스는 별도의 트랜스포머를 통해 노이즈가 없는 전원을 공급하는 장치이고요.


전원 사정이 좋지 않은 오래된 아파트라면 아무리 좋은 앰프로 앰프를 바꾸는 것보다 이런 별도의 전원 장치를 사용하는 게 음질 향상에는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원 장치는 대부분 대단히 무겁고 대단히 비쌉니다. 쓸만한 전원 장치라면 아파트에 어울릴만한 앰프보다 훨씬 비싼 게 일반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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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안으로는 액티브 스피커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액티브 스피커란 별도의 앰프 없이 스피커 자체에 앰프가 내장되어 있는 스피커로 보통 프로용 장비로 많이 쓰는데요. 어차피 전원 사정이 좋지 않으면 액티브 스피커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ATC사의 주력 모델 중 하나인 SCM 100 스피커는 앰프가 내장되어 있는 액티브 스피커(SCM 100ASL)과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패시브 스피커(SCM 100SL) 두 종류가 있습니다. 패시브 스피커인 100SL의 경우 권장 파워 앰프의 출력이 100~1,500W로 이럴 경우 100W의 앰프를 연결해도 소리는 나지만 ATC 스피커의 장점인 끈적끈적한 중저역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면 앰프의 출력이 최소한 1,000W 정도는 되는 앰프에 연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에 비해 SCM 100ASL에는 고역기와 중역기, 그리고 우퍼에 각각 50, 100, 200W의 앰프가 달려 있습니다. 즉 350W 만으로 이 스피커를 구동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럴 경우 1,000W의 앰프에 연결한 것에 비해 소리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앰프와 스피커를 단자와 케이블로 연결하는 게 아니라 직접 연결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노이즈에 훨씬 강하고, 스피커 유닛의 특성에 맞게 앰프를 제작했기 때문에 스피커 구동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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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믹싱/마스터링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가 아니라 그래미 상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로 독보적인 능력이 있는 사운드 엔지니어가 일을 할 때에는 B&W 800 D3 스피커로 작업을 하고, 집에서는 편하게 음악 듣겠다고 ATC SCM 100 ASL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제게 사정이 생겨 별도의 작업실 겸 서재를 꾸미게 됐습니다. 책상이나 의자야 그냥 갖다 놓으면 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오디오 시스템을 꾸밀 게 고민이었죠. 이 때 제 선택은 멜론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소스 기기에 턴테이블 하나, 그리고 비싸지 않은 액티브 스피커였습니다. 어차피 앨범 리뷰를 할 모니터 시스템은 따로 있으니 그저 큰 돈 들이지 않으면서 편하게, 그러면서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매체(스트리밍, CD, LP, 음원 파일)의 음악을 듣기에 이보다 좋을 것 없다는 판단에서요. 혹시라도 저처럼 저렴한 가격에 컴퓨터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좋은 소리를 듣고 싶은 분은 액티브 스피커를 이용한 시스템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에게는 액티브 스피커가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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