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Hi-Fi 이야기
우리가 가장 많은 소리를 듣는 스피커는 어느 브랜드의 스피커일까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저는 BOSE와 JBL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물론 돈이 많다면 B&O나 Burmester 등의 오디오가 달려있는 차를 탈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타는 대부분의 대중 교통수단에는 BOSE나 JBL의 스피커가 달려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죠. 여러분이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가거나 했을 때 적어도 세 명 중의 하나는 BOSE나 JBL의 스피커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만큼 많은 건물 – 특히 카페 같은 곳 – 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글ㅣ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JBL은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역사에 남을 모델이 많은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그 중의 한 모델이 JBL 4310이라는 모델인데요. 1968년도에 출시된 이 모델은 일반적인 음악 감상용 스피커가 아닌 녹음실의 모니터 룸에서 녹음되는 소리를 듣기 위해 개발된 스피커입니다.
그 무렵 최고의 모니터 스피커는 동축형 탄노이 모니터 골드 유닛을 쓰는 스피커이거나 고역기가 혼 유닛인 알텍의 스피커였습니다. 그런데 이 스피커들은 구조적으로 각각 중역에 치우치거나(탄노이), 저역과 고역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알텍)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스피커였죠. 그런 스피커에 비해 크기는 작으면서도 대역 간 밸런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스피커가 출시되었으니 이 스피커는 곧 스튜디오 모니터 시스템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JBL 43xx 시리즈의 시작이었죠.
이 스피커로 모니터를 한 대표적인 장르가 1970년대의 디스코와 팝음악입니다. 그래서인지 1970년대의 디스코 음악과 팝음악은 수억 원짜리 오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적당한 마란츠 리시버나 산수이 리시버에 연결된 JBL 4310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더 좋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뮤지션을 꼽자면 Boney M.과 Carpenters 정도?
1. Boney M - Help! Help! (Long Version)
2. Boney M - Rivers of Babylon
3. Boney M -Dancing in the Streets (12` Version)
4. The Carpenters -We`ve Only Just Begun
5. The Carpenters - Top Of The World (Single Mix)
언뜻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JBL 4310 스피커와 적당한 리시버라면 수억 원짜리 오디오 시스템에 사용되는 스피커의 스파이크 하나 값도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싸구려 조합이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니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시절의 앨범은 녹음의 해상도가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요즘의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이 그 시절의 음악을 듣기엔 너무 오버스펙이라는 거죠. 또한 스피커가 커질수록 스피커의 타이밍은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클래식 관현악곡 같은 음악을 들을 때에는 조금 느린 타이밍에 더 안정감이 느껴지며 기분 좋게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빠른 타이밍이 요구되는 디스코나 하드록 같은 장르에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에서의 추격전이라면 당연히 시작과 동시에 스포츠카의 승리로 끝나겠지만 좁은 골목길에서의 추격전이라면 배달용 오토바이가 고성능 스포츠카를 이길 수 있다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이 스피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요. 스튜디오 모니터용으로 개발하다 보니 디자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래서 일반인이 쓰기엔 너무 못 생겼습니다.
그래서 JBL에서는 이 스피커를 좀 더 구동이 쉬우면서도 예쁜 스피커로 만들었습니다. 대상을 사운드 엔지니어에서 일반 오디오 애호가로 바꾼 것이죠. 그렇게 출시된 모델이 L100 이라는 모델입니다.
JBL의 4310 스피커가 43xx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스피커이듯이 L100 역시 스튜디오 모니터용 스피커와 가정용 스피커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데요. 이전까지는 프로페셔널 라인은 프로페셔널 라인대로, 하이파이 라인은 하이파이 라인대로 경계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스피커가 출시되면서 다른 스피커 제조사들이 각성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극장용 스피커인 알텍 A7을 가정용으로 개조한 알텍 매그니피션트(Magnificent) 모델이나 발렌시아(Valencia) 같은 모델이 출시될 수 있었던 거죠.
또 하나의 역사적 가치로는 그 오랜 JBL의 역사 중에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모델이 바로 이 L100입니다. 그만큼 1970년대에 이 스피커의 인기는 엄청났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JBL L100이 JBL L100 classic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시되었습니다. JBL은 하만 그룹의 계열사이고, 그 하만 그룹을 삼성전자가 인수했기에 이제는 JBL을 국산 브랜드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JBL에서 L100을 다시 출시했습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기쁨과 염려가 공존했는데요. 제가 손에 꼽게 좋아했던 스피커를 신품으로 듣고, 살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제가 그렇게 좋아했던 소리가 아닌 소리가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친구를 40년쯤 지나서 만나는 느낌이랄까요?
일단 디자인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나무 색은 좀 바뀌었지만 와플처럼 생긴 그릴은 그대로네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예전의 L100과는 전혀 다른 스피커입니다. 오리지널 L100이 전형적인 1970년대의 스피커라면 L100 클래식은 전형적인 2000년대의 하이파이 3웨이 스피커입니다. 무엇보다 트위터의 성능이 엄청나게 좋아졌네요.
며칠 전 끝난 이번 CES2020에선 JBL L100의 2웨이 버전인 L82이 발표됐습니다. L100 클래식의 소리를 들어보니 이 스피커의 소리가 예상되네요. 좀 밝은 성향의 ATC SCM 7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의 L100을 좋아했던 사람에게 L100 클래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스피커입니다. 하지만 소리가 아무리 바뀌었어도 JBL의 헤리테지는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는데요. 그렇다면 JBL의 헤리테지는 뭘까요?
그 오랜 기간만큼이나 수많은 전통이 있지만 JBL의 스피커는 1940년대의 JBL이나 2020년의 JBL이나 앰프의 출력이 클수록, 그리고 댐핑 팩터가 높을수록 좋은 소리가 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스피커의 허용 입력이 300W라면 200W~250W 정도 출력의 앰프를 연결해도 좋은 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JBL은 JBL 스피커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으시다면 최대한 허용 입력에 가까운 출력의 앰프를 연결하세요. 그 때 나오는 소리가 사람들이 말하는 "시원시원한 JBL의 소리"입니다.